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천배,백팔배,그리고삼배
어찌보면참으로부끄러운일인지도모르겠다.왜냐하면승려생활을한세월이만만찮은데삼천배를한것은두번밖에안되기때문이다.그것도혼자서신심이우러나자발적으로한게아니라대중에얹혀반쯤은타의에의해했기에더욱그렇다.
첫번째는해인사로출가했을때였다.속복차림에긴머리로보경당에서삼천배를마쳐야했다.그러고나니머리카락을잘라주고옷은감색행자복으로바꾸어주었다.그때는마룻바닥에방석도깔지않고그대로절을했다.행자실은당연히그렇게해왔고또당연히그래야하는줄로알았다.무릎이까지는줄도모르고열심히절을했다.
두번째는강원에입방하여처음용맹정진에들어갈때였다.성철큰스님이당시에방장이셨다.화두를타기위하여그유명한당신의가풍대로삼천배를해야만했다.삼십여명의학인들이단체로밤새도록가사장삼이다젖도록절하면서법당에서그대로새벽예불을맞았다.아침공양을마치고는백련암에올라가어른을뵙고화두를받았다.
그러나이두번보다도나의기억에선명히남아있는것은대학생시절에했던삼천배다.불교동아리에있을때해인사홍제암으로가수련법회를치르면서마지막날큰절대웅전에서함께삼천배를올렸다.불광법회의중등부학생수백명이수련법회마지막날삼천배를올리는데우리팀이합류한것이다.꼬마들이얼마나절을열심히하는지스스로부끄러워게으름없이절을했다.
휴식시간에해우소를다녀온후마당을돌았다.밤하늘의별빛을보며심호흡을하다가명부전앞을지나가게되었다.꼬마몇놈이중도에낙오하여명부전사자상과동자상사이에끼어정신없이잠을자고있었다.그기억이지금도선명하여명부전앞을지날때마다혼자빙그레웃곤한다.어쨌거나그때삼천배를마치고수백명의꼬마들과함께처음으로먼발치에서나마백련암큰스님을뵐수있었다.
그러고보면나의삼천배역시는통틀어세번이되는셈이다.하지만백팔배는십여년동안부지런히하루도빠지지않고아침마다해왔다.그덕에업장이소멸했는지크게아픈곳없이병원신세지지않고오늘까지수행자노릇을하고있으니,이모든것이백팔배의참회공덕이라고지금도믿고있다.
강원학인시절에는은사스님시봉을하면서함께포행을다녔다.장경각뒤를돌아서운동장쪽으로돌아오는길이호젓하여산책을다니기에는그만이었다.그때마침운동장에서학인들이땀을뻘뻘흘리며열심히공을차고있었다.노장님이지나가며그걸보시고는한마디하셨다.
“저럴기운있으면법당에가서절이나하지"
좀속된표현일지모르지만절을하면온몸운동이된다.그래서건강해질수밖에없다.몸과마음이피곤한날새벽운동한다고생각하며백팔배를하면그런대로게으른마음을이겨낼수있었다.
그냥숫자만헤아리면서백팔배를할경우일종의수식관이된다.
예불대참회문을읽으면서백팔배를하면108부처님을찬탄하는공덕을짓게된다.참회문앞뒤로붙어있는글들은정말감동적이다.눈물흘리며저절로참회가되는내용으로이루어져있다.그래서백팔참회문을읽으면서백팔배를하라고권하고싶다.
불완전한중생의폼으로살면서허물이없을수가없다.알고도짓고모르고도짓는다.그러나허물을짓는것이문제가아니라허물을짓고도참회할줄모르는것이더큰일이다.승속을막론하고자기합리화의방편술만늘어가는이즈음의세태를보면서자기반성이란참으로아름다운삶의모습인동시에수행의한방편임을깨달아야한다.세치혀의화려한수식어로남이야수백명도속일수있지만자기자신까지속일수는없기때문이다.
<원철스님의아름다운인생은얼굴에남는다.의글에서보고베낀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