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키운 8할은 한국사람의 그 뜨거운 정이었다

인요한

 

47세 미국인 존 린튼, 한국이름으로 인요한은 전남 순천에서 소문난 개구쟁이였다. 동네 어른들이 그를 보면 신기하기도 하고 귀엽기도 해서 집적댔다. “아따, 이놈 미국 넘 같은디, 때때옷 입어 붕께 솔찬히 이쁘구먼.” 인요한이 대꾸했다. “이놈이 머여. 내 이름은 짠(John)이여.” 어른들은 기가 차서 꿀밤을 먹이곤 했다. 그는 순천에서 나고 자랐다. ‘호남 기독교의 아버지’로 불리는 외증조부 유진 벨 선교사 이래 4대째 한국에 산다.

▶요한은 고등학생 보모 옥자 누나 손에서 자랐다. 옥자 누나는 요한이 산으로 올라가도 말리는 대신 조용히 뒤를 따라왔다. 나무에 오르면 엉덩이를 받쳐줬다. 요한은 “말려봐야 내가 말을 안 들을 게 뻔해서 다치지나 않게 해주겠다는 마음 씀씀이였다”고 회상한다. 옥자 누나는 그래서 요한의 어머니에게 많이 혼나고도 항상 웃는 얼굴로 요한을 감싸고 지켜줬다. 그는 옥자 누나에게서 인간에 대한 사랑과 한국인 특유의 정(情)을 배웠다.

▶외국인학교를 찾아 대전으로 유학간 소년 요한은 머리를 빡빡 밀고 등교했다. 다들 머리를 짧게 깎았던 순천 친구들을 잊지 않기 위해서였다. 그는 ‘너나 나나 똑같은 빡빡머리, 그러니 우리는 좋은 친구’라고 생각했다. 그의 까까머리를 한스라는 아이가 놀렸다. “한스, 너 잠깐 복도로 나와 봐.” 그는 고향에서 배운 ‘실력’을 발휘해 혼내줬다. 그의 말을 빌리자면 ‘전라도 깡다구’였다.

▶1980년 탄흔으로 얼룩진 전남도청. 의대생 인요한은 시민군의 외신기자회견에 통역으로 나섰다. 얼마 뒤 미국 총영사에게 불려갔다. “지금 내 손에 대한민국 정부 공문이 들려 있어. 너는 광주 주동자야. 당장 이 나라를 떠나.” 목사였던 아버지 휴 린튼이 아들에게 물었다. “미국으로 갈래, 병원에서 조용히 일할래?” 고향을 떠나기 싫었던 그는 병원에서 근신했다.

▶존 린튼은 세브란스병원 국제진료센터 소장으로 북한 결핵퇴치사업을 벌이고 있다. 그가 ‘내 고향은 전라도, 내 영혼은 한국인’이라는 책을 펴냈다. 자칭 ‘순천 촌놈 인요한’은 “내 피에 흐르는 한국인 기질이 자랑스럽다”고 했다. 서정주의 ‘자화상’ 한 구절까지 써먹으며 한국을 예찬한다. “나를 키운 8할은 한국사람의 그 뜨거운 정이었다”고. 그런데 “한국인의 특성, 정이 점점 사라져 간다”는 그의 말은 아프다.

2006.06.14
(주용중 논설위원 midway@chosun.com)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06/06/14/2006061470540.html

사진출처 : http://premium.chosun.com/site/data/html_dir/2014/12/19/2014121902349.html

 

=============================

조선일보 인기 컬럼 만물상을 위블로그에서 재연재합니다.
기사의 저작권은 조선일보에 있으므로 무단 전제를 금합니다.

Leave a Reply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입력창은 * 로 표시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