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명의 아름다움

보살님,그동안어떻게지내셨습니까?여름초록이엊그제인듯짙푸르더니어느새만산홍엽도다지고말았습니다.계절은또어김없이지나가는군요.그림자길게이끌고,한해가저물어가고있습니다.때때로문안드려야했지만오늘에야인사를올리게되니민망할따름입니다.


그러나궁색한변명을하자면,보살님께서자신의신상을전혀드러내지않으시니제마음을전할도리가달리없었습니다.여러경로를통해자취를알아보려고했지만여전히자신이밝혀지기를허락하지않으신다는전갈만접했습니다.감사의마음을받는일조차사양하시는깊은뜻을헤아리게되면서,오히려이름석자를분별하는일이속되다는생각을하게되었습니다.


그날이언제였던가요.보살님께서문득제집무실로찾아오신때가지난2월2일아침이었을것입니다.출근하자마자간부들과회의를하는중,전혀일면식도없고사전연락도없이나타나셔서별다른말씀도없이,그저대학발전에도움이될까해서하시면서주섬주섬내민봉투를얼떨결에받아쥐었지요.


단아한중년의풍모를기억합니다.서리를맞고피는국화처럼,삶의많은어려움을이겨낸원숙한지혜로움이그풍모속에있었습니다.담백하게몇마디남기시고자신에대해여쭈는일조차말리시곤총총히나서시는뒷모습을배웅만하고말았습니다.보살님께서는배웅하러나서는제걸음마저손사래치며만류하셨지요.가신뒤에야조심스레열어본봉투에는미처생각지도못한3억원의정재(淨財)가고스란히담겨있었습니다.정재란,말그대로깨끗한기부금아니겠습니까.참깨끗하다고생각했습니다.


저는그때말로만들어왔던불가의가르침으로,누구에게베풀었다는생각조차지워버리는무주상보시(無住相布施)의진정한뜻과모습을보았습니다.하늘의비는무엇을바라내리지않습니다.찬란한햇빛또한아무런대가없이도만물을따뜻하게해주지않습니까.어쩌다가경전에서마주치는구절이기도하지만이처럼생생하게경험하다보니그환한기쁨의충격이꽤나오래도록가슴에남아있었습니다.징소리의울렁이는뒤끝처럼말이지요.


그동안여러뜻있는분들께서학교발전을위해희사해주신재화를받아왔습니다.학교의중요한행사때마다거금을쾌척해주시는덕암선생님,중소기업의리더그룹으로떠오르고있는최회장님,당신이살고있던아파트를기증해주시고가신최보살님,어렵게모은전재산사후기증을약정하시면서늘’오래살아미안하다’는이명기노보살님,그외에도많은분들을생각합니다.학교의재정확충을위해바쁘게돌아다녀야할저로서는더없이고마운분들입니다.



감사의마음에어찌위아래가있으며크고작음이있겠습니까.다만사람의마음을움직이는은근하고깊은향기가조금씩은다르지않겠습니까.공익을위한명분이나구구절절한사연도없이영수증마저마다하신분을저는처음보았습니다.보살님,그날아침향기롭고눈부신무량공덕에저는한참이나망연자실했습니다.


이름없는선행들을더러들어보았습니다.뉴스나신문지상을통해서마음흐뭇한경험을하곤했습니다.그런데그경험이이제는저자신의일이된것입니다.알거나깨달아서즐거운게아니라가슴이환해지는기쁨을비로소느끼게되었습니다.뿐인가요,그기쁨으로해서저는심장의안쪽에등불을켜둔것처럼오래도록화안했습니다.제마음의캠퍼스에는새소리도와서놀고가고나뭇잎도늘새초록으로돋아나곤했습니다.바로우리학생들의모습아니겠습니까.우리나라의미래가여기에서싹트는게아니겠습니까.


보살님,감사합니다.처음의그모습그대로잘계시겠지요?황망중에만나뵌지어언열달이되었군요.그래도보살님의아름다운손사래는문득눈앞에어른거리고,마음의향기는시간을깊숙하게가로질러오늘아침코끝에아련합니다.비록이름도모르지만보살님생각할수록기쁨이커지기만하니제가참복많은사람입니다.3억원의정재가어찌작은돈이겠습니까?그러나보살님의깨끗한마음은그보다더욱커서도무지헤아리기가쉽지않습니다.


빵은나누면자기의몫이작아지지만감동은나눌수록커지는법입니다.빵을만드는데는돈이필요합니다.최소한의돈이있어야빵을만들수있습니다.이것이제조업의기본입니다.그러나감동의생산과유통은이런법칙을따르지않습니다.아무런초기투자를하지않아도마음껏기쁘고행복할수있습니다.받은만큼,아니그이상으로나누어주기만하면됩니다.아름다운감동의자기복제입니다.우리대학이그날보살님께받은선물은바로이것이아닌가합니다.보살님,감사합니다.지금어디에계시는지요?


베풀되바라지않으며,스스로를낮추면서남을높이는

그깨끗한마음의향기가더욱그리운아침입니다


오영교동국대총장님의글(2009년12월3일조선일보)을옮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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