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병우 박사 를 흠모하며

다음글은한국최초의안과의사며공병우타자기발명자이신공병우박사의유언입니다.


그는“장례식도치르지말라.쓸만한장기와시신은모두병원에기증하라.죽어서한평땅을차지하느니그자리에콩을심는것이낫다.유산은맹인복지를위해써라”는말을남기고이승을떠났습니다.


만약그렇게하지못한다면,가장가까운공동묘지에매장하되

입었던옷그대로값싼널에넣어최소면적의땅에묻어달라고당부했습니다.


이런유언때문에공박사가별세했다는소식은이틀이지나서야동아일보

특종기사를통해세상에알려졌습니다.


공박사는콘택트렌즈와쌍꺼풀수술을국내에도입한유능한안과의사였지만

한글사랑,맹인사랑으로더유명합니다.


그는1938년공안과에눈병치료를받으러온한글학자이극로를통해한글의우수성에대해감화를받은뒤한글의과학화에앞장섭니다.


고성능한글타자기를발명했고한글텔레타이프,한영겸용타자기,세벌식타자기

등을발명해보급했습니다.


한글시력표를만들었고한글문화원을세워한글글자꼴과남북한통일자판문제

등에대해연구했습니다.


그는또자신은옷과신발을해어질때까지입고신으며검소하게살았지만,

맹인부흥원을설립하고장님을위한타자기,지팡이를개발하는등평생장님을

위한일에돈을아끼지않았습니다.


형식보다는본질에충실해집안의문지방을모두없애버렸고"못사는나라에서옷치장에

시간을낭비해선안된다."며한복을입지않았습니다.


아들의결혼식에서며느리에게폐백절하는것보다악수나한번하자고청했습니다.


공박사는미국에서한60대언론인을만나얘기하던중길거리에서"젊은사람이컴퓨터도안배우냐"고호통을쳤다고합니다.


그는젊음은나이의문제가아니고얼마나공부를하며사회에열심히공헌하느냐가

잣대라고말해왔습니다.자신도그렇게젊게살다가가셨습니다.


늘공부하며사는것,남의눈치보다는옳다고믿는것을실천하며사는것,

소아(小我)보다는큰뜻에따라사는것,사랑을품고사는것,이러한삶이야말로

젊은삶이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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