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린걸음
시간이날때면주저없이나는산에오른다.조금빠르게조금느리게오르고올라본다.숨이차기도하고땀이나기도하지만계속산에오른다.산에서마주치는사람들은늘나에게이렇게묻는다.
"엄대장님도땀을흘리시네요.숨이차신가봐요"
그러면나는웃으며그들에게대답한다.
"그럼요,저도사람입니다."
히말라야고산에모두올랐을때주변사람들이내게지어준별명은작은탱크였다.작은키를가졌지만단단해보이고거칠것이없는사람처럼느껴진다고지어준별명이다.그러나그별명이단지외모만을나타내는것은아닐것이다.산에오를때뿜어져나오는강인한나의인상때문이리라.
이런질문을받은적이있다.
"히말라야8000미터급고산에오르다가300미터정도되는산에오르는건너무쉽죠?"
나는산의높이에대해질문을받으면늘같은대답을한다."낮아도산입니다.
산은산일뿐입니다"
아무리고산에오른다고해도등반의시작은낮은곳부터다.낮은곳이내가도전해야할첫대상이고그때품는마음가짐이’첫마음’이라고할수있다.누구나처음부터고산에오를수는없다.고산에오르는한달간의시간에비하면그2배이상의시간을정신과몸을단련하는데보내야한다.
그러나보통사람들은과정을무시하고내가고산에모두오른것,즉결과만을중요시한다.고산에오르는것만큼이나긴연습기간을통해좌절과실패의고통을겪은과정은어디에도없는것같다.그러나나는그들에게그런나의노력을알아달라고하기이전에다른시선을갖도록애쓴다.
코끼리와거북이를좋아하는나는아무래도느린삶을거스를수없는사람인가보다.남들에게해가되지않는동물을생각해보라고하면단연코끼리와거북이를먼저떠올린다.나는산에서만난사람들에게도동물의느린삶을떠올려보라고권한다.그들의몸에서배어나는느림의아름다움을말이다.
코끼리와거북이의주름에서나는시간을본다.늙고,나이들기는사람이나동물이나마찬가지지만그긴시간의흐름을느낄수있다.그리고삶의과정을되돌아보게된다.20년간고산에오르며나의길을돌아본적이없다.그저목표를향해오르고올랐을뿐이다.그러나지금그간나의삶을돌아보면얼굴과손온몸에문신처럼박혀버린주름이시간을대신보여주고있는것같다.어느날은웃어서,어느날은울어서,어느날은고통스러워서생겨난주름은나의삶을돌아보게해준다.
생각해보면나는지금까지코끼리와거북이처럼느린걸음으로살아온것같다.때로는산에서눈보라가몰아쳐정상을눈앞에두고돌아서내려오기도했고베이스캠프에서산악장비를하나하나점검하며모두의생명과연결된끈을놓지않으려고애쓰기도했다.
내게느림은평안함과온화함그리고겸손함을일깨워준다.가만히서서내등뒤를돌아보게해주고내가아닌남의눈도깊이들여다보게한다.그속에서나는사랑이생겨나는것같다.그대상이자연이든동물이든사람이든모두하나같이가장높은곳을향한삶을지향하지만결국가장낮은곳의겸손함을잃어버린후에는모든것을앓은것이나다름없다는사실을깨닫게해주는것같다.
산에오르는사람들도산속에서자연과호흡하는공생을경험한다.함께오르는사람과동료애를느끼며상생을경험한다.하지만그것은누군가와늘함께맞춰걸어갈때에만느끼고경험하게된다.
나는장수동물이라고알려져있어서코끼리나거북이를좋아하기시작했는지도모른다.사람이라면누구나생명을보존하고싶은기본적인욕구가있기때문이다.그러나지금은코끼리나거북이를보며앞으로내가살아가야할방향을다시설정하곤한다.여행을다녀올때마다한마리씩늘어가는나무로만든코끼리나거북이를본다.
앞으로나의인생도느린걸음으로한발짝씩다시인생의에베레스트를세우며걸어가야겠다고다짐한다.사람들의마음에베이스캠프를친나의등정이반드시많은희망에너지를전달하는그날까지말이다.코끼리와거북이의장수하는생을좀빌려와서라도오래오래희망을전하고싶다.
산악인엄홈길의’오직히망만을말하라.’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