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단적 대결이 한 나라를 얼마나 비참하게 만들 수 있는지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정의가 패배할 수 있음을, 폭력이 정신을 꺾을 수 있음을, 용기가 보답을 받지 못할 수 있음을 스페인에서 배웠다.” 앙드레 말로는 1939년 스페인 내전이 프랑코 장군이 이끄는 반란군의 승리로 끝나자 낙담했다. 좌파 인민전선 정부를 돕기 위해 국제비행대대를 만들어 내전에 뛰어든 말로였다. 헤밍웨이, 오웰, 네루다…. 쟁쟁한 작가들을 비롯해 외국인 4만명이 ‘국제여단’을 만들어 스페인의 민주주의를 지키려 나섰지만 헛수고였다.

▶ 1936년 7월 18일 프랑코 반란군이 정부 전복에 나섰다. 마드리드는 곧 함락될 것 같았다. 그러나 공화정부를 지키자며 민중이 일어났다. 반란군과 민병대의 전투가 33개월간 이어졌다. 전장에서만 30만이 죽었고 테러와 보복으로 10만이 희생됐다. 병들고 굶어 죽은 63만을 더하면 희생자만 100만명이 넘는 전쟁이었다.

▶ 스페인 내전은 1930년대 세계를 휘감은 파시즘과 민주주의의 대결로 비쳤다. 최근 역사가들은 19세기 이래 스페인 내 좌·우파가 빚어낸 대결에 더 주목한다. 프랑코 반란군은 정부 관리와 노조원 10만명을 학살했다. 그러나 공화파가 교회와 지주, 우파에 대한 적색테러로 많게는 8만명을 죽였다는 사실은 덜 알려져 있다. 성당과 수도원이 불탔고 성직자 7000명이 죽었다.

▶ 프랑코는 집권 직후 공화파 인사만 5만명을 죽였다. 해외추방자와 망명자가 30만이다. 36년 독재 동안 납치·고문으로 희생된 숫자는 정확히 알 수조차 없다. 그러나 프랑코는 1960년대 세계 으뜸가는 경제성장으로 ‘스페인의 기적’을 일궜다. 1975년 프랑코가 죽자 프랑코 지지자와 야당은 과거를 문제삼지 않는 ‘망각협정’을 맺고 혼란을 피하는 길을 택했다. 사회노동당 정부를 이끈 곤살레스 총리는 “역사적 기억을 되살렸으면 재 속에서 꺼지지 않고 이글거리던 구원(舊怨)의 불씨를 헤집어 놓았을 것”이라고 했다.

▶ 스페인에선 그제 내전 70주년을 맞아 학술대회가 열리고 관련 서적들이 쏟아지고 있다. 재작년 집권한 사회당 정부는 ‘과거사 진상조사위’를 만들어 내전·학살 진상규명과 피해자 명예회복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스페인 사회가 대결로 치달을 가능성은 낮다. 불행한 과거엔 모두가 책임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라 한다. 극단적 대결이 한 나라를 얼마나 비참하게 만들 수 있는지 스페인 국민이 뼈저리게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2006.07.19
(김기철 논설위원 kichul@chosun.com)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06/07/19/2006071970393.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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