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하면 모두 ‘우향우’ 해서 영일만 바다에 빠져죽어야 한다

포철

 

‘보릿고개는 태항산처럼 높고 험한데/ 단오 지나야 가을이 시작되네/ 그 누가 이 풋보리죽 사발을 들고 가서/ 대감 나리께도 맛보라 나눠줄까.’ 다산 정약용의 첫 유배지는 장기현, 지금의 포항 장기였다. 다산은 보릿고개의 참상을 접하면서 백성을 외면하는 관리들에 분노했다. 장기에는 다산보다 120년 앞서 우암 송시열이 귀양 왔다. 왕조시대 포항은 그렇게 외진 벽지였다.

▶조선 후기 풍수지리가 이성지가 영일만을 찾았다가 무릎을 쳤다. ‘어링불에 대나무 나면/ 수만 명 살 땅이 된다/ 서기(西器·서구 기술문명)가 동쪽으로 오니/ 모래밭이 사라지겠구나.’ 영일만 백사장을 가리키는 어링불엔 정말로 대나무처럼 곧게 제철소 굴뚝이 솟는다. 1967년 이 한갓진 어촌이 종합제철소 부지로 뽑히면서다. 박정희 정부는 공업용수와 항만, 전력, 부지를 따진 끝에 가장 점수가 높은 포항을 선택했다.

▶“실패하면 모두 ‘우향우’ 해서 영일만 바다에 빠져죽어야 한다.” 1969년 겨울 박태준은 모래벌판에 사원들을 세워놓고 다그쳤다. 호주(豪酒) 박태준은 “쇳물이 나올 때까지는 결코 술을 입에 대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1973년 영일만 제1고로(高爐)에서 첫 황금빛 쇳물이 쏟아져나온 날 저녁, 그는 다시 술잔을 잡았다. 연산(年産) 조강능력 3140만t, 세계 4위 철강회사로 커나갈 포스코의 출발이자, 산업도시 포항의 탄생이었다.

▶1969년 포항제철 공채 1기생 이구택은 서울서 하루 종일 기차를 타고 포항에 내려갔다. 황량한 모래밭이 그를 맞았다. 지금 포스코 회장인 이구택은 “유배지에 온 기분도 들고, 닥터 지바고가 된 듯한 낭만도 느꼈다”고 회상했다. 50만 도시로 성장한 포항 인구의 70%는 이 회장처럼 외지에서 왔다. 포스코나 포스코와 관련 있는 철강공단에서 일하는 사람만 10만명이다.

▶포항 건설노조 파업이 50일을 넘겼다. 민노총을 비롯한 다른 지역 노조원들까지 몰려와 허구한 날 돌 던지고 육박전을 벌이면서 포항은 누구도 찾고 싶지 않은 위험한 도시로 무너져 가고 있다. 불법 폭력시위를 참다 못한 포항시민 4만명이 지난 주말 모여 “누구 위한 시위인가” “외부세력 떠나라”고 외쳤다. 시민들의 분노를 노조는 ‘관제(官製)’라고 손가락질했다. 건설노조원도 포항 시민이다. 포항의 기적과 번영은 누구도 해칠 수 없고 해쳐서도 안 될, 시민의 것이다.

2006.08.20
(김기철 논설위원 kichul@chosun.com)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06/08/20/2006082070378.html

사진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1/12/13/2011121302951.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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