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한 풍경]그해 겨울, 상처를 안고 침묵으로 통하던 영혼들…….
[소소한풍경]그해겨울,상처를안고침묵으로통하던영혼들…….

제목이소소한풍경이어서전원적이고목가적인삶또는도시인의평범한하루를이야기하나싶었다.하지만내예상은보기좋게빗나갔다.옛도시의외곽이어서전원적인풍경은있지만마음을무겁게하는영혼들의슬픈이야기라서말이다.상처없는해맑은영혼이어디있으랴.몸에흉터하나없는말간몸뚱이가어디있으랴.같은시대,하나의공간에산다지만역사적시점에따라공간적좌표에따라겪어야할경험들은각기다른법인데…….

나는주변에있는사람들을얼마나이해하고있을까.얼마나공감하며살까.과연침묵으로도통할수있는이가몇이나될까.

이야기의주인공들은이름이없다.이니셜도아니다.그저ㄱ,ㄴ,ㄷ일뿐이다.이름이없는무명씨들.어디에서도있으나없으나존재감이없는자들.어리거나,사회적약자이거나법적보호를받지못하는이들…….그래서작가는이름을붙이지않은걸까.이름을불러줘야비로소의미있는존재로와닿을텐데…….이름이없어서더욱외롭고슬픈존재들이다.

소설은시멘트로뜬데스마스크를ㄱ의집터에서발견되었다는전화가걸려오면서시작한다.한때ㄱ의교수이기도했던소설가는ㄱ의전화를받는순간,작가로서의직감이작동하게된다.

대학시절자신의소설수업에서악평을받던ㄱ의소설은<우물>이었다.

지금ㄱ의집안에있던우물에서무표정의우울이깃든데스마스크,즉해골바가지가발견되었고경찰의조사가시작되었다는데…….우물은이소설의처음과끝을아우르는굵직한줄기가된다.대학시절그녀는자신의운명을직감한걸까.

죽은아버지가가지고있던선인장을기르던ㄱ은선인장에집착한다.

가시는선인장의잎이다.물이없어도살아가기위한스스로의생존전략인데,선인장의가시는자신을만지려는이들에게빨간피의고통을주는잎이다.그녀가선인장에집착하는이유는무엇일까.그녀는가시같은존재일까.스스로를보호해야만살수있는존재임을일찍깨쳤기에선인장과동류의식을느낀건아닐까.

말더듬이오빠의이른죽음은어머니와아버지의죽음을불러온다.ㄱ이여고2학년때일이다.

아픈기억은최종적으로가시가된다.(51쪽)

ㄱ은결혼도순탄치못했다.

대학시절만난남자1은ㄱ과똑같이흰운동화를신었던남자다.졸업을하면서ㄱ은남자1의아내가되고,ㄱ은남자1의독점적지배권앞에서좌절하게된다.남자1은뒷정리를모르는남자였다.섬유회사회장님을아버지로둔탓일까.부리는일에익숙한남자다.내아내잖아!이한마디로모든걸해결하려한남자였다.아내에대한독점적지배권을행사하거나독재적이고폭압적이기까지한남편이었다.ㄱ의평화롭지않은결혼생활은경제적독점과도같은욕망의독점이빚어낸결과였으리라.모든게경제논리에맞춰진탓이다.

고귀한’소유의적합성’을결혼이’비천한지배에의욕망’으로조금씩바꾸어놓았기때문이다.(53쪽)

혼자사니참좋아!(60)

결국남자1과이혼한ㄱ은혼자살게된다.

혼자만의자유를누리던그녀집에더플백을지닌남루하지만홀림을가진방랑자가등장한다.바로ㄴ이다.

둘이함께사니더좋아.

부드러운미소로자신을감춘남자.얼굴주름들사이로바람의길이생겨난알수없는얼굴을지닌남자의등장은새로운생기를불어넣는다.하루만신세지겠다는남자는마당청소를하고우물을파면서장기간거주하게된다.그리고왠지모를위안을받게된다.

