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도전과 조선건국사]드라마로는 다 담을 수 없는 조선개국과 정도전의 타이밍!
[정도전과조선건국사]드라마로는다담을수없는조선개국과정도전의타이밍!

조선건국의이념적기틀,국가적기틀을잡는데큰기여를한정도전.이름만큼이나그는도전적인인생을살았을텐데.

정몽주를따랐던그가정몽주에등을돌리면서까지조선개국에지대한공을세웠지만결국조선으로부터버림받았다.개국공신이었던그가어떻게해서간신이란누명을쓰게되었을까.또요동정벌과위화도회군의결과,무섭게떠오른시골무사였던이성계,그는어떻게해서백성들의피를보지않고왕좌에올랐을까.

이책은고려사,고려사절요를바탕으로쓴조선건국이야기다.고려사,고려사절요가조선시대에기록된것이기에다분히조선의입장에서쓴고려말,조선초의이야기라고할수있다.결국조선이라는승자의관점에서쓴이야기라고할수있겠다.그러니정도전의이야기보다고려와이성계이야기에더초점이맞춰진책이다.

요즘장안의화제인TV드라마<정도전>,<기황후>등으로고려사가재조명되고있기에더욱눈길을끄는책이다.

고려말은무신정변과원의간섭기를거치면서왕권이약해져있었다.

왕위에오른공민왕(31대)은왕권강화를위해신돈과함께개혁정치를펼쳤다.개혁적인학자이색의귀국으로힘을얻은공민왕은국정전반에걸친개혁을하게된다.여기에는공민왕의강인한성격과지독하고치밀해서무섭기까지한계책들은왕권강화에도움을주었다.

정도전과이성계의등장도공민왕의개혁과맞물려있었다고볼수있다.그의개혁에는북벌정책도있었기때문이다.

그당시는기황후의아들이원나라황태자에책봉된시점이었다.원의소속이던쌍성총관부의장수는이성계의아버지이자춘이었다.쌍성총관부는원래고려땅이었기에고려인,고려장수들이많았다.원나라소속이던이자춘이공민왕을돕겠다고자발적으로항복하면서공민왕은원으로부터벗어날궁리를하게된다.

공민왕은유인우를동북병마사로임명하고기황후의일가인기철일당제거에도성공한뒤에원의내정간섭기구인정동행성이문소를폐지하고변발과호복도금했다.원나라연호를쓰지않겠다고공표하고선왕에게올리는시호와국가의제사의식도다시고려의식으로회복했다.

그리고이자춘의도움으로쌍성총관부탈환에어렵지않게성공을하면서옛고려땅을회복하게된다.그기세를몰아요동진출까지노리게된것이다.요양행성일대는원래고구려땅이었고고려인들이많이살고있었다.그러니요동정벌은원래고려의땅을회복하는일이었다.

원이몰락하면서한족인홍건적의1,2차침입은고려의국력을더욱약화시켰다.하지만아직도북원이존재하던시절이라서무인들의힘이절실했던상황이었다.나하추의침입이있자공민왕은이자춘의아들이성계를동북면병마사로임명하게된다.

하지만엄청난수의나하추부대는이성계의유인,매복작전에말려들어거의전멸되기도했다.나하추부대의퇴각으로시골무사이성계의명성이알려지게되면서이성계는역사에화려하게등장하게된다.최영과이성계의등장은북방전쟁과왜구토벌의승리로얻은것들이었다.이성계는여기서쌓은세력을기반으로조선건국을했다고볼수있다.시대가영웅과무장을필요했던시대였으니어쩌면조선의건국은당연한귀결이었을까.

친정이공민왕에게몰살된기황후는공민왕을폐위시키고덕흥군을즉위시킨다는교서를받아낸다.그뒤공민왕은암살을당해역사의뒤안길로물러났다.

무신정변과원간섭기를지낸고려에공민왕의개혁은필수불가결이었을것이다.그과정에서왕권강화에집착하다죽음을당했지만공민왕의불벌정책이없었다면이성계가역사의전면에등장할수있었을까.고려를뒤엎은조선은종묘에공민왕의신위를모셨다는것을봐도조선에서조차공민왕은훌륭한임금으로보았다는증거일것이다.

