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이전부였던한남자가발견한새로운삶의방식
느닷없이날아든이별통보
기쿠치는32살의독신남성으로서외국계기업에서일하고있다.여자친구와시권지도벌써5년이되었다.
두사람은그날도지주가던커피숍에서만나기로했다.하지만약속시간이다되어가는데여자친구는아직도나타나지않는기쿠치를기다리고있었다.
그녀의표정은어두워지기시작했다.그때기쿠치에게서일때문에10분정도늦을것같다는메시지가도착했다.
이렇게약속시간보다10분늦게도착한기쿠치가커피숍안으로들어왔다.그녀는못본척하며이미조금식어버린밀크차를마시고있었다.
그는그녀가못본척하는것에개의치않고빠른말로미안하다고밀하며자리에앉았다.그러고는늘마시던카페오레를주문한다음담배를한개비꺼내물고피우기시작했다.
그의모습에서왠지모를부자연스러움이보였다.회사에서무슨일이있었는지그는왠지모를불안감을감추려는듯이급히담배를빨아댔다.
사실그녀는그날중요한이야기를전하려고만나기로했다.그런그녀였기에평소와는조금다른그의모습에신경을쓸수없었다.
그녀는그와눈을마주치지도않고"오늘도여전히바빴던모양이네"라고말하며남아있던밀크차를단숨에마셔버렸다.그리고가볍게심호흡을한다음아무런표정변화도없이자신의결심을매우짧게그에게말했다.
"나,더이상자기랑만나지못할거같아"
그는그때까지도그녀가눈앞에있음에도불구하고다른일때문에머리가복잡해있었다.그러나그녀의말한마디에막꿈에서깨어난사람처럼멍한표정으로그날처음그녀와눈을마주쳤다.
‘뭐?뭐라고갑자기생뚱맞게……….
그는여전히뭐가뭔지모르겠다는표정이었다.
"예전부터생각하고있었던일이야.이대로당신과함께해도행복할것같지가않아.그래서오늘끝을내야겠다고마음을먹었어.처음사귀기시작했을때야즐겁기만하면됐지만,나도결혼할나이가됐잖아이젠미래를진지하게생각해봐야할거같아이미마음은정했어.그럼나먼저갈게.안녕"
그녀는일방적으로이별을통보하고는그의시선을피하듯자리를떠나버렸다.남자앞에는아직입도대지않은카페오레가남아있었다.
“저기,잠깐만.뭐야이렇게갑자기……”
아까도입에서튀어나왔던말이또다시그의머릿속을스쳐지나갔다.
“……오늘은정말로내인생최악의날이군."
창밖으로보이는가로수가세찬바람에크게흔들리고있었다.
후배가프로젝트리더가되다
기쿠치가’인생최악의날이라고말한데에는갑자기그녀에게차인것말고도또다른이유가있었다.
사실은그날그는그녀와만나기전에회사에서매우충격적인일을겪었다.
이야기는조금거슬러올라간다.몇주전그는부장에게새로운프로젝트를시작할거니까그팀에들어가라"는지시를받았다.
그는규모도크고회사입장에서는꼭성공시켜야할중대한프로젝트라는말을듣자의욕이불타올랐다.거기서좋은결과를내면회사나상시에게능력을인정받을수있을것같았기때문이다.
그가이프로젝트에거는기대는그것뿐만이아니었다.이프로젝트는자신이예전에맡았었던업무경험을충분히살릴수있는것이었다.나이나경험등을따져보면어쩌면자신이이프로젝트의리더가될수있을것같기도했다.
실제로그가이프로젝트의뢰를받았을때,몇몇동료들은"이번에는네가프로젝트리더가되겠네."라고말했다.그럴때마다그는"에이난아직일러"라고말하면서도싫지만은않았었다.
그리고오늘이었다.처음으로멤버전원이한자리에모이는날이었다.그는긴장된모습으로지정된회의실로조금일찍들어갔다.그러나이미먼저와있는사람이있었다.
그의후배인기무라였다.
기무라는그가이번프로젝트에도움이될지도모른다고생각해서프로젝트를함께추진하기로한멤버중의한사람이었다.기무라는자연스럽게주변의세심한것까지잘챙기는호감형인데다,자신의바로아래후배이기도했다.그래서그가매우아끼는후배였다.
기무라는기쿠치의얼굴을보고방긋웃었다.
