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시 27분 책 읽어주는 남자/장-폴 디디에로랑/청미래]책의 낱장까지 살려내는 남자
[627분책읽어주는남자/폴디디에로랑/청미래]책의낱장까지살려내는남자

언젠가소설을읽어주는라디오프로그램이있었다.막책읽기에빠진때라서운전할때마다듣곤했다.끝까지들을형편이되지못했지만,잠깐의순간만이라도낭랑한성우의목소리로소설을들으면서상상과모험의세계로떠나곤했다.김선영의<시간을파는상점>도그렇게알게된책이었다.

만약에버스나지하철에서책읽어주는사람이있다면나는귀기울일까.목소리가굉장히좋거나내용이흥미롭다면아마도솔깃해하지않을까.한국의현실에서는복잡한곳에서시끄럽게한다며핀잔을들을까.어쨌든대중교통을타면서책을읽어준다는것은대단한용기가필요한일이다.소설속의남자는투명인간같은삶을사는남자여서타인의시선에신경을쓰지않기때문일까,

주인공길랭비뇰은책을파쇄하는일을하는남자다.팔리지않거나창고에서오래묵은책들을파쇄해서새로운인쇄용지를만들어낸다.길랭은파쇄하는기계인체르스토르500에게불만이많다.한꺼번에수천권의책을먹어치우는모습이마치먹성좋은괴물같아서다.뭔가를먹고나면이사이로끼게되는찌꺼기가있다.이괴물도깔끔하게책을먹어치우지못해늘몇장의낱장을남기게된다.결국길랭은책이파쇄되면서남기는낱장들을모아서이른아침출근시간마다전철에서그낱장들을읽어주게된다.

길랭이전철을타는627분은그렇게책읽어주는시간이된것이다.제대로된책이아닌,서로아무런관련도없는책들에서떨어진낱장들,각각의책에서구원받은낱장을읽어주는것이다.순서도없고내용도도중에끊기지만누구하나제지하는사람이없다.오히려그가책읽어주는시간에맞춰서전철을타는사람이있을정도다

어느날길랭은전철에서80대할머니팬들을만나게된다.책읽어주는시간에맞추어일부러전철을타러온다는할머니들은길랭에게책읽어주기를부탁한다.길랭이양로원에서처음으로책을읽어주던날의풍경이예사롭지않다.

기껏낱장을읽어주었을뿐인데,할머니들의질문이폭포처럼쏟아진것이다.낱장의이야기에서무한대의질문을펼치고상상의나래를펴며옥신각신하는할머니들의모습이열띤백분토론같다.토론문화가부족한우리와많이다른모습에그저놀라울뿐이다.

길랭은요양원에서책을읽어주면서할머니들이생기를찾았음을알게된다.언제죽을지모르는할머니들에게유쾌한즐거움과신선한자극을준것이다.동시에자신의삶도살아있다는느낌을가지게된다.무미건조한그의삶에활력을느끼게된다.

그는태어나서늘놀림받던남자다.빌랭기뇰(심술쟁이꼭두각시)이라는별명으로놀림을받았기에웃음거리가되기싫었던그는투명인간처럼지내기로작정했을정도다.친구도별로없던그에게양로원에서의책읽어준시간은분명활기를불어넣었다.그의건조한삶에윤기가생긴것이다.

그리고그의삶에가장의미있는큰변화가나타나게된다.전철에서우연히주운USB에서한여자의일상을접하게된것이다.USB72개의문서파일에는쇼핑몰화장실에서일하는환경미화원쥘리가쓴그녀의일상이담겨있었다.길랭은전철에서낱장대신그녀의글을읽어주게되면서그녀의삶속으로점점빨려들어간다.그리고그녀를찾아나서게된다.USB로인해얼굴도모르는그녀의모든것을사랑하게된것이다.

처음부터끝까지유려한문장,유머넘치는재치가가득한소설이다.쥘리가쓴자신의일상,친구인회사경비원이봉이읊어대는12음절정형시,양로원할머니들의열렬한독서토론등어느하나빠지지않고재미있게그려냈다.

이책은2010년헤밍웨이문학상을수상한작가인장폴디디에로랑의첫장편소설이다.

이보다더하게책을사랑하는남자가있을까.죽어간책에생명을넣어준남자,글과책을진정으로사랑한남자,책의마지막낱장까지의미있게살려낸남자,무미건조한시간에이야기로상상을끌어내고,탐험을하게만드는남자의능력에감탄하며읽게된소설이다.낱장의이야기지만한편의스토리로도손색이없는이야기들이니까.

주변에서도책읽어주는남자가있었으면좋겠다.어딘가에이소설을모방해전철에서책읽어주는남자가생기지않을까.이젠전철을타야겠네.627분에.

6시27분책읽어주는남자 저자 장-폴디디에로랑(Jean-PaulDidierlaurent) 출판사 청미래(2014년09월16일) 카테고리 국내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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