한편정도전은19세나이에성균관에들어가이색,정몽주,이승인등과인연을맺게된다.

성균관이중수될즈음정도전은부모의무덤을지키느라정몽주가보내준맹자를탐독하는정도였다.임금이백성을덕으로다스리지않고폭정을휘두르면역성혁명도가능하다고한맹자.맹자의왕도정치와민본사상,역성혁명에대한자극을받았을까.고려의충신이던정몽주의선물이역성혁명을기반을제공했다면역사의아이러니인데…….

그렇게그는유학,역사,병법,불교,수학,의학등다방면에걸친책을섭렵하게된다.

주원장이원을몰아내고명을세우게되는시점에서고려에서는2차요동정벌명령이내려진다.하지만이성계는요동정벌을나섰다가위화도에서회군을하게된다.상관이자실세인최영의명령을어길만큼이성계의위상과그의군사력이커졌다고볼수있다.

이성계가요동정벌에반대하는이유는4가지였다.

여름철농번기에군사를동원하는것은옳지않다.

무덥고비가많이와서활의아교가녹기에사용하기어렵다.

요동을공격하는사이에남쪽의왜구가침입할우려가있다.

작은나라가큰나라를거스른일은옳지않다.

그렇게해서이성계의역성혁명은성공한다.물론그과정에는정몽주의죽음등피의숙청이있었지만.

공양왕이쫓겨난뒤5일간고려에는주인이없었다.신하들이이성계를추대했지만그가사양했기때문이다.관례상바로받아들이는경우가없었으므로형식상으로봐야할것이다.신하들의거듭된요청에이성계는수창궁에서드디어왕위를받아들였다.1392년7월17일이었다.(책에서)

고려의왕위를계승한이성계는처음에는고려의국호,고려의의장,고려의법제를그대로사용한다.하지만새술은새부대에담아야하는법.

그렇게새왕조건국에있어서정도전의이론적토대가등장하게된다.

조선의건국은명분이었다.고려의명이다했음을알려야했고조선의태동이불가피함을설득해야했다.그러기위해필요한것이이념이었다.고려의불교에맞설유교적이념.

그런기초를세우기에는정도전의박식한지식과지혜가폭넓게활용될수밖에없었을것이다.

정도전이새왕조건설에기여한바는엄청난것이었다.

새왕조의수도를결정하는일,궁전,궁문,도성문의이름짓기,도성내외의49방의이름짓기,군사제도개혁,병법개혁,요동수복을위한전쟁준비,사병의공병화,<경국대전>의기초를마련등…….

조선건국에서최대공신이었던정도전은재상이중심이되는신권정치를펼친개혁파였다.하지만태종이방원과는늘라이벌관계였다.이방원은야심이커서왕권정치를주장했다.

결국이방원에게숙청당하게된다.정몽주처럼.

뛰어난화술의소유자,핵심을찌르는설득력의소유자,방대한독서량,폭넓은지식을지닌개혁적인학자정도전.

고려에서조선으로넘어가는과정에백성들이흘린피는없었지만권력층사이에서의피비린내는피할수없었다.

그렇게따르던정몽주와등을돌려가면서까지정도전에게는새로운왕조가이땅과백성들을지켜낼수있다고믿었을까.

어쩌면고려말의무수한전쟁과암투가국력과왕권을약화시킴으로써야욕을가진이성계와역성혁명의의지를가진정도전의만남을역사적만남으로만들었을지도모를일이다.

만약고려가계속되었더라면세종의한글창제가가능했을까.만약위화도에서회군하지말고그대로치고갔다면요동정벌이가능했을까.당시명은이제시작단계라어수선한상황이었으니가능했을지도모를일이다.만약조선이명에사대하지않고세력을키워갔다면조선이그렇게나약하게망하기만했을까.

단순하게알고만있던역사적사실에서긴이야기들을읽으며역사도타이밍임을생각한다.

우연과필연의틈바구니에서위인과명장의만남,망국과개국의역사도분명타이밍이라는생각이드는데…….

정도전과조선건국사 저자 조열태 출판사 이북이십사(2014년02월07일) 카테고리 국내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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