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유리 최태섭회장

내가다니는정신여고교회도서실에자원봉사할사람이없다기에자원하여그곳에가끔씩나가서일을보면서우연히읽어본책에서한국유리최태섭회장님이아주훌륭하고본받아야할분이란생각이들어이곳브로그를찾는분들께조금이라도도움이될까하여어설픈타이프실력으로몇시간을걸려서내용을정리해올려놓읍니다.

2007년4월22일양병택



한국유리최태섭회장


한국유리회장이었던최태섭회장은평안북도정주군염호동에서1910년8월26일출생하여오산학교을들어가서공부하던중친구들과독립운동하기로약속하였으나집안에홀어머니와장남인자신이집안을사정때문에포기하면서학교도포기하였지만그가기독정신을오산학교을통하여많은것을배웠다.

변호사가되려고헌법을보다가일본천왕을신성으로받들어야한다는헌법조문을보고포기하고정미소사업을하였으나잘안되어다시화공계통의동창공장을만들어비누등을만들어팔고그다음무역에진출하기위하여삼흥상회를설립하여무역업을하였다.그때그가취급하던콩값이폭동하여위약금을물더라도쌀천가마나살수있는약20만원의이익을무시하고본래계약대로진행하여주변사람들에게신임을얻었다.그후1945년에해방이되면서그가있던곳에서기업주들을악덕상인으로간주하여체포하여죽이려인민재판을하였으나그와같이근무했던노동자들의도움으로죽음을면하고그곳을빠져나오게되었다.


군납업무를하면서일사후퇴를맞이하여피난가는중에서도거액의은행빛을갚아그것이신용확보에큰도움이되어원양어업주식회사를만들수있었다.그리고새로운사업을구상하던중국가적으로뜻있고사회에보탬이되며우리민족에게기여할수있는사업을하고싶어전국적으로벌어지고있는국가재건사업에기여할업종을생각하다판유리를선택했다.

그는기독교정신을근간으로사랑,정직,신용을경영의기본으로생각하면서일하고돈을잘쓰는것이많이버는것보다중요하며항상겸손하고검소하게생활하는것이습관화되었다.그러기에보통사람들이사업을하면골프정도는기본으로할줄알아야한다고하지만그것도거부하고나름대로열심이살고있다.집에있는부인도마찬가지이다.61년도박정희대통령시절재벌기업인들부정조사를위하여재벌인과그들의집을가택수사를하였는데그의집의생활이너무검소해서수사관들도감동되어붙잡혀간최태원도특별히조속이석방되었다한다.그는기업으로얻어진수익을의미있게사용하고저정신장애자교육,학교교육지원사업,국제기아대책본부,크리스찬아카데미등에사용되고있으며그중학교에투자되는곳은경희대학,한신대학,상명여대,오산중고등학교.신일중고등학교,숭의여전등을지원하고있다.그와한평생을같이한부인김성윤여사는남편덕에세상에서가장행복한여자라고생각하며감사하며살아간다.

2007년4월22일양병택

세상에서가장행복한여자(김성은:한국유리최태섭회장부인이본남편최태섭)


『여보,우리한번싸움줌해봅시다.』

스물한살에지금의남편과결혼해서함께살아온지60년,이제는남편의눈빛만봐도무슨생각을하는지알수있지만그래도한가지아쉬운것이있다면이제껏한번도부부싸움을해보지못했다는점입니다.조용하고생각이깊은남편에비해나는본시활달하고목소리도큰편입니다.또한남편은머리가좋아서잘잊어버리지도않고자기가한말은꼭지키는데비하여나는잊어버리기도잘하고실수도잘합니다.그래서가끔씩나는남편에게나를변명합니다.『사람이기계요?지금못해도언제인가는할건데잊지않고어떻게꼭꼭합니까?』이것이우리부부가할수있는부부싸움의전부입니다.


올해는남편과제가혼인을하고함께살아온지60년이되는해입니다.마음은아직도남편을찾아생전처음만주땅을밟던스물한살의어린신부인데,돌아보면언제이만큼살았나깜짝놀랄정도로시간이흘렀습니다.남편과나는첫눈에반했다거나열렬한연애시절이있었던것은아닙니다.본시나의고향은이북신의주입니다.그곳에서큰형부가정미소를하고계셨는데그곳에서일하던정주출신의한청년이바로지금의남편이되었습니다.워낙성실하고일잘했던청년을우리어머니는무척맘에들어하셔서막내사위감으로점찍어놓으셨고,사리원중학교졸업반에다니던나도가끔씩보게되는그가싫지않았습니다.그리고결혼60년세월여든이넘은지금까지아직도나는남편에게어린사람입니다.아침마다조찬기도회에참석하러나가는남편은자명종소리에내가깰까봐시계를침대밑에내려놓고잠을잡니다.


그리고새벽에일어나서는와이샤츠,양말,넥타이등을조용조용꺼내입고뒷꿈치를들고살금살금나갑니다.잠자고있는내이불을잘덮어준채말입니다.아침에일어나이양반어디갔나하고찾으면회장님,새벽에일찍나가셨다고아줌마가일러줍니다.여든살이된노부부가참우숩다고해도할수없지만우리부부는그렇게60년을살아왔습니다.


