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의가되고싶거든겸손하고,보람을안고싶으면친절하라
‘명의가되고싶거든환자와동료의사에게는물론이고간호사나병원직원에게겸손해야하고,보람을안고살고싶으면환자에게친절해야한다.’는것이의사생활50년,필자의결론이다.
어느일요일아침이었다.단풍놀이도못가고병원일에매달려있을전공의들을격려코자병원에나갔던필자는먼저응급실에들어섰다.
60세가넘어보이는허름한옷차림의환자가젊은전공의를붙잡고"내재산의반을드리겠으니꼭살려달라"고애원하고있었다.죽음이바로눈앞에닥친듯한격심한복통에시달리는급성췌장염환자였다.최선을다해줄것을담당의사에게부탁하고응급실을나섰다.그후어느날병원을돌아보던나는문득그환자가궁금해졌다.병실에들러보니그는거의완쾌된상태였고곧퇴원할것이라고했다.
나는"재산의반을줄테니꼭살려달라고하시던데재산이어느정도며,그렇게까지꼭살아야한다는사연이무엇이냐"고물었다.그는1.4후퇴때가족을북에둔채단신월남했으며,늦게야재혼을해서지금겨우초등학교6학년인외아들이있다는것이다.그아들이대학을졸업하고결혼할때까지는꼭살아서뒤를봐주어야하겠으며재산은2억–3억원(현시가로20억–30억원)이된다고하였다.
그런재산가가허름한옷차림에입원료도싼다인실에입원할정도로돈을아끼면서도그많은재산을주고라도꼭살아야겠다는것이환자들의심정인것이다.물론그환자의주치의였던K의사가억대부자가됐다는소문을듣지는못했다.그러나주치의는억대의돈과맞먹는보람과희열을느꼈을것이분명하다.
모든환자는제나름대로의절실함이있는법이다.자기의손톱곪는것이남의염통곪는것보다더하다는속담도있다.
그렇다.의사들에게는남의절실한소망을들어주고거기서희열과보람을찾을수있는기회가항상마련돼있다.그러나이는환자들에게친절하고성심성의를다했을때만해당된다.친절해야하는의사가불친절하고부주의했을때반작용은그기대만큼크다.어차피해야만되는일이라면친절하고성의있게함으로써환자들로부터은인으로칭송받고보람을느끼는것이지성인의슬기라고믿는다.
천당에온의사가특별대우받는것을보고사람들이불평하자하느님이"이사람들아!의사가천당에오기는이번이처음이야.그러니우대해야하지않겠나"했다는농담이생져나지않도록의사들의지성과자정(自淨)이절실하다.
의사는환지에게겸손해야만명의가될수있다.해가뜨면들에나가고,해가지면돌아오는오지의촌로들은도회지사람들처럼쫓기고분주하게살아본경험이없다.
그런할머니가담석증에걸린것이다.이소식을들은서울의작은며느리가유명한소화기내과교수에게특진을청했다.교수를마주한할머니는평소에하던대로느긋하게시작한다.
"두달전에우리손자가동네칠성이하고싸우는것을밀리려고뛰어가다발목을삐었는데,그것은침을맞고나았으나한달쯤전에갑자기윗배가아프고소화가안돼서동네의원에게갔더니위가나쁘다면서약을주어서먹고있는중인데도잘낫지않는다.읍내병원에가서진찰을받고위가나쁜것같다고X선사진을찍었으나큰이상이없다면서약이나먹어보라고해서2주일째약을먹고있는데작은며느리가자꾸서울에와서진찰받으라고해서할수없이서울에와서~~"
바빠서죽을지경인교수가참지못하고"알았어요."하고그촌로의말을막아버리면그교수는오진을피할길이없다.그말뒤에이어졌을"서울에왔는데2일전에도시골에서아팠던것과똑같이갑작스레윗배가몹시아프고그증상이오른쪽어깨로뻗쳤다"라는얼마만에한번씩반복되는담석증의특징적인호소를들을수없었기때문이다.그상황에서는아무리유능한교수라도약이나먹어보라면서위장약이나주었을것이다.
다시시골로내려간환자는그유명한교수가처방한약을신주처럼믿으며먹고있던중다시담석증의특징적인증세가재발하고이이야기를다들을수있었던시골선생님은당장에초음파검사를해서담석증임을확인한후수술을함으로써대학교수도진단못했던병을찾아낸명의가된다.
