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자가 바깥을 향해 아무리 큰소리를 친들

푸틴

 

부시의 얼굴이 벌게졌다. 지난 주말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푸틴과 정상회담을 한 뒤 기자회견장에 섰을 때였다. 부시는 미국이 이라크에 민주주의를 심었다고 뽐내며 “미국인들은 러시아도 언론과 종교의 자유를 누리기 바란다”고 했다. 의기양양한 부시를 푸틴이 맞받아쳤다. “솔직히 말해 우리는 이라크 같은 민주주의는 원하지 않거든요.” 당황한 부시가 내뱉은 “잠깐만”이라는 단어는 기자들의 폭소에 묻혀버렸다.

▶푸틴은 그 며칠 전 연설에선 “세계 군비경쟁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했다. 미국과 다시 겨뤄보겠다는 얘기다. 푸틴이 자신만만한 이유는 우선 ‘오일 머니’다. 사우디에 이어 제2의 석유수출국인 러시아는 기름값이 폭등하면서 외환보유고가 2257억달러로 불었다. “핵무기보다 무서운 게 소련의 자원”이라고 한 케네디 말이 생각난다. 70%를 넘는 국민 지지도 역시 푸틴의 힘이다. 부시, 블레어, 고이즈미 모두 레임덕에 시달린다.

▶서방언론은 이번에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G8회담을 주재한 푸틴에게 스포트라이트를 맞췄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자신감 넘치는 푸틴이 G8 방문객들의 비판을 받아쳤다’는 기사에서 “러시아가 세계의 큰손으로 재등장한 것은 푸틴 덕분”이라는 푸틴 측근 말을 인용했다. 더타임스도 “푸틴의 정치적 영향력은 정점에 올라 있다. 18세기 제정 러시아의 표트르 대제(大帝) 이후 가장 강력한 지도자”라고 했다.

▶러시아 사람들은 예로부터 러시아 황제 ‘차르’형(型) 지도자를 좋아한다. 게다가 푸틴은 2000년만 해도 파산 직전이던 러시아를 연평균 6% 경제성장으로 살려냈다. 강력한 리더십이 드리운 그늘도 짙고 넓다. 고르바초프는 “푸틴의 언론통제 때문에 TV 보는 게 무의미해졌다. 러시아 민주주의가 후퇴한다”고 했다. 푸틴의 경제보좌관은 “지금 정치체제는 자유롭지도 민주적이지도 못하다”며 사퇴했다.

▶상트페테르부르크 출신인 푸틴은 표트르 대제 초상화를 집무실에 걸어놓고 있다. ‘강한 러시아’에 대한 열망의 표시다. 차르를 무너뜨린 건 레닌이고 레닌의 동상을 끌어내린 건 옐친이다. 옐친이 키운 푸틴이 다시 차르를 동경하는 역사의 순환이 공교롭다. 푸틴의 러시아는 한반도를 둘러싼 열강전에 새 변수로 등장하고 있다. 지도자가 바깥을 향해 아무리 큰소리를 친들 나라가 부강하지도 국민이 받쳐주지도 않으면 공허할 뿐이다.

2006.07.18
(주용중 논설위원 midway@chosun.com)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06/07/18/2006071870588.html

사진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1/09/26/2011092600135.html

 

=============================

조선일보 인기 컬럼 만물상을 위블로그에서 재연재합니다.
기사의 저작권은 조선일보에 있으므로 무단 전제를 금합니다.

Leave a Reply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입력창은 * 로 표시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