몇년전미국에있는딸네집에놀러갔을때사귄친구들이지금도나를황재부인이라고불러주는이유도극진한남편의사랑에있겠지요.한번은내가실수를해서우리집에경제적으로큰어려움이닥쳐왔던때가있습니다.나는나때문에우리가족들로하여금어려움을겪게하고싶지않았습니다.그러나남편은그어떠한손해나어려움을당하고서도나를감싸주었습니다.그리고서사업적출혈을감당하면서까지그문제를해결해주었습니다.그일이있고몇십년,남편은한번도장난으로라도그일에대한눈치를주거나싫은소리를하지않았습니다.분명남편에게도감당하기어려운일이었을터인데말입니다.그런남편의행동은나를세상에서가장소중이여기고있다는느낌을심어주기에충분했습니다.


뭔가서로부족한부분은메워주는부부가진짜잉꼬부부일터인데항상받기만해왔던내가남편에게도움이된적이있습니다.61도경인걸로기억됩니다.그당시박정희씨가대통령이되고나서,그전정부에돈을주었던기업가들을잡아갔습니다.한밤중에들여닥친수사관들에게붙들려가고며칠후가택수사를한다며또한차례수사관들이들여닥쳤습니다.온집안을다뒤집고다니며한차례폭풍이몰라친것같이해놓고는,정신이하나도없는나에게미안해하면서재벌집이라기에호화스럽게해놓고살줄알았는데,다른집과많이다르다고하며돌아갔습니다.


나중에알았는데우리집이너무검소하게살아서잡혀갔던남편도경찰서에서대접을받았다고합니다.남편은그일에대하여아내덕이라며나에게고마워했습니다.박에서큰소리치는법이없다지만집에서도또한큰소리로말하는법이없는남편은,회사일하느라바쁘고힘들던시절에도집에와서는힘들다는내색을하지않습니다.하지만말하지않아도밖에서의고충은어느정도알수있기에,남편이집에돌아오면마음편이있게해주려고우스운이야기도들었다가기억해서들려주고최대한마음을편하게해주려고노력합니다.


결혼60주년이라니,정말오랫동안함께살았습니다.남편과내가함께겪은일들은참많지만어찌그것을다말로표현할수있습니까?그저평생나를그렇게아끼고보듬어준남편에게고맙다는말을하고싶습니다.요즘가끔씩남편하고둘이마주앉아지나온이야기를주고받곤합니다.

“둘이시작했는데언제이렇게많아졌지?하하하.우리한번꼽아봅시다.몇이나되나?그러니까큰아들네가세훈이하고수찬이하고…“우리부부는3남2녀의자식을낳았는데지금은증손자까지생겼습니다.전부아무탈없이무난하게살아주는것이기쁨니다.


이제결혼60주년이라고기념식을한다기에그조건이무엇인가생각해보니잘못된자손이하나도없어야한답니다.한명한명꼽아보니다들아무문제없이가정을꾸리고잘살고있습니다.남편은밖에서아랫사람들이잘못을해도큰소리안내고타이른다고하는데자식들에게평생매한대안들었습니다.매맞지않고자란자식들이라버릇도없고제멋대로면어쩌나걱정했지만,평생자식을위해기도하며키운덕택인지,하나님께서올바르게키워주셨습니다.그래서아들셋딸둘중부모를마음아프게한자식이없습니다.그저감사할뿐입니다.


아이들초등학교다닐때부터절대돈봉투들고학교에드나들지못하게한남편이었습니다.

비싸고예쁜옷보다는검소하고편한옷을입히게하고용돈을적게주고아껴쓰게했는데아이들이자라면서한번도불평안하고다들말잘듣는것이기뜩했습니다.다만너희들이공부하겠다고하면힘닫는데까지밀어주겠다고한아버지의말을잘알아들은아이들이스스로열심이공부하여,자기들이가고싶어하는대학을모두들들어갔습니다.사업하는사람끼리서로사돈을맺으면좋다던데,남편은아이들결혼문제에있어서도스스로좋다고선택한배우자를이쁘게맞아주었습니다.


농아들을교육하는데일생을바쳐온우성원의최병문원장은가끔씩우리부부를보면서,회장님은다른사람들한테는존경도받고아주큰어른이시지만,사모님한테는꼼짝도못하시네요하며껄껄웃곤합니다.그러나나는압니다.남편은나에게져주시고내말대로따라주지만그러나오히려더크게나를보살펴주고있다는것을요.


나에게마지막소원이있다면하나님께받은이처럼큰은혜를감사하면서세계선교에힘쓰다가남편과함께이땅에서마지막을맞는것입니다.“세상에서가장행복한여자야나와라“이세상마지막날,주님께서오셔서온세상을향해이렇게말씀하신다면나는손을들고저요!저요!하면서버선발로뛰어갈것입니다.


2007년4월20일정신여고교회도서실에서

한국유리최태섭회장의회고록(사랑에빚진자최태섭)에서보고베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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