여기서우리의사들은아무리바쁘더라도환자의호소는끝까지들어줄줄아는겸손함이필수적임을알수있다.
그교수는한가지더현실적인이득을놓친것을알아야한다.촌로들은도시사람들처럼화제거리가많지못하다.화제거리가적다고말을안하고사는것은아니다.친절하게해준의사에대한감사한마음은화제거리가적은촌로로하여금만나는사람마다친절했던의사의이야기를반복하게한다.이얼마나확실하고좋은선전원인가.
대전에서유명한의사인친구K의이야기를소개한다.그가개업한지얼마안된젊은의사시절이었다.대전지방에서도아주유력한분이목에가시가걸렸다고찾아왔다.물론그전에이미유명하고노련한이비인후과를두곳이나들렀으며가시가없다는진단을받고도거북한것이풀리지않아서젊은의사를찾아오게된것이다/
K는’환자가아프다면그말을믿어야한다.’는것이그가선생님으로부터배운신조였다어딘가가시가숨어있을것으로믿고오랜시간동안목안을빠짐없이샅샅이뒤졌다.그리고그는가시를빼내는데성공했다.환자의말을겸손하게들어준때문이었다.
4주일후에대전에서가장이름있는일식집에간K는그식당주인으로부터극진한대접을받았다.그유력한인사의목에가시가걸린곳이바로그식당어었으며가l시를꺼낼때까지얼마나마음을졸이고죄송했는지몰랐다는것이다.그후이식당은온통K의좋은선전원역할을하게되었다.
동료의사의의견을존중할줄아는겸손이명의를만든다.경험이수십년인원로는신출내기의사보다진료확률이높다.그러나그교수도오진은피할길이없다.아무리유능한방사선과전문의도일정한비율의폐농양과폐암,위궤양과위암은감별이불가능하고그렇기에우리는CPC라는임상토론회를하게미련이다.
나는위임이라고확신하는데젊은후배가위궤양이라고진단했을때는그도그나름대로의근거가있을것임을인정해야한다.조직검사로암임이확인될때까지는내말만믿으라는식의단정은극히위험하다.그중1–2%는암이아니고궤양일수도있기때문이다.암을궤양이라고진단한것은오진했다는실수로끝나지만궤양을암이라고진단했을때는그환자와가족에게사형선고를내린것이나다름없는충격을준다.때문에그후로는환자나가족은그의사를원망하고다시는찾지않게된다.
A시의모의사는미국에서수련을마치고귀국한확실히유능한의사였다.개업초기에는많은환자가그를찾았으나점차환자가떨어진다는소문이었다.그원인이바로’내말만믿으라.’는그의지나친자신감때문이었음은두말할나위도없다.
의사는누구나소정의학과를이수하고일정한수련을거친사람들이다.가능하다면한사람의의견이라도더참작하는것이진단의확률을높이고오진을줄이는방법이다.그렇기에젊은의사들까지포함해서케이스를토론하고검토하는것이의사의옳은양심이고환자를위하는길이다.
명의가되려면간호사나병원직원들의지원도중요하다.동일한학문과능력을지녔어도이들의지원여부가그를유명하게도하고무능하게도한다.필자가경북대학에재직할때의일이다.연로한간호부장님이1년차레지던트를타이르고있었다.
보소닥터L.닥터L은유명한의사가되고싶지않소?우리간호사들이닥터K에게만환자를소개하고닥터L에게는안하면아무리닥터L이유능해도별수가없소.유명한의사를만들고안만드는것은간호사들이란말이오.앞으로는제발간호사들에게거칠게굴거나폭언을하지마소"라는것이었다.
환자가의사를신임하고존경할때와의사를믿지않고불만일때의치료효과의차이는이미과학적으로입증되고있다.그렇기에의사는항상품위를유지해야한다.함부로말을하거나거칠고무례한태도는의사로서의기본자세미달이다.그러한뜻에서이유여하를막론하고의사의폭력은용납될수없다.필자가병원장재임중에폭력을행사한의사들을해직한것은그때문이다.
