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해영의‘청춘아가슴뛰는일을찾아라.’를읽고
어제조선일보에국제사회복지사김해영에대한인터뷰기사가소개되었다.그기사를보고많은감동을받았다.인터넷으로검색해보았더니이미작년에한국일보에서소개된기사가있어그것또한정독을했다.그리고어제서점으로가서그가쓴책을구입하여다읽었다.다음글을그책을읽어본내용과느낌을소개한다.
저자김해영은134센티미터의작은키,척추장애,불편한양쪽다리,이모든결점을이겨내고세계의낙후된나라를돌아다니며활동하는국제사회복지사이다.
스스로세상을등진아버지와정신이상증세를보이던어머니,가난한집의5남매중맏딸,불편한몸을이끌고떠밀리듯했던월급3만원식모살이까지하며가정을책임졌던그녀의유년기는좌절과시련의연속이었지만이모든고난을떨치고일어섰다.
초등학교를간신히다닌그녀는열네살에한의사집의식모로들어가서그곳에서천자문을스스로배웠고,어느교회목사사모님이책을사달라는부탁에사서오경전집을사서그것을읽으며한글로된설명을읽으며한자와뜻을함께공부했다.
식모생활보다는기술을배워야겠다는생각으로기술학원에들어가려고했고자리가빈곳이편물반이라고해서편물을공부해서장애자기능대회국가대표로선발되었고그기능대회에나가게되면서초등학교졸업을갱신하고자고등학교입학검정고시반에등록하여중학교자격을얻었다.그리고기능대회에서편물부문에금메달을획득했다.
국내에서편물기술로성공한그는안정적인생활을마다하고아프리카의작은나라브츠나와에편물기술자로서자원봉사를갔다가그곳에서직업훈련교육자로,선교사로14년동안성공적인삶을이루며아프리카현지인들의마음을얻었다.
그동안폐교위기를맞이했고모두떠나는상황속에서도자신이학교를맡아가며회생시켰고그학교를위하여모금과후원자들을모집하여제자리로돌려놓았다.
그리고이왕이면전문적으로사회봉사를해보겠다는다짐으로2003년12월무작정미국으로건너갔다.자원봉사로일했기에별도로저축한돈도없어겨우3천불만비상금으로갖고갔다.영어를별도로배워본적이없는그는봉사시절현지인들과대화하며몸으로익혔다고했다.대학첫학기학비만4천950달라였다.우선잘곳과생활비대책도없었다.그에게있는것은오직성실이었다.아프리카,자원봉사,14년이것이그의성실을대표하는그의브랜드였다.그것이사람들의마음을움직였다.
보츠나와직업학교를후원하던분중에서어느박사님이돕겠다고자청했고그분은한국에서유산을받은것이있는데그것으로그녀를돕겠다며5천달라수표를보내주었고매등록때마다도왔다.
콜럼비아대학원에석사과정으로향상반을지원했다.보통석사과정을2년을하게되어있으나향상반은1년만에마치는집중단기코스이다.그것을기간을줄임으로학비를줄이자는생각이었으며또한열심이공부했다.
그는작년2010년5월에콜럼비아대학원석사과정을끝냈다.그는대학원을졸업하면서마음속으로약속한것이있다.월급안받고일하기이것은그가그동안받은감사함을되돌려주려는마음이다.
2010년9월그리고그는국제복지사가되어지구촌을무대로활동하고있다.그는남부아시아부탄지역사회개발프로젝트팀장으로서활약하고있다.
그녀는매순간온힘을다해최선을다하며살아온그녀는자신의삶을학취개진(學就開進)의삶이라말한다.즉배움으로어려움을이기고배움으로꿈을찾고배움으로비젼을세우고베움으로삶을나눈다고했다.나눔과봉사를삶의소명의식을느끼고있는듯한그의삶에존경과찬사를보내고싶다.
2012년3월1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