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라니열은보아도능구렁이하나는못본다."는우리말속담이있다.초라니는탈놀이에등장하는양반의하인으로,가볍고방정맞은성격을지닌인물이다.이속담은초라니처럼눈앞에어른거리는사물은쉽게보지만,구렁이처럼기어다니는것은못본다는뜻으로,속내를좀처럼드러내지않는사람의행동을뜻할때쓰인다.
이속담이의미하는것처럼능구렁이는노련미를가진사람을일컫는데,부정적으로쓰이는경우가더많은것같다.세상일을모르는척하면서도속으로는후는자기실속을알뜰히챙기는사람,다른음흉한의도를갖고있으면서도그것을절대드러내지않고매사자기가원하는대로처리해나가는사람을능구렁이라고부르기때문이다.정치가나사업가기운데능구렁이가많은데,아마도자기가얻고싶은것들을드러내지않고챙겨야하는직업적특성때문인지도모르겠다.
그런데보통사람도대부분나이가들어가면서어느정도능구렁이가된다.젊은시절과달리알면서도모르는척하고,싫어하는사람앞에서도좋은척하며,대화에외교적수사가늘어간다면능구렁이같은어르신이되어가고있다는증거이다.세상물정어지간히아는사람이라면이정도연기쯤은식은죽먹기일것이다.물론이런경우는’선한능구렁이’로,그래도다행스럽다고할수있다.
그러나솔직히나는능구렁이가되어가는내모습이슬프다.불의를보고당당히맞서려하던젊은시절의패기는사라지고,손해를입거나욕을먹지않으려는비겁함이어느덧몸에배어가고있다는것을느끼기때문이다.술자리에앉으면사회정의와도덕을부르짖으며울분을토하던젊은시절의진지함은어느덧사라지고,음담패설과삶에대한냉소가이야기판의주를이룰뿐이다.
가벼운세상탓일까?그래도우리아버지세대는달랐다.젊은이들의잘못을호통치며나무라던대쪽같은어르신들이많았다.이제우리사회는그런분들을거의찾아볼수없거니와,우리같은중늙은이는벌써부터세상일에몸을사리기바쁘다.인사를안해도아무렇지않게지나치는방관자같은능구렁이어른들에게서아이들이배울것은하나도없다.사회도덕과인륜의기강은법으로제어되는것이아니라는사실을알면서도,대꼬챙이같은어르신들의기상과경륜의지혜가구렁이담넘어가듯사라져가고있다.슬픈세상이다.
하지만생각해보자.인간의수명이길어지면서능구렁이들의수명도함께걸어졌다.나같은환갑능구렁이도앞으로최소한20-30년은거뜬히살수있다.짧지않은시간을능구렁이처럼세상일을방관한채자기것만챙기며죽어갈것인가?마음은청춘이라면서뒷심을자랑하는술자리의호기로바른세상,열린세상,인간미넘치는세상을위해마지막봉사를하는’선한능구렁이’의지혜를베풀다가갈수는없을까?
이계송님의‘꽃씨뿌리는마음으로’에서읽은내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