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의 오늘] 글자 배운 할머니가 제일 먼저 쓴 글은 “보고싶은 내 아들아” (2012.0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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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도 이제 글을 배웠단다. 이 편지를 네가 볼 수 있겠지. 보고싶은 내 아들아.”

서울 마포구 대흥동 양원주부학교를 다니는 여봉순(77) 할머니는 지난해 크리스마스에 아들에게 편지를 썼다. 하늘나라로 먼저 떠난 아들에게 글을 몰라 편지를 쓰지 못한 한을 풀었다. 16년 전 가슴에 묻은 막내아들에게 “나는 너를 하루도 잊은 날이 없다”는 편지를 썼다. 연필로 꾹꾹 눌러쓴 한 글자, 한 글자에 그리움을 담았다.

경찰이던 막내아들은 16년 전 “허리가 아프다”며 병원에 입원했다. 의사는 아들이 척추암이라고 했다. 아들은 걷지도 못해 화장실도 혼자 가지 못했다. 입원 20일 만에 아들은 세상을 떠났다. 아들에게 편지를 쓰고 싶었지만, ‘무식한 엄마’는 글을 몰라 편지지를 앞에 놓고 울었다.

큰아들이 여씨에게 공부를 권했고, 여씨는 오는 22일 양원주부학교를 졸업한다. 어릴 적 배움 기회를 놓치고 뒤늦게 학업을 마친 늦깎이 학생 807명이 초등학교 학력을 인정한다는 졸업장을 받는다. 여씨는 지난 3년간 이 학교를 다녔다.

일주일에 3번씩, 하루 4시간 수업을 들었다. ㄱ(기역), ㄴ(니은)도 익숙지 않았지만, 여씨는 3년을 꼬박 서울 성동구 집에서 1시간 가까이 걸리는 통학길을 다녔다. “이제는 막내아들이 보고 싶으면 편지를 쓸 수 있어. 엄마가 쓰는 글이니 와서 보고 갈 거라고 믿어.”

졸업생 중엔 나란히 졸업하는 60대 남매도 있다. 지난 2008년 3월 입학한 서홍주(67)씨와 서남임(여·61)씨는 이곳에서 초등학교 과정을 마쳤다. 건어물 가게를 하던 남임씨와 야채 가게를 하던 홍주씨는 공부를 시작하며 가게도 모두 정리했다. 남임씨는 “배우지 못한 한이 얼마나 깊었던지 가게를 정리하면서 아쉽지도 않더라”고 말했다. 오빠 홍주씨도 “간판도 제대로 읽지 못해 혼자 돌아다니는 게 두려웠는데 이제는 어디든 혼자서도 갈 수 있다”며 “훌쩍 지나가버린 4년이 아쉽기도 하고, 함께 공부하자고 얘기해준 동생이 정말 고맙다”고 했다. 서씨 남매는 중학 과정에 진학할 예정이다.

최복순(87)씨는 이번에 최고령 졸업생이다. “‘많다’ ‘갖다’처럼 받침이 있으면 어찌나 어려웠는지 고생을 했어.” 그렇게 글을 배우자마자 인도네시아에 있는 큰아들에게 편지를 썼다. 최씨는 “‘편지 잘 받았다’는 아들의 전화에 눈물을 쏟았다고 했다.

그는 “처음 등교하던 날 ‘가방을 메고 어딜 가냐’는 말에 ‘학교 간다’고 대답했던 게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고 했다.

이미지기자
http://srchdb1.chosun.com/pdf/i_service/pdf_ReadBody.jsp?Y=2012&M=02&D=18&ID=20120218000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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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의 오늘은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날아가 그때의 일들을 떠올릴 수 있도록 만들어진 코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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