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X의 덕을 보느냐 피해를 보느냐도 지자체 하기 나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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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에 경부고속도로를 놓을 때 정부가 땅을 사들이면서 땅 임자들에게 지불한 돈은 한 평에 236원이었다. 40년 전이긴 해도 터무니없는 헐값이었다. 시·군·읍·면장들은 땅 주인들을 찾아다니며 “고속도로가 개통되면 도로에 편입되고 남은 땅값이 10배, 100배로 뛴다”며 땅값을 후려쳤다. 1㎞에 1억원밖에 안 드는 세계 최소 비용으로 경부고속도로를 건설할 수 있었던 것도 그 덕분이다.

▶땅 주인들은 새로 도로가 닦이면 땅값이 오르고 지역발전 효과도 나는 전례를 보았던 탓에 값 후려치기를 뿌리치지 않았다. 하지만 고속도로는 여느 도로와 달랐다. 주변 농지는 아무런 혜택을 보지 못했다. 더욱이 고속도로는 이농(離農)을 부채질하고 중소도시까지 몰락시켰다. 농촌에서 인근 중소도시로, 중소도시에서 대도시로 옮겨가는 전통적 인구이동 패턴을 고속도로가 무너뜨리고 곧장 대도시로 빨아들였기 때문이다.

▶교통수단이 발달하고 고속화할수록 인구와 산업의 대도시 집중이 심해지는 것은 세계 어디나 같다. ‘두 지역 사이의 인구이동률은 거리에 반비례한다’는 ‘라벤슈타인의 법칙’이 있다. 대부분 인구 이동은 거리가 가까운 지역에서 일어난다는 법칙이다. 고속도로가 뚫리면 농촌과 대도시의 ‘시간거리’가 짧아져 종래의 ‘공간거리’는 의미를 잃게 된다. 농촌과 대도시를 연결해주던 중소도시가 그래서 몰락하는 것이다.

▶경부고속철도(KTX)가 개통되자 서울의 큰 병원과 쇼핑센터에 지방 손님들이 몰리고 있다. 부산·대구에서 강남 입시학원으로 ‘통학’하는 학생들까지 있다고 한다. ‘경부고속도로 효과’의 새 버전인 셈이다. 아직 인구 변화는 나타나지 않았지만 지방의 돈이 서울로 쏠리는 소비의 ‘빨대’ 현상은 뚜렷하다. 대구·경북연구원이 작년 말 KTX 승객 602명을 조사했더니 20%가 ‘쇼핑하러 다른 도시에 간다’고 답했다.

▶일본에서도 1964년 신칸센이 놓이자 도쿄와 오사카 중간에 있는 나고야가 쇠락했다. 신칸센으로 도쿄에서 2시간40분 걸리는 아키타(秋田)는 1997년 역(驛)이 들어선 뒤 소매점 수는 16%, 매출은 20% 줄어드는 타격을 입었다. 반면 대도시와의 시간거리 단축을 이용해 첨단 정보산업을 유치하며 신칸센을 지역발전에 잘 활용하는 도시들도 있다. KTX의 덕을 보느냐 피해를 보느냐도 지자체 하기 나름이다. 나라 차원의 배려도 있어야겠지만 무엇보다 창의적인 발상이 빨대의 흐름을 거꾸로 돌릴 수 있다.

2006.02.17
(김기천 논설위원 kckim@chosun.com)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06/02/17/2006021770414.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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