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시위를 방치해온 국가권력, 공권력의 직무유기

평택미군기지

 

시위대가 합판을 깔아 철조망을 뭉갠 위로 거침없이 들이닥친다. 막아 선 병사들에게 긴 죽봉을 다짜고짜 타작하듯 휘두른다. 군 대열의 맨앞 네댓 줄은 나무방패만 들고 있다. 시위대는 끝이 갈라진 죽봉을 방패 위아래로 내리치고 찔러댄다. 속수무책 맞다 못한 병사들이 개울로 굴러떨어진다. 뒷줄도 도리없이 차례로 무너진다. 철조망을 다시 세우던 병사들은 몽둥이 찜질을 당한다. 시위대는 도망가는 병사를 쫓아가 이단옆차기를 날린다.

▶‘병사는 사냥개처럼 공격하고 늑대처럼 후퇴하고 멧돼지처럼 방어하라’는 말이 있다. 평택 미군기지 이전지역 철조망이 하루 만에 뚫리던 지난 5일 우리 군의 모습은 차마 지켜보기 민망하도록 딱했다. 어제 인터넷 조선일보에 오른 그날 14분짜리 동영상의 끝은 시위대가 쑥대밭으로 만들어버린 군 텐트 잔해들이다. 군이 주둔지에 난입한 시위대에 두들겨 맞고 숙영지(宿營地)가 초토화되는 나라가 다시 있을까.

▶‘북소리 따라 새벽부터 싸우다/ 말 안장 부여안고 잠든다(曉戰隨金鼓 宵眠抱玉鞍) 허리에 찬 칼 빼어/ 누란의 왕을 베고야 말리(願將腰下劍 直爲斬樓蘭).’ 이백(李白)은 ‘새하곡(塞下曲)’에서 처지는 고단해도 기개는 비장한 변방 병사를 노래했다. 군은 기개와 자존심, 사기(士氣)를 먹고 산다. “두들겨 맞더라도 맞대응 말라”는 지시를 받고 평택에 온 병사들은 애초부터 사기를 거세당한 셈이었다.

▶갓 스무 살 송 일병은 죽봉과 날아든 돌에 맞을 때까지는 정신이 있었는데 철모 위를 철조망 절단기로 얻어맞고선 실신했다고 했다. 깨어보니 국군 수도통합병원이었다. 뇌진탕이라고 했다. “평택 가기 전부터 무조건 방어만 해야 된다고 교육받았지만 막상 철조망이 다 뚫리고 공격당하기 시작하니까 공포심이 들었습니다.” 죽봉에 눈이 찔려 실명할 뻔한 박 일병과, 코뼈가 부러진 다른 박 일병도 “처음엔 설마 무슨 일 있겠느냐 싶었다”고 했다.

▶아무리 폭력시위대라도 군에 대해서는 조심스러워할 거라고 병사들은 생각했을 것이다. 군에 거는 최소한의 믿음 같은 것도 기대했을 법하다. 그러나 시위대에겐 법도 상식도 국민의 군대도 없었다. 속절없이 당하는 군의 모습을 보며 국민은 참담하다. 아들을 군대 보낸 어머니와 그 아들들을 맡고 있는 지휘관 마음은 또 어떻겠는가. 이 지경까지 오도록 폭력시위를 방치해온 국가권력, 공권력의 직무유기가 폭력시위 못지않게 문제다.

2006.05.10
(오태진 수석논설위원 tjoh@chosun.com)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06/05/10/2006051070473.html

사진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06/05/11/2006051170027.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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