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명보올림픽축구대표팀감독은현역시절부터책을많이읽는선수로소문났다.지난광복절날강원도인제공설운동장에서’홍명보장학재단컵유소년축구대회’가열렸다.대회가끝난후그는어린이선수들에게축구공이나운동복이아니라책을한권씩선물했다.기자가"왜책이냐"고묻자이렇게대답했다."운동선수는아무리잘해도30대중반이면은퇴합니다.그후의인생을잘살려면지식·교양·외국어가필요하고,그러려면책이제일좋지요."
여자복싱세계챔피언김주희를키운권투체육관장정문호씨도홍명보와비슷한이야기를했다.그는복싱을배우러온김주희에게책열심히읽고,학교성적표꼭가져오고,성적떨어지면체육관에나오지말라는세가지를요구했다.이유는이랬다."못배운선수의말로(末路)는비참하니까요.한국이낳은가장위대한복서라는아무개는지금해결사노릇하고있어요."
홍감독과정관장의말은미사여구(美辭麗句)없이사안의정곡을찌른다.우리나라에는초등학교고학년때부터수업을팽개치고운동만하는학생선수들이초·중·고·대학교를합쳐11만명쯤있다.이들중단계단계를잘거쳐프로선수로성공하거나괜찮은스포츠지도자자리까지오르는선수는극소수다.99%는도중에진로를바꾸거나그저그런선수로뛰다뾰족한대책없이스포츠계를떠난다.프로스포츠천국인미국에서도고교대표로농구를한학생이대학을거쳐NBA프로팀에진출할확률은1만명에3명,0.03%에불과하다.미식축구(NFL)는0.08%,야구(메이저리그)는0.45%다.운동선수도공부를해야하는이유는거창한데있는게아니라바로먹고사는문제에있다.
학교와교육당국은학생선수들에게현실을냉정하게주지시키고강제로라도공부를시킬의무가있다.중도탈락하거나은퇴할경우새인생을살려면그단계에필요한진학·취업·생활지식이필요하다.그러나대다수학교경영자와감독·코치들은대회에서이기는것말고는관심이없다.교육과학기술부조사를보면중학생선수의75%,고등학생선수의97.8%가교과성적이하위20%에속해있다.이들은대학체육특기생이나프로팀선발에탈락하는순간갈곳이없어진다.학교가자기이득만을위해학생들을운동기계로내몰고인생을망치게하는것을선진국에선점잖게’제도적부패'(systematiccorruption)라고부르지만,사실은범죄행위나다름없다.
미국에선105년전인1906년에전미대학체육협회(NCAA)가발족해학생선수들의’학습권’을보호하기위한고민을해오고있다.NCAA는고교4년간16개필수과목을이수하지않은선수는대학선수등록자격을주지않고,대학재학중평점이2.0미만으로떨어진선수는정규대회는물론연습경기출전마저금지시킨다.최근에는대학이특기생을받을때일정수준이상의수능(SAT)성적과고교학과목성적(GPA)을의무반영토록하겠다는한층강력한방침을발표했다.
우리는작년7월에야NCAA를벤치마킹한한국대학스포츠총장협의회(KUSF·회장김한중연세대총장)가생겼다.1년된기구가우리학원스포츠의고질병을단기간에고치기는쉽지않을것이다.그러나꼭해야할일이다.기발한처방을내는것보다더중요한것은기득권과관행을부수는용기와추진력이다.
<2011년8월23일자조선일보태평로난의김형기논설위원의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