남자1이지배적욕망을과시하며주인행세를했다면ㄴ은분명차이가나는남자다.배려와보호본능을가진머슴스타일이었으니까.

어느날이들의삶에조선족불법체류자ㄷ이끼어든다.

셋이사니진짜좋아.

ㄱ은왜셋이사니더좋다고했을까.

분명ㄴ이들어와마당이정돈되고ㄷ이들어와집안에반짝반짝윤이난점은있다.하지만한남자를공유한다는점에서는불편하기도했을텐데…….한남자와두여자의사랑,두여자끼리의사랑은그렇게시작된다.

행복이란말은너무도범속해서우리들언어가아니라는생각이들어요.우리는때로침묵으로수평을이루었고우리는때로육체를통해원시로돌아가기도했어요.우리가경험했던감정의수평과세계의시원을미적분문제처럼설명할수는없어요.(책에서)

ㄴ의죽음으로셋은흩어지게되고ㄱ은경찰의조사를받으면서ㄴ과ㄷ의과거를비로소알게된다.누구에게나감추고싶은비밀은하나씩있는걸까.하지만너무나어둡고쓰라린과거뿐이다.

계엄령에의해죽은형과아버지의죽음에대한ㄴ의기억은차디찬아픔이었으리라.그아픔을달래려유랑하며방랑하며기타를배우며운명에젖어살았으리라.그렇게일용직이되고,그렇게인디밴드의기타리스트가되고…….

조선족처녀로위장한탈북처녀ㄷ,몸을팔아번돈을엄마에게부칠때희망이라곤가졌을까.북한을탈출해중국으로왔지만버겁고힘든삶뿐이었을텐데……ㄷ에게실낱같은희망은있었을까.

우리…….메아리같아요.…….어느날그가한말이다.지나가고나면메아리는아무런흔적을남기지않는다.

그해겨울우리를살렸던숨은,메아리다.(116~117쪽)

ㄱ의집은가족을잃은사람들의휴식처였으리라.상처가깊어사랑에두려움을갖는세사람이통할수있는안식처였으리라.

그러므로사랑은,두려워요.

모든사랑에는그런위험이다깃들어있어요.훼손하기위해욕망하는것같은느낌이든적도많아요.(179)

기계실냉방설비보수업체가대형아울렛매장의누출된냉매가스질식사이야기는대형마트아르바이트대학생의가슴먹먹한현실이다.나비도감을빌리러친구집에가다가계엄군의총에맞은ㄴ의형,세탁기를돌리듯자신의우물속으로빨려들어가는ㄴ,탈북자로서호소할길없는ㄷ의피해는절망가득하다.

사회로부터외면받는아웃사이더들의과거도미래도없는삶.현재라도있기는한걸까.결국스스로의우물,자기묘를팔수밖에없었던ㄴ의현실을누구에게호소해야하나.죽어시멘트에자신의부조를남긴ㄴ,그의죽음은분노였을까,저항이었을까.아니면포기였을까.

셋이모여온전한하나를이룬세사람.가족을잃으면서자신의세계까지잃은세사람의이야기에헛헛한기분이든다.이들이침묵으로도서로에게스며들던시간과공간들이그저소소한풍경일수없기때문이다.

이책을읽으면서생의심연,생의의미,우리는어디서왔는가.어디로가고있는가에대한본질적인철학적인질문들을하게된다.왜세상은공평하지못한가,왜누구는더억울해야하나는사회적인문제까지생각하게된다.

상처를입고방황하는어린영혼들,청춘들의이야기가묵직하게메아리쳐온다.’이런삶,이해할수있나요.이런고통공감할수있나요.’라고…….이건그저소소한풍경이아니야.

소소한풍경 저자 박범신 출판사 자음과모음(구.이룸)(2014년04월30일) 카테고리 국내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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