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굴암 법정에 서다]석굴암의 햇살 신화는 일제가 만들어낸 허구!
[석굴암법정에서다]석굴암의햇살신화는일제가만들어낸허구!

1960년대문화재관리국의복원공사이후’석굴암원형논쟁’의과정,토함산의현실무시,건축원리에어긋난견해들,일제가복원과정에서무시했던것들에대한이야기를처음접한다.석굴암원형논쟁의논리적출발점이일제식민사관과관련있다니…….

이책은석굴암의원형에대한쟁점들을토대로가상의법정에세우는형식으로쓴글이다.

아침태양의첫햇살이토함산으로치달리는,그리하여석굴암부처님의이마한가운데박힌보석(백호)을비추고,그보석에서반사된빛을받아어둠속에잠들어있던다른조각상들의윤곽이은연히돋아나는장면이다.(책에서)

예전에중등<국어>교과서에도실렸다던석굴암부처님의이마에박힌보석이야기는들은적이있다.토함산에올라석굴암을바라볼때도가장먼저보는곳이부처님이마의보석이었을정도로햇살신화를기억하고있다.그리고석굴암의신비는신라인의예술성,과학적안목,우주의신비의결합이라고생각했다.옛사람들의과학적인안목과종교적의미의결합이절묘하다고생각했다.

일제가일으킨햇살신화에는석굴암이동짓달의일출지점을향해앉힌것은햇살을받아들이려는의도였고,그렇기에신라인이석굴암을개방구조로지었다는것이다.석굴암전실은원래지붕과출입문이없는노천구조이며,주실돔전면에광창이뚫려있다는것이었다.

저자는햇살신화가신비주의적사고의분비물,허상,과도한상상력의부산물이라고한다.햇빛을향한신라인의열망이었을까.저자의조사결과신라인들은태양보다는달에관심이많은나라였다.

삼국유사등을보면서라벌은달의도시였다.향가,지역명에서달에대한신라인의사랑은강렬할정도다.근대에만들어진석굴암신화.왜,누가무엇때문에만들었을까.저자는일본의태양숭배에서가져왔다고한다.

아마테라스오미가미는일본고대창세신화에나오는태양의여신으로,지금도일본황실의조신으로받들어지고있다.(36쪽)

동해일출을석굴암본존불에결부시키는논리는일제강점기에구축된다.그이야기는일본의유난한태양신앙,곧아마테라스오미가미신앙을산실로태어난식민사관이었던것이다.(49쪽)

1969년서울대학교남천우교수의주장은일제의주장에동조하고있다.석실법당과본존불의좌향은동짓달의일출지점을정확히겨냥한다는것이다.신라인이석굴암을전각없는개방구조로설계했다는것이다.

햇살신화는분명매력적이지만사실이아니라는데…….광복후우리역사가들조차도햇살담론의실체를파악하고폐기시켜버리기에는아쉬웠던걸까.태양을사랑하던일본의식민사관의그늘을지우지못한이유가무엇일까.

이책에서는기존학계의석굴암인식에대한의문을품고석굴암을연구한20년간의결실이담겨있다.1910년대의석굴암사진,조선총독부의복원과정을담은사진,현재의모습에이르기까지의사진도있다.석굴암광창,홍예석의건축미,석굴암이석굴사원이었다는이야기,총독부공사시전각을거부하고아침햇살을받게복원하는과정들,이후일본황족들의방문,관광지화,굴밖의금강신조상들이전각뚜껑이없는상태에서비바람에손상을입은이야기를읽으며석굴암복원에얽힌진실,일제의거짓과만행을생각하게된다.

물론지금은1964년문화재관리국의복원공사때전실에목조전각을덮어씌웠기에햇살이법당으로들어오지못하게되었다는것이다.

햇살신화를되살릴것이냐목조전각을유지할것이냐에대한석굴암복원에얽힌뜨거웠던쟁점들에대한이야기다.문화재복원도하나의역사임을,역사의흔적을살리는일임을생각하게된다.무심코지나쳤던문화재이야기,유심히살펴야겠다는생각이들게한책이다.

석굴암,법정에서다 저자 성낙주 출판사 불광출판사(2014년06월24일) 카테고리 국내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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