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조의 말]탕평책과 개혁정치를 펼친 조선 제21대 왕인 영조의 어록…….
BY ary68019 ON 12. 17, 2014
[영조의말]탕평책과개혁정치를펼친조선제21대왕인영조의어록…….
영조는비록개인사적으로는출신에따른콤플렉스에시달렸고친아들인사도세자를죽이는등굴곡이많았지만,정치적으로는군주로서의위상을확고하게정립해수많은개혁정책을추진한개혁군주였다.또한조선의왕들중에서도손꼽히는위민과애민의군주로서민생문제를말이아닌행동으로해소하며손자인정조와더불어조선시대의중흥기를이끌었다.(11쪽)
개혁과위민의군주인조선제21대왕인영조.그는조선역사상가장장수한임금이요,가장오래재위한임금이다.천한태생콤플렉스때문이었을까?아니면아들인사도세자를죽음에이르게했다는죄책감이었을까?그는생활이검소하고눈물많고인간적이며백성의삶을잘헤아린임금이다.
영조의출생과정은조선역사상가장미천할정도다.
영조의어머니인숙빈최씨는숙종의총애로후궁자리에올라아들을낳아정1품의‘빈’자리에올랐다.사실숙빈최씨는궁녀축에도들지못할정도였다.궁녀의시중을들며물을길러주던무수리였기때문이다.그런핏줄에대한배경들이극심한스트레스를주었을것이다.
또한영조를더욱괴롭힌것은경종의죽음에대한죄책감이었다.영조가경종에게올린게장과생감을먹고경종이급서했기때문이다.
경종의죽음에따른죄책감과출신성분에서오는자격지심이더욱그를검소하고강한임금으로키웠을것이다.그런충정으로노론과소론을두루중용하는탕평정치를펼쳤지만노론의계락으로아들인사도세자를믿지못하고죽음으로내몰았다.이것또한영조를괴롭히지않았을까?
위민애민의강력한정치를펼치던영조는장수한세월만큼많은어록을남겼다.영조는80종이넘는어제에는백성에대한사랑,치열한자기수양,과거에대한회고와개탄등을적기도했다.
그의어록에는왕이농사를짓는친경의실시하고,준천공사에백성의의견을듣고,홍수와가뭄에는백성들을걱정하고,방만한국가재정을막기위해새로운회계법을만들고,가혹한형벌을폐지하고,신문고를부활해백성의억울함을듣고,균역법을시행해양역의불균형을잡고,오늘날의청계천을준설해하수처리를해결하고,서자의관리등용을허용하는서얼통첩을만들고,여종의공납을정지하고,붕당의폐해를막기위해‘탕평’을고민하고,사도세자에대한고민한모습들이담겨있다.
도량을파내는하나의일은오직백성을위한것이다.한번명령을내려시행하는것에지나지않지만,이와같은큰역사는즉위한뒤에처음이다.(이하생략)(88쪽)
영조35년에영조임금이명정전월대에서준천을주관하는관리와백성들을만나준천에대해하교하는말이다.직접농사를지으며백성들을격려하고직접공사에서삽을뜨며일꾼들을독려하던영조였다.
두루사귀면서편을가르지않는것은곧군자의공정한마음이고,편을가르고두루사귀지않는것은실로소인의사사로운의도다.(10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