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음을배우고앞뒤없이돌아다닐세살무렵나는집앞철길을겁없이혼자건너다사고를당해그만두팔을잃었다.사고후곧장병원으로옮겨졌지만의사들이하는말은한결같았다.
"가망이없습니다.다른병원을찾아가십시오.“
어머니는의식을잃은나를업고뛰어다니다가겨우도립병원에나를눔힐수있었다.그리고거기에서나는기적적으로소생의울음을터뜨렸다.
병원생활후에는장장3년이란시간을어머니등의땀냄새를맡으며업혀다녀야했다.내치료비때문에농사를짓던우리집은다른곳으로집을옮겨다녀야할정도였다.
병원을다닌지2년이되면서,그러니까다섯살이되면서나는손이하던모든행동을발가락으로대신하는훈련을시작했다.그중에가장중요한것은앞으로의학교생활을위해발가락으로글을쓰는것이었다.
양팔이없는상태의다섯살짜리아이의걸음은불안할수밖에없었다.뒤뚱거리다가는넘어지고다시넘어지고해서얼굴엔피멍이사라질날이없었다.발에도벌건물집이잡혀식구들은남몰래눈물을흘려야했다.아직자신의모습이어떤지도모르는꼬마에게눈물을보일수없었기때문이다.
내가초등학교에입학할때가되던해였다.같이놀던친구들은모두학교에가고없어텅빈골목길을바라보면서,집안사정으로학교에못간나는조금씩우울해지기시작했다.멀지않은학교운동장에서들리는호각소리,아이들의구령소리,마냥뛰어가고싶기만하여답답하던그때의심정을지금도잊을수없다.
대신나는집에서언니들이가르쳐주는수업으로만족해야했다.때때로교실근처에다가가조용히지켜보고있노라면친구가어느새알아보고서로눈짓을주고받는것이유일한낙이었고,나도친구옆에앉아공부해보는것이간절한소망이었다.
이런내모습을볼수없었던지,어느날큰언니가학교로찾아가다음해에는입학할수있다는기쁜소식을갖고왔다.그리고해가바뀌어남보다1년늦게나는처음으로학교생활이란걸시작했다.
하지만생각보다학교생활이좋은것만은아니었다.친구들의눈초리가의식되고,내발에시선이집중되고있음이느껴질때마다내가일반인과다르다는것이피부에와닿았다.몇년간집에서익힌발의행동이글씨는물론이고,웬만한소지품을다룰수있을정도였는데도그런눈초리를대할때면나는어딘가로숨고만싶었다.그때선생님이좋은친구를사귀게해주시지않았더라면지금의나는없었을것이다.
시간이지나점차내가아픈마음들을털어내던4학년어느날,담임선생님이내게미술공부를권유하셨다.미술시간에주위의시골풍경을내가좋아하는색으로마음껏그렸는데선생님이그그림을보신것이다.
그때부터내게미술은떨어질수없는친구가되었다.그럼에대한호기심은더해가기만했고,등교할때마다미술도구가첫번째준비물이되었다.동양화가무엇이며,사군자의기법이어떤것인지도배웠다.
그러나처음잡는붓은발가락사이를빠져나가기일쑤였고,발놀림도둔하기만했다.그렇다고포기할수는없었다.맹목적인것같지만신체적조건을극복하기위해수천수만번의반복훈련이필요했다.
집-동양화-학교만이내생활이되면서시간은흘러갔다.그림이안될때면허전하고슬펐지만,그반대일때는하교길이그렇게신날수없었다.또한처음으로창조란것이이렇게도어려운것임을깨달았다.
이런생활끝에눈물바다와환희의초등학교졸업을마치고"너를끝까지지켜보겠다고하시던교장선생님의말씀을뒤로했다.그리고는화실이가깝던시내중학교와는정반대인,집에서50분이나걸리는제일여중에입학했다.
처음만나는친구들로부터또따가운시선들을느껴야했지만급우들은금방내손들이되어주었다.나는한결성격도밝아지고여유있는생활을할수있었다.물론그림연습은더많이했다.전시회를찾아다니다보니나도섬세한창작을하고싶다는욕심과의욕이생겼다.
한편으론체육시간이끝나고땀방울이송글송글맻힌친구들의얼굴이그렇게도부러울수가없었다.이제나는여고시절의막바지에와있다.주위의도움으로여러번상도탔고대학진학의문도열렸다
새로운대학생활에대한불안도없진않으나이과정을이겨내면나도떳떳이사회의한대열에낄수있다고나는믿는다.
(오순이,마산제일여고3학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