근래에는임사체험(臨死體驗)이니하는혼수상태의환자에관한기록들이많아졌다.’혼수상태의환자는정신이육체를떠나밖에서자신의육체에일어나고있는일들을낱낱이보고다시육체로돌아온다.’라는주장은미국의정신과의사큐브라로즈뿐아니라일본의저널리스트다찌하나등수많은사람들의주장하고있다./
의학적으로는아직도입증되지않았고논란의여지가많으나우리가혼수상태라고믿었던환자가그간에주위에서일어났던의사와간호들의대화내용을생생하게기억하는예는확실하게있다.\
M사장은6.25동란중중상을입고혼수상태로제27육군병원으로후송되어왔다.군은밀려드는환자중에서생명을건질수있는환자부터선택적으로수술을하도록규정되어있었다.M사장은도저히소생할가망이없어서수술순서가뒤로미루어진채수술실복도에놓여졌다.그를본H수녀님은L군의관에게"L대위님저환자는이직도죽지않았습니다.수술하도록해주세요"라고청했다.L대위는"수녀님왜그래요.이미다죽은사람인데영안실로옮기세요."라고했다.
얼마후생각이난수녀님이영안실에가보니M사장의숨은끊어지지않고있었다.수녀님은M사장을수술실로끌고왔다.그러나L대위는역시살아날가능성이있는환자부터수술해야한다는원칙을내세웠다.그러나H수녀님은그환자가꼭살것만같아서간청끝에M사장은수술을받게되고기적적으로소생하였다.M사장은그후독실한가톨릭신자가되고사업에도성공하였으나아직도그의몸에는무수한수류탄파편들이박혀있고다리를절고있다.
M사장의말을직접듣고필자는깜짝놀랐다.병원에서있었던L대위와H수녀님의대화와영안실을오고간경위를모두듣고알고있었으나듣기만했을뿐그에대한반응을조금도할수없더라는것이다.
자살을기도했던A은행의K차장도같은글을신문에쓴적이있다.
K차장은혼수상태로C대학병원중환자실에누워있었다.의사가"가망이없으니치료를포기하자"고하자C수녀님이왜그런지살것만같습니다.끝까지치료해봅시다."하며부탁하는소리가들렀다.그러나그도역시듣기만했지전혀반응할수없었다는것이다.이얼마나엄청난사실인가.마지막가는길의환자에게"나는이제버려지는구나!"하는슬픔을안겨준채저승으로보내는실수를할수있다는실례이다.우리의료인들이혼수상태의환자앞에서못듣는줄만알고함부로언동하는것을삼가야함을일깨워주는사례이다.
의료가인술이어야함은예나지금이나,미래에도변할수없다.그것은인명의가치가시대나장소에따라변할수없기때문이다.
동시에우리의열악한의료환경도기필코시정되어야한다.왜냐하면그원인이의사의의견은전혀무시한채,관(官)이일방적으로결정한부당하게저렴한의료보험수기에있기때문이다.
우리의료인들과국민의바른인식을위해서의료보험입안당시의상황을간략하게적어둔다.의료보험이시행되기2개월전인77년4월30일전국병원장들은우리경제사정이의료보험을실시하기에는아직이르고,정부의보조없이기업주와근로자만의부담으로의료보험을실시하는것은보험수가를부당하게낮게책정하게되고,따라서각종부작용이예견된다는이유로반대하였다.
그러나정부를대변하는고위관리는당시로서는가장위협적인용어이던’안보적차원’에서의료보험은실시되어야한다고주장했다.
의료보험수가는꼭의료단체들과협의하여정하겠다던정부의다짐은보험실시직전에일방적으로결정하여통고되었으며이부당하게저렴한의보수가가오늘날우리의료계를유래없는곤경으로몰아넣었다.
보험실시1년후에대한병원협회가고려대학교기업경쟁연구소에의뢰해서분석한결과로는보험수가를52-70%인상하여야만일반환자에게부담을떠넘기는일이없는적정수가가될수있다는것이었다.
당시의개발경제,즉수출이절대적이던상황이래서기업이부담해야하는보험률이올라가는것은곧원가의상승을초래한다는경제계의주장이절대적설득력을발휘할때였다(뒤늦게1996년11월에알려진바로는이경제계의주장때문에박대통령은의료보험을반대하는입장이었다고모인사가증언하였다).
*필자김순용(金舞鏞)님은1922년9월21일평양의과대학졸업하시고한양대의료원장과대한병원협회회장역임하셨으며현)서울성애병원명예원장
<질병없는세상을꿈꾸는사람들이란에세이책에서옮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