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퍼 엘레지/이언 샌섬/반비]종이의 탄생과 종말에 대한 문화사

페이퍼엘레지/이언샌섬/반비]종이의탄생과종말에대한문화사

감탄과애도로쓴종이의문화사가부제다.제목이나부제에서느껴지는슬픔과위로때문일까.장중하고엄숙한기분으로펼친책이다.엘레지는비가(悲歌),슬픔의시,죽은이에대한애도의시니까.

참고로,엘레지는음악에서는슬픔을나타내는악곡의표제로많이쓰이고있고문학에서는애도와철학적논고,죽은사람의위로로구성된시다.흔히사랑했던이의죽음을계기로의미와죽음에대한각오등작자의생사관을토로하는시를말한다.괴테의로마엘레지,밀턴의리시더스,릴케의두이노의비가등이있다.

그래도제목은너무했다.엘레지라면종이가죽었기에애도한다는말인데.수천년을살고있는종이의입장에서듣는기분은어떨까.물론존재감이예전만못하겠지만아직은종이없는지구,종이없는인간을상상할수없는데.세상에영원한것은없다는데,혹시종이의운명도백악기의공룡처럼종말이올까.아니면종이가변형과진화를거듭하며살아남을까.이런저런생각으로만감이교차되는책이다.

매일아침에일어나부스스한눈으로종이책을만진다.밤에종이책을덮으며하루를마무리한다.일상이종이와함께하기에TV예능<인간의조건>처럼종이없이살기가오늘의미션이라면난얼마나답답할까.,휴지,신문,편지,영수증,통지서,세금영수증,달력,노트,다이어리,서류,지폐등이하루동안사라진다면…….가장필요한것은휴지일테고,허공에다책표지를넘기듯헛짓을하지않을까.허공에다날짜를적고시간을적고메모를하지않을까.스마트한기기들이있지만몸의기억은종이를더듬을텐데.

우리는종이로,종이를통해,종이를이용해서상상하는법을배우고훈련받았다.(중략)이책은우리가왜,어떻게종이에밀착되고봉합되어우리존재자체가종이와같다고말할수있게되었는가를보이고자한다.(서문중에서)

2000년전중국후한의환관이었던채윤이종이를발명한이래로활자술,제지술도급격하게발전해왔다.종이를통한기록이자유로워지면서지식전파및교육이수월해졌다.지식전파와교육은인류발전에기여했고그밑바탕에는종이의존재가있었다.

스마트한최첨단기기의등장으로전자책을읽는시대가되고,종이없이도돈이오고가고,종이없이도서류가오고가며,종이없이도모든예약과결제가가능해졌다.종이를많이사용하고있지만종이의존재감은역시예전같지않다.미래의종이운명은과연어떨까.

저자인이언샌섬은종이란작가의취향에따라기획된상상의박물관이고모든중요한것은종이에기록되었기에종이의중요성은영속적이라고한다.

종이는실체는보잘것없어도그안에의미를가득담는다.물질이면서환영이다.망가지기쉽지만영속적이다.(서문에서)

종이를만들던방법이채윤이만들었던방법과별차이가없다니,놀랍다.종이를만드는과정은나무의껍질을벗겨펄프를준비하고,틀이나망위에종이형태를만들고,체로걸러형태를잡으며건조하고마무리한다.

책에서는제지법의발달,1799년로베르의제지기발명,종이와나무,종이와숲,종이와지도,종이와책,종이와돈,종이와광고,종이와건축.종이와예술,종이와장난감,종이와종이접기,종이와정치,종이와영화등에대한이야기가300여쪽에걸쳐펼쳐진다.

종이가대량생산,사진,풀바른우표,종이봉투,종이접시,냅킨등으로다양하게변모해온과정은그대로인류문명의역사다.

종이에서시작해종이의고향인숲으로이어지는이야기에서는묵직해진다.예전부터숲은많은동화와신화,설화가탄생한곳이다.현인들은인간본연으로돌아가기위해숲으로갔다.

나는제대로살기위해숲으로갔다.삶에서본질적인것만을마주대하고,삶으로부터배워야만하는것을못배우지는않았는지알기위해서,또죽음을앞두고야내가제대로살지않았음을깨닫게되지않으려고.-헨리데이비드소로월든(본문에서)

나무에서뽑은종이는친환경적이지만종이를만들기위해,,광물,금속,화석연료의사용이불가피하기에환경오염에도영향을주고있다니,생각지도못한이야기다.더구나지금은숲이사라지는시대다.종이의아버지는나무,종이의고향은숲이기에,인류생존을위해서,종이의생존을위해서숲을잘가꿔야할텐데.

책과종이는오래된한쌍이다.완벽한결혼이다.1980년대후반과1990년대에는역동적인하이퍼텍스트에잠깐한눈을팔며재미를보긴했지만,요즘전자책이나독서용장비들은모든면에서점점더종이책을닮아간다.모양,크기,느낌,기능까지도.신기술을선도하는사람이나반대하는사람이나똑같이한목소리로전자책은놀랍고충격적이게도개념과패러다임을바꾸어놓을정도로종이책과다르다고주장하지만,사실은소름끼칠정도로닮았다.종이냄새가나는전자책리더기만아직안나왔을뿐이다.(본문중에서)

결국종이는종이책과연결되지않을까.종이의힘은종이위에적힌글의힘이니까.글의파워에따라종이의존재감도달라진다.그렇게종이는글의힘에기대어자신을드러낸다.글이없는백지는무기력하다.

지금까지종이의묶음인책은세대와세대를잇는다리,시대와시대를연결하는터널이었다.종이책은지식과정보의상징,지혜의산물로여겨졌다.현재는무거운종이책의자리에점점전자책이비집고들어온다.늘어가는책의보관에대한문제해결책으로전자책이제기될정도다.미래엔결국전자책일까.

종이라는두글자에서시작된이야기가신화,문학,동서양의역사,환경의문제,인쇄,지도,도서관,건축,지폐의힘등으로광대하게펼쳐진다.종이의문화사니까.

지금은종이의정점일까.종이의미래는무엇일까.기적같은종이의발명이래로값싸고흔해진종이가되었다.늘곁에있으리라믿었던공기같던종이가세상을하직할날이올까.만약종이가사라진다면…….그래도제목은너무했다.엘레지라니.아직두눈멀쩡하게살아있는종이인데……

페이퍼엘레지 저자 이언샌섬(IanSansom) 출판사 반비(2014년09월01일) 카테고리 국내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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