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시원에 들면서도 내일의 희망을 놓지 않았던 사람들이

고시원

 

‘주인이 문을 여는 순간―우리는 정말이지 기겁을 했다. 그것은 방이라고 하기보다는 관(棺)이라고 불러야 할 사이즈의 공간이었기 때문이다…1㎝ 두께의 베니어로 나뉜 칸칸마다 빼곡히 남자나 여자들이 들어차 있다. 그 속에서 다들 소리를 죽여가며 방귀를 뀌고 잠을 자고 생각을 하고 자위를 한다. 살아간다’(박민규·갑을고시원 체류기).

▶고시원은 전국에 1만개나 된다. 해마다 300~400개씩 늘어난다. 웬만한 호텔 뺨치는 ‘고시텔’도 더러 있지만 대개 월세 20만원 안팎의 싸구려 숙소다. 투숙자 중에 정작 수험생은 30%도 안 된다. 날품 파는 노동자, 가출 청소년, 실직자, 술집 종업원, 외국인 노동자…. 10대부터 노인까지 보증금 낼 돈은 없지만 맨 몸을 눕혀야 할 사람들이 찾아든다. ‘쪽방’ ‘벌집’이 이름만 고시원으로 바뀐 셈이다.

▶쪽방촌은 서울 낙원동이나 서울역 앞, 가리봉동에 아직 남아 있다. 단편 영화 ‘가리베가스(가리봉동+라스베가스)’는 2층 건물에 38가구가 뒤엉켜 사는 쪽방촌이 무대다. 감독이 두 달간 거기 살며 찍었다. 지난날 여공들의 삶터였던 이곳의 새 주인은 대부분 중국에서 건너온 노동자들이다. 그 쪽방촌을 고시촌이 급속히 밀어내고 있다. 그러면서 옛 쪽방촌의 오순도순 사는 맛까지 없애버렸다.

▶그제 대낮 서울 송파구 고시원에 난 불은 불과 27분 타면서 8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그 중 한 40대 남자는 자동차 운전학원 강사였다. 아내는 여성 전용 피부관리실에서 먹고 자며 일한다. 초등학교 2학년 쌍둥이 딸은 시골 외가에서 키운다. 처남은 “매형이 언젠가 가족과 함께 살 수 있다는 희망만은 잃지 않았는데…”라며 울먹였다. 역시 40대인 다른 희생자는 이삿짐센터에 다니다 그만두고 1년 전부터 공인중개사 시험을 준비하고 있었다.

▶공단 쪽방에서 난 불로 여공들이 떼죽음을 당해 사람들을 슬프게 한 적이 한두 번 아니었다. 언제부턴가 그 불이 고시원으로 옮겨 붙었다. 지난 3년 사이 수도권 고시원에서 난 큰 불만 쳐서 5건에 14명이 죽고 21명이 다쳤다. 다닥다닥 붙은 방은 불 잘 붙는 자재투성이인데다 통로까지 비좁아 투숙자들은 불길에 저당잡힌 신세다. 어쩌면 고시원은 밑바닥 삶의 쓰디쓴 ‘고시(苦試)’를 매일 치르는 곳인지도 모른다. 도시의 뒷골목을 익명으로 떠돌다 관에 눕듯 고시원에 들면서도 내일의 희망을 놓지 않았던 사람들이 안쓰럽다.

2006.07.20
(주용중 논설위원 midway@chosun.com)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06/07/20/2006072070472.html

사진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09/07/08/2009070801688.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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