조선 기록 문화의 상징인 의궤! [돌아온 외규장각 의궤와 외교관 이야기]
[돌아온외규장각의궤와외교관이야기]조선기록문화의상징인의궤!

예전에박병선박사가프랑스국립박물관에서사서로근무하며외규장각의궤를발견했다는보도를본적이있다.

그때굉장히놀라며이런생각을한것같다.

우리의문화재가어떻게그리먼나라의국립박물관까지가게되었을까.

만약에그분이프랑스국립박물관에사서로근무하지않았다면,그리고우리의것을찾고자애쓰지않았다면외규장각의궤의존재에대해우린아직도모르고있지않을까.

그이후로외규장각의궤가보도될때마다관심있게보게되었다.빼앗긴우리것에대한본능적관심이었다.

그러다오랜세월이지나면서외규장각의궤에대한협상이지지부진해진다느니,양국간의문화재에대한사고의차이가많다느니,그러다가결국지지부진하던협상이체결되어아쉽게나마대여형식으로온다느니하는보도를들었다.

그때뉴스를들으면서이런생각을했던것같다.

문화민족이라는프랑스는국내법과국제법을들먹이며굉장히야만적인사고를하는구나,이렇게빼앗고약탈해간남의나라문화재들을자신들의국립박물관창고에얼마나많이쌓아놓았을까.아프리카나동남아시아를식민지로했으니그곳에서빼앗은문화재는또얼마나있을까.영국이나미국,일본의박물관에서꼭꼭숨겨진우리의문화재도있지않을까.

이책은그런의문에대한해답을주는책이다.145년동안유랑을하고20년동안의협상끝에돌아와있는외규장각의궤에얽힌이야기다.

우리에게외규장각의궤가주는의미는무엇일까.

의궤는단지한때에만행해지도록하는것이아니라,실로만세에걸쳐행해지도록만든것이다.―세종실록

조선의철저한기록문화는의궤에서그빛을발한다.혼례,세자책봉,장례,종묘에서의제사와같은왕실의의식부터실록의편찬,성의축조와같은국가적인사업,악기제작이나잔치를베푸는일처럼다소시시콜콜해보이는일에이르기까지온갖행사들이의궤로제작되었다.의식과행사의선례를만들어후대사람들이법도에맞게의례를치를수있게하는것이의궤제작의목적이기때문이다.그안에는다양한의식의과정과사용한물품,참여한사람들의명단등이모두기록되어있을뿐만아니라,행사에쓰인각종기물과복식등을그린도설과행사장면을그린반차도도함께그려져있어그가치를더한다.(본문에서)

왜우리의것이그리도멀리가게되었을까.

외규장각의궤의약탈배경에는병인양요와프랑스군의강화도습격이있다.

1866년에일어난병인양요는무엇인가.

흥선대원군의천주교탄압정책으로8천여명의천주교인들이처형된병인박해때,프랑스신부9명도함께처형된다.프랑스신부의죽음을빌미로당시텐진에있던프랑스극동함대에서로즈제독을앞장세워강화도를침공하게된다.

하지만프랑스군은조선군의공격을받아퇴각하게되고,그러면서은괴와외규장각에있던도서와사료등을가져가면서나머지를불태우게된다.

당시강화도에있던외규장각은정조가설치한왕실서고이다.창덕궁에있던규장각의부속시설로,외세의한양침략에대비해의궤등왕실의귀중한자료를보관하기위한비상서고였던셈이다.팔만대장경을전국의비밀서고에보관한것처럼말이다.

프랑스는남의물건에대한욕심이너무지나친것이아닐까.

가장소중한것을가져가고나머지는우리가가지지못하도록불태우는정책…….

그때강화도의외규장각이완전히불탔기에우리는모든책들이불타없어진것으로알고있다가,프랑스국립도서관사서로일하는박병선박사가베르사유별관창고에서외규장각의궤를찾아냄으로써1975년에겨우알려지게된다.

그리고외규장각의궤가그리로가게된역사적배경도알게된것이다.

