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이동통신 봉수/최진연]30년 동안 국토를 누비며 찾아 낸 우리 봉수 이야기, 대단하다~
[옛이동통신봉수/최진연]30년동안국토를누비며찾아낸우리봉수이야기,대단하다~

제목에서부터끌리는책이다.우리역사,우리문화에대한이야기를읽노라면늘설렘과애잔함,뭉클함등복잡한감정을선물받기에우리이야기라는사실만으로도끌리는분야다.『옛이동통신봉수』

봉수는밤에는불(봉烽)로,낮에는연기(수燧)로국경과해안을적으로부터지키기위해위험신호를보내던옛긴급신호체제였다.날씨로인해봉수의신호전달이용이하지않을때는봉수군을통해직접달려가알리기도했다.옛날그리스의마라톤처럼.때로는위험상황을징과꽹과리로알리거나깃발로알리기도했다고한다.

봉수는삼국시대부터원시적인형태로시작해고려시대에체계가잡혔고,조선세종때에크게정비가되었다.고종31년갑오경장때철폐되기시작하면서이듬해인1895년에전국의봉대와봉수군마저철폐되었다.현재한반도에있는봉수터는남한에해안가,섬,산지등에500여기의봉수터가남아있고,북한에650여기의봉수터가있는것으로추정된다고국내유일의봉수전문가인김주홍박사는전한다.

가장유명한곳이서울목멱산봉수가아닐까.

함경도에서출발한제1노선의봉화도착지는남산동쪽1봉인현재미군통신탑부근이다.부산에서출발한제2노선의봉화도착지는남산골한옥마을이내려다보이는2봉이다.평안도내륙을경유하는제3노선의봉화도착지는현재의봉수가있는남산팔각정이다.평안도해안을경유하는제4노선의도착지는남산케이블카종점부근이다.전라도여수를출발해서해안을타고올라오는제5노선의도착지는일제강점기조선신궁이있던남산분수대주변이다.

현재남산팔각정아래의봉수는수원화성의봉돈을참고해1993년에세워진곳이며,매일오전한시간동안전통봉수의식이재현되는곳이다.서울의주요관광명소이기도한곳이다.

수원화성의봉돈은조선22대정조가할아버지영조에의해뒤주에갇혀죽은아버지사도세자를기리기위해도읍지를꿈꾸었던수원화성안에있다.수원화성의봉돈은봉수의구조나위치에서특별하다.산봉우리가아니라평지에축조되어있고유사시에군사들의숙소와무기고까지있다고한다.성벽에구멍을내어총을쏠수있도록했기에봉수가아니라돈대라고한다.

수원화성의봉돈은한국전쟁당시일부가파괴된것을1970년대중반박정희대통령의관방유적정비사업때보수후원형을유지하고있다고한다.현존하는봉수중원형이잘보존된유일한봉수라고한다.

지금봉수는유실되거나잡목으로인해접근불가능한곳도있고,파괴되거나방치된곳,고증도없이잘못복원된곳,가까스로흔적만남은곳,봉수내부의민묘를옮기고전직국회의원부친의묘를이장한곳,봉수에올라가국태민안을비는행사를매년가지는영덕군대리마을의봉수,산불감시초소로둔갑한곳등이있다고한다.하지만120년세월이무심해서였을까.봉수의원형이그대로보존된곳은한군데도없다고한다.

저자인최진연은문화유적전문기자라고한다.그는30년동안직접발로찾아다니며우리조상이남긴유적들을사진과글로담아왔다고한다.1970년대후반부터수원화성사진작업을시작으로성곽등에관심을가졌고,봉수,옛다리등관심도받지못하고사라져가는우리것을찾아전국을누볐다고한다.이책은그결과물이다.

대부분처음알게된이야기들이다.인적이드문곳이나산간외지에있었기에관심밖이었을까.개발의뒷전으로밀려난곳도있고,개인의욕심으로가족묘로둔갑한곳도있고,고증도없이사업가나관계기관에서복원한경우도있다니,무척슬픈일이다.무심코지났을우리의봉수,때로는돌무더기에궁금증을갖고스쳤을봉수들이버려진채쇠락하고있다니,너무나안타까운일이다.원형복원은차후로하더라도푯말이라도세워조상들이물려준유산임을알렸으면좋겠다.

이젠눈여겨두었다가산꼭대기에오르게되면유심히관찰하고살펴봐야겠다.각지역별로사진과설명이상세하게되어있으니,여행갈때마다미리공부하고가야겠다.나에게로온정말귀중한책이다.

옛이동통신봉수 저자 최진연 출판사 강이(2014년11월30일) 카테고리 국내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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