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의 능지처참

서울의 번화가인 광화문의 한쪽 귀퉁이가  약 1백여년 전에는 망나니들이 칼춤을 추며

죄인들의 목을 잘랐던 끔찍한 형장이었다.

그 위치가 정확히 어딘가 하면  지금의 교보빌딩이 있는 비각 쪽이  바로 그곳이다.

작고한 소설가 이병주의 글 ‘百年 전의 光化門’을  읽고 알게 된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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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글을 인용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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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록(實錄)에 따르면 지금으로 부터 139년전인 1883년 그 한 해만 해도 1월에 죄포도청에서 체포한 도적 이상용 등 8명과

우포도청에서 체포한 도적 11명이 모두 이곳에서 목이 잘렸다.

이 비슷한 효수는 2월에도 있었고 3월에도 있었다.

같은 해 6월에는 임오군란의 주모자로 체포된 허욱(許煜) 등 7인에 대한 형 집행이 여기서 있었다.

‘대역부도죄인 허욱 등 국안(大逆不道罪人 許煜 等 鞫案)’ 이라는 판결문서에는 이들 죄인 7명 모두에게

‘부대시 능지처참사(不待時 凌遲處斬死)로 명시돼 있다.

“시간을 기다리지 말고(不待時) 능지처참으로 죽여라”는 판결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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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지처참(凌遲處斬)은 손, 발, 머리, 몸통을 토막을 내서 죽이는 무서운 형벌이다.

이렇게 죽인 다음 잘린 머리는 비각 부근의 나무에 매달아 놓아 까마귀들이 쪼아먹게 했다.

이런 식의 사형집행이 잇달아 광화문 일대는 죽은 사람의 잘린 머리를 보지 않는 날이 거의 없었을

정도였다. <인용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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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알다시피 광화문은 문죄인과는 뗄래야 뗄 수 없는 공간이다.

문죄인이가 죄없는 박근혜를 감옥에 보내고 정권을 가로챌 수 있었던 것도

5년 전 바로 이 광화문에서 벌어진 촛불광란 덕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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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빨겡이식 선동질로 집권한 뒤에 임기 내내 국정을 농단하고 종북 반역질을 일삼아 온 문죄인이

이제 임기를 끝내면서 민주당의 ‘검수완박’ 입법 쿠데타에 올라타고 있는 것이다.

임기가 끝나기 직전에 위헌인 검수완박 입법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음으로써

퇴임 후 깜방에 들어가지 않으려는 개수작이다.

울산시장선거 불법개입,  월성1호기 경제성 조작,  사위의 태국취업 관련한 타이 이스타젯과의  부패거래 의혹 등등

자신이 저지른 부정비리들과 종북 반역죄 등에서 자유로워 지겠다는 약은 꼼수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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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문죄인이가 뒤에서 조종하고 지휘한 이번 검수완박 입법쿠데타가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잠시 잠깐의 성공일지는 몰라도 결국은 실패할 것이다.

내 짐작이나 오히려 이것으로 인해 문죄인의 깜방행은 예상보다 더 일찍 이뤄진 공산이 크고

처벌 수위  또한 괘심죄가 더해져 가중적이 될 공산이 크다.

윤석렬이가 적당히 봐주고 넘어가 주려고 생각했더라도 그렇게 해주기가 어렵게 된 것이다.

이미 문죄인의 처벌 문제는 윤석렬이의 손을 떠나 분노한 국민들의 손에 와 있는 단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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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같으면야  문죄인은 이번 입법 쿠데타로 당연히 광화문 비각 부근 쯤에서 능지처참 혐을 받고도 남을 것이다.

자은 죄가 어디 임오군란 주동자들에 비할 것인가.

그러나 지금이야 개명된 세상이니 그렇게까지는 아닐 것이고 결국은 깜방행이다.

그러나 문죄인은 ‘퇴임 후 자신의 안전을 위해 헌법까지 유린한 부도죄인(不道罪人)’으로

우리 역사에 기록될 것이 분명하다.

결국 역사책에서 문죄인은 능지처참의 형을 받게 되는 것이다.

이 아니 무서운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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