원래340권이던의궤중프랑스국립박물관에있는것은297권이다.소실된나머지는이리저리팔리거나사라져버렸다고한다.

왜우리땅에오는게이리도힘들었을까.

늦게나마1991년에서울대학교가프랑스정부에의궤반환요청을했고같은해에외무부가프랑스정부에공식요청했으나그들은미온적인태도로일관했다고한다.

그러다고속철도사업으로프랑스의미테랑대통령이방한하면서급물살을탄다.당시미테랑대통령은개인적으로돌려주고싶다고했으나일부학자들과프랑스국민들은자신들의박물관에있는문화재를절대로돌려줄수없다며극단으로반발했다고한다.

그러다가미테랑대통령이의궤한권(수빈휘경원원소도감의궤)을한국에두고가게된다.단지보여주기만하겠다던프랑스국립박물관과의약속을어기고즉흥적으로한국에남겨두고갔다고한다.

그당시에’교류와대여’라는형식으로양국정상간의합의를깨고한국에돌려줬으니프랑스국내법을어긴대통령으로몰아넣으며공권력의횡포니,나치협력정부니하는기사까지났다고한다.

그이후로협상은20년의세월동안두나라간의의견차이로팽팽한줄다리기만할뿐,늘제자리걸음인상태였다.외교부에서나서보기도하고당시한국정신문화연구원원장이던한상진교수를민간인협상대표로세워보기도했지만프랑스의꼿꼿한콧대를꺾을수없었다고한다.

그러다2009년주프랑스대사로박홍신대사가임명되면서외규장각의궤에대한열정과끈기,인내심있는설득으로희망의빛이보이게된다.

그리고2011년8월’145년만의귀환’이라는제목으로외규장각의궤특별전이국립중앙박물관에서열리게된다.

프랑스가외규장각의궤문제를그대로방치한채협상자체를외면하고있는것은매우무책임한행동이다…….재임기간중어떻게해서든양국산협상을재개시키겠다는결연한의지를가지고프랑스로부임했다…….한국으로부터어떤문화재를대가로받는대신에한국국민들의영원한사의를받아라!-박홍신주프랑스대사(본문에서)

1993년양국대통령간에합의된대전제인’교류와대여’의원칙을내세우며의궤맞교환방안에서한치의양보도할수없었던이유는관례도없거니와그배후에프랑스국립도서관책임자들이버티고있었기때문이었다.

비록반환이아닌대여의형식을취하고있지만프랑스국내법을우회하면서우리땅에데려오기위한어쩔수없는차선책이었다고한다.

책속에는협상의현장에서외교부실무자로서겪은위협,좌절,갈등,위기에대한솔직한이야기가들어있다.

잃어버린우리의문화재를찾으려는국민들의관심,정부의노력,지도자의관심이모여힘으로작용함을느끼게된다.

장기대여라는형식이어서아쉽지만노력한모든분들,특히고인이된박병선박사와저자,외교부담당자들에게큰박수를보낸다.

아직도<직지>는프랑스박물관에보관중이라고한다.

이것은또언제반환이될지…..

기록으로는구한말주한프랑스공사가지방시찰을갔다가우연히구입한<직지>를나중에프랑스국립박물관에기증했다고한다.자신들에게는의미가없는것을왜구입한걸까.비록약탈이아닌구입의형식을띠고있기에프랑스의순순한반환이아니면어려울텐데….

국민들이촛불집회를하면통하려나……

실제로박물관담당자들은외규장각의궤도중국의문화재로알고있었다고한다.남의나라국보급문화재에대한안목은있으나남의나라에대한배려는없는프랑스인들……

자신들은필요도없는것을왜가져가는지…..제국주의적인근성같다.

만약한국이경제력이나국제적인위치가예전그대로였다면협상이이뤄질수있었을까.

힘이있어야우리의것도찾을수있는구나싶어서씁쓸하다.

잃어버린우리의문화재를생각해본시간이다.

돌아온외규장각의궤와외교관이야기 저자 유복렬 출판사 눌와(2013년08월12일) 카테고리 국내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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