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만대통령의혜안(원자력결단)
한국전력컨소시엄이47조원규모의아랍에미리트(UAE)원자력발전소사업을수주하기약한달전인지난달18일의일이다.기자는한국형원전최초수출로우리국민이느낀감흥을미리맛볼기회가있었다.당시한국전력이미원자력규제위원회(NRC)에처음으로한국형원전APR1400의설계인증허가를신청했다는말을듣고한걸음에달려갔다.까다롭기로소문난NRC의설계인증은외국에원전을수출할때’보증수표’역할을한다.현재NRC의설계인증취득에나선업체는미국웨스팅사와GE,프랑스아레바,일본미쓰비시같은쟁쟁한선발업체들이다.NRC가위치한메릴랜드주의한호텔에서열린인·허가사전검토회의는하루종일계속됐다.
NRC고위관계자들은APR1400의컴퓨터프로그램,연료공급,유사시응급처치등에대해끊임없이질문을던졌다."안전주입탱크에서물이방출되는실험을했다는데사고가났을때의대응기준에맞게했느냐","발전소안전과관련해어떤컴퓨터프로그램을썼느냐"?NRC측의날카로운질문에응수하면서한국형원전의안정성을홍보하는한국전력과관련업체관계자들은가벼운흥분상태에있었다.정근모한전고문을비롯한한국측참석자들은원전기술을배우던학생에서수출용물건을만들어당당하게심사받는사업가로성장했다는감회를공유하고있었다.한국전력원자로설계개발단의서종태처장은이날의감격을이렇게표현했다."아무것도없는상태에서미국으로부터밑바닥에서부터원자력기술을배웠습니다.그런우리가원전수출을위해NRC에APR1400의안전성을설명한이날은한국원자력역사에서의미있는날로기록될겁니다."한국측참석자들은쉬는시간에도서로를격려하면서내년부터본격적으로시작될NRC인허가검토회의전략을논의했다.
이날한전관계자들이공통으로언급한인물은한국원자력역사를만든대한민국초대대통령,이승만이었다."이대통령이없었다면원전수출을꿈꾸는것은불가능했다"(정근모고문)는데모두가공감했다.역사를거슬러올라가보면,이승만은한국발전의버팀목이된한미상호방위조약을1953년체결후3년만인1956년에미국과원자력협정에조인했다.1956년이어떤해인가.북한의김일성은천리마운동을시작했고,대한민국국민의상당수는미국의잉여농산물원조를받아끼니를때우던때였다.그해,증권거래소가처음으로문을열었지만거래될수있는주식은12개뿐이었다.2008년한국GDP의약800분의1수준에불과했던당시의GDP는그나마1.3%하락할정도로먹고살기어려웠다.한마디로,원자력을언급하는것이사치스러운상황에서이승만은문교부에원자력과를신설하고,1959년에는35만달러를들여서교육용원자로를들여왔다.당시지도자로서는드물게한반도밖의동향에밝았던이대통령은원자력산업투자가나라를부강하게할것이라는꿈을꾸었을것이다.이승만의꿈은박정희로이어져1978년고리1호기가가동돼한국원전발전시대를열었다.이승만이뿌린’원자력씨앗’은한전이미국회사를하도급업체로삼을정도로기술발전을이뤄곧만료되는한미원자력협정개정에도영향을미칠전망이다.400억달러의초대형원전공사를따낸배경에는그의과오(過誤)가크게부각돼기념관하나갖지못하는대한민국초대대통령의혜안(慧眼)이있었다는사실을기억하고한해를마감하는것도좋을것같다.
한미상호방위조약을1953년체결후3년만인1956년에미국과원자력협정에조인했다.1956년이어떤해인가.북한의김일성은천리마운동을시작했고,대한민국국민의상당수는미국의잉여농산물원조를받아끼니를때우던때였다.그해,증권거래소가처음으로문을열었지만거래될수있는주식은12개뿐이었다.2008년한국GDP의약800분의1수준에불과했던당시의GDP는그나마1.3%하락할정도로먹고살기어려웠다.한마디로,원자력을언급하는것이사치스러운상황에서이승만은문교부에원자력과를신설하고,1959년에는35만달러를들여서교육용원자로를들여왔다.당시지도자로서는드물게한반도밖의동향에밝았던이대통령은원자력산업투자가나라를부강하게할것이라는꿈을꾸었을것이다.이승만의꿈은박정희로이어져1978년고리1호기가가동돼한국원전발전시대를열었다.이승만이뿌린’원자력씨앗’은한전이미국회사를하도급업체로삼을정도로기술발전을이뤄곧만료되는한미원자력협정개정에도영향을미칠전망이다.400억달러의초대형원전공사를따낸배경에는그의과오(過誤)가크게부각돼기념관하나갖지못하는대한민국초대대통령의혜안(慧眼)이있었다는사실을기억하고한해를마감하는것도좋을것같다.
2009년12월31일이하원조선일보특파원칼럼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