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조의 마음따라 수원화성탐사 방문

‘길위의인문학’올해첫탐방열려…
사도세자향한정조의孝心느껴져

26일수원화성방화수류정앞에서‘길위의인문학’탐방단원들이신병주교수의설명을듣고있다.

1794년조선22대임금정조는수도권남쪽요충지인수원에화성(華城)을축조하기시작했습니다.공사기간2년8개월,공사투입인원연70만명,공사비80만냥….당대동·서양의과학·건축기술이총집결된대(大)공사였죠.그런데정조는왜이곳에화성을지었을까요?정조의효심(孝心)때문입니다.비참한최후를맞은아버지사도세자의무덤을천하명당이라는수원화산(花山)으로옮기며신도시를건설한것이죠."

26일오전유네스코세계문화유산이자사적제3호인수원화성의장안문(북문)앞에서신병주건국대사학과교수가설명을시작했다."일제강점기,6·25전쟁으로파괴된화성이지금처럼복원된것은건축과정을치밀하게기록한공사보고서’화성성역의궤’가있기에가능했습니다.이렇게잘복원된성곽이있다는것은행운이고자랑이죠."

조선일보·국립중앙도서관·교보문고가주최하고한국도서관협회·대산문화재단·문학사랑이후원하는’길위의인문학’의올해첫번째탐방은’정조의마음을따라가다’라는주제로수원화성일대에서열렸다.오전9시장안문을출발한60여명의탐방단은화성서장대~화성행궁~방화수류정~용주사~융건릉으로이어지는길을따라정조의발자취를좇았다.탐방에는신병주교수와안대회성균관대한문학과교수가강사로초빙됐다.

성곽을따라걷던탐방단은팔달산정상에있는화성서장대(西將臺·서쪽의군사지휘소)에올라잠시숨을골랐다.’화성장대(華城將臺)’라고굵게쓰인현판을가리키며안대회교수가"정조의친필현판을복원한것"이라고하자탐방단은"힘이넘치는필획"이라며감탄했다.엄마와함께온윤정무(12·백신초등학교)군이"임금님이쓴글씨면보물처럼아껴야겠네요!"라고외쳐웃음이터지기도했다.

혜경궁홍씨의회갑연이성대하게열렸던화성행궁은정조효심의또다른증거.1795년정조는회갑인어머니를모시고7박8일간의화성행차에나선다."남편의무덤을처음방문한혜경궁홍씨의슬픔이너무큰것을보고정조가당황했다"고신교수가설명했다.’죽어서도아버지와함께있고싶다’는유언을남긴정조는결국아버지곁에묻혔다.이날탐방의마지막코스도사도세자가묻힌융릉과정조의무덤인건릉이었다.건릉잔디밭에앉은탐방단앞에서안대회교수가’정조의비밀편지와통치의기술’을주제로한시간동안강연을펼쳤다.안교수는"학문적깊이와넓이에서조선왕조500년을통틀어정조를따라잡을임금은없다"며"숱한편지쓰기로사적관계망을구축하고감성적교감으로신하를제사람으로만들려는면모를보였다"고말했다.

이날답사를끝낸탐방단은화성에서가장아름다운건축물이라는’방화수류정(訪花隨柳亭)’을주제로즉석5행시대결을벌였다.남석희(50)씨는’방금본정자모습에넋을잃었네/화려하기도대단하거니와/수수함이곳곳에묻어있네/유유히흐르는수원천같이길이보전할/정조대왕의마음이담긴화성의백미일세’를발표해박수를받았다.

<2011년3월28일조선일보에있는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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