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라톤은하나의인간극장이며드라마다.누구나인생에서어려움과위기를겪듯이마라톤에서도그런고비를피할수없다.세계적엘리트선수들이나,그들보다몇시간늦게결승점에들어오는우리들이나마찬가지일것이다.42.195㎞라는긴여정을통해우리는인생을배운다.
초반5㎞지점까지살얼음판을디디듯조심스럽게그날의페이스를점검한다.이것이인생의출발과같은마라톤의시작이다.
10㎞지점까지는"오늘왜이렇게컨디션이좋은가"할정도로스스로감탄하며경쾌하게달린다.우리의청춘,우리의20대와같다.모든것을이뤄낼것같고,자신감이하늘을찌른다.내청춘의모습도바로그랬다.
그러나이렇게아름다운시절은너무빨리지나간다.15㎞지점이되면몸이무거워지기시작한다.뛰는속도가느려지고몸이축처지기시작한다.노란색경고등이켜진것이다.
그리고첫번째고비가온다.인생40을전후해한번의큰위기가찾아오듯25㎞지점에서우리는여지없이위기와마주서야한다.온몸이무거워지다못해뻣뻣하게굳어온다.속도를늦춰보기도하고걸어보기도한다.과연오늘끝까지뛸수있을까하는두려움이한꺼번에엄습한다.’나는아이들을잘키울수있을것인가.”회사에서퇴출당하지않고버텨낼수있을것인가.”지금가는길이내가갈길이맞는가.’가슴과어깨를인생의무게가짓누르기시작하는시기이다.
그러다보면드디어마라톤’마(魔)의구간’에진입한다.30~35㎞지점이다.중급마라토너라면보통출발후두세시간뒤에만나는구간이다.
"무슨부귀영화를누리겠다고사서고생하는가.물마시고바나나하나먹고딱5분만쉴수있으면좋겠다.""마라톤은이번이마지막이야.다음부터는이런고생은절대다시안한다."가쁜숨을몰아쉬며어디에라도그대로푹주저앉아버리고싶어진다.집중력도현저히떨어진다.자신과의싸움이시작된다.평소같으면생각도나지않을일들이주마등처럼머리를스쳐간다.그러나여기까지와서더이상주저앉을순없다는생각이번쩍든다.
정신차려고개를들어보면응원구호가보인다.’새는날고물고기는헤엄치고인간은달려야한다.’장거리육상의전설인체코의자토벡이남긴말이다.결국인간은달려야한다.마치인생처럼두려움과고통을느끼며원망과후회하며달리는것이바로마라톤아닌가.
마라톤은마지막에놀라운반전의각본이준비된드라마이다.35㎞를넘어가면서피로감이조금씩사라진다.뛰어본사람만이느낄수있는’작은기적’이다.있을수없는일이몸속에서벌어지기시작하는것이다.이것이소위’러너스하이(runner’shigh)’일지도모른다.어떤전문가들은인체가스스로겪는고통을줄이기위해통증제거호르몬을스스로분비한다고말한다.어떤전문가는근육속피로물질이자체적으로타서에너지를발생시킨다고설명한다.
어떤이유이든우리는인체기능의놀라운회복력을발견한다.소금에절인배추처럼몸은이미만신창이가돼있지만마음은날아갈듯가벼워진다.이것은폭풍과풍파를거쳐평온을되찾는인생의노년과같다.바로관조(觀照)의경지에들어선것이다.그리고몸은다시초반5㎞의스피드를회복하기에이른다.
온갖고통을다겪고드디어’40’㎞라는숫자가눈에들어오는순간,온몸에희열을느끼게된다.가슴은요동치고"감사합니다"라는말이절로나온다.어느새눈에들어오는41㎞팻말.그러나한순간후회와아쉬움이몰려온다.’내가왜이렇게밖에못달렸는가.”아까좀더힘을내달렸으면결과는달라졌을텐데….’회한에사무친채대단원을향해돌진한다.그러고보면인생도마라톤처럼황혼에이르러서는누구에게나후회와유감으로마감되는게아닐까.
마라톤이란건강한정신과신체의각부위가마치오케스트라처럼어울리는선율같은것이다.그깊은경지에취하는것이바로마라톤의황홀경이다.
춘천에서경험하는마라톤은더욱특별하다.그준비가참으로정갈하고품격이있다.단풍진산과춘천공지천호반을수놓는마라도너들의물결….국내·외유수마라톤대회를수십회뛰어봤지만춘천을능가할대회는세계적으로별로없다.그래서지난달에도어김없이춘천을찾고말았다.
아스팔트위에서만나는인생,그교훈을음미해보는것은가치있는일이다.가급적중년이전에마라톤을경험해보면자신의삶의계획을세우는데많은밑거름이될것이다.마라톤을3~4회정도거듭하면자신의연비와속도를대강은파악할수있다.거기서한시간정도속도를늦추면그것이바로건강마라톤이다.조금은답답할것같지만부상당하지않고,무리하지않고완주하는것.이것은인생을살아가는지혜와같다.그래서마라톤이바로인생그자체가아닌가!
문송천(카이스트교수2010년11월5일조선일보에서발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