"안녕하세요?선배님도이번프로젝트멤버여셨군요.다행이네요이걸로일당백은거뜬히하겠네요."
“자네와함께일하는것도오랜만이네.이번에도잘부탁해"
그후멤버들이차례차례회의실로들어왔다.
그리고전원이모이자부장이회의실로들어와흥미로운이야기를꺼내기시작했다.
“자,모두이렇게모여줘서고맙네.이번프로젝트는회사로서는꼭성공시켜야할중요한프로젝트니팀으로서일치단결해좋은성과를내어주기바라네.잘부탁하네."
부장은멤버들을천천히둘러보면서한사람한사람과눈을맞추며이야기했다.
기쿠치의사기도높아져갔다.
"그럼말이야,이번프로젝트의리더는……..“
기쿠치의심장이두근거렸다.
“……기무라가맡기로하게"
"….!!“
“아직젊으니까모두가협력해주길바라네.그럼기무라이제부터자네가리더로서일을추진하도록하게.부탁하네."
기무라는갑자기닥친상황에다소놀란표정이었지만확실하게“네!"하고대답했다.
"기무라가프로젝트리더라니?왜내가아니고저녀석이지?"
기쿠치는나눠준문서를뚫어지게쳐다보며집중해보려고했지만,머릿속은이미다른생각들로넘쳐났다.
‘난도대체뭘한거지.회사를위해이렇게열심히일해왔건만‘
허무함과억울함이뒤섞여기쿠치는홀로그장소에내버려진것같았다.
옆자리에있던멤버가상태가왠지이상해보이는그에게차가운눈길을보내고있는것도모른채그는회의가어서빨리끝나기만을기다렸다.
자기혐오의수렁속에서허우적거리다
기쿠치는도망을치듯회시를빠져나와그녀가기다리는커피숍으로향했다.
그리고그후그녀와무슨일이있었는지는알고있는그대로다.
정신을차려보니벌써9시였다.
그녀에게일방적으로차인그는커피숍을나와거리를거닐었다.그러다근처편의점으로들어가서캔맥주를샀다.
곧바로캔뚜껑을열자슉!하고거품이나왔다.그러나신통치않은거품은바로사그라져버리며마음을더욱공허하게만들었다.
그는캔맥주를그대로들고전철에올라탔다.
한입,한입씹어삼키듯마시는사이에,그날맛보았던억울함이되살아났다.
전철문의유리에는“넌지금뭐하는거니’?"라고말하는듯한,한심한표정의그의모습이비쳐지고있었다.
“나를프로젝트리더로는부족하다고생각하는걸까?""결국내실력이그정도밖에안되는거였을까?"
‘회사에서도인정받지못하고여자에게도버림받다니,내가지금까지열심히해온것들은다뭐란말인가?"
기쿠치는평소일을잘하는사람을좋아하고,일을못하는사람은가치가없다고생각했다.그런만큼이번에는바로자신이가치없는인간이되어버린듯한생각이들었다.그리고그것을그녀에게지적당한것같아서풍선에서바람이빠지는것처럼점점기력이빠졌다.
친구의권유
‘인생최악의날로부터며칠이지난어느날대학친구에게전화가걸려왔다.친구는"오랜만에한잔할까?"라고물었다.
지금까지는늘일때문에거절했었다.하지만그날은침울하기도했고,기분전환이라도할겸가벼운마음으로만나기로했다.
그때는설마하니이일이자신의인생을변화시킬계기가될것이라고는생각조차못했었다.
그날저녁,약속장소에도착동아"기쿠치I"히는낯익은목소리가뒤에서들려왔다.뒤돌아보니오늘만나기로한마키노가멀리서손을흔들며달려오고있었다.
‘맞아,저녀석은언제나활기찼었어.’
웬지그리운느낌이들었다.굳어있던기분이풀리기시작했다.
술집에서건배!라고외치며술잔을주고받으니마치학창시절로돌아간듯했다.하고싶은말들을주고받으며큰소리로웃는사이에기분도.완전히풀려버렸다.기쿠치는자연스럽게최근에있었던힘들었던일들을꺼내기시작했다.
회사에서후배가먼저프로젝트리더가된일같은날갑자기여자친구에게차인일들을차례대로이야기했다.
마키노는가만히이야기를듣고있다가마지막에"그래?
힘들었겠구나."라고한마디만할뿐더이상아무말도하지않았다.
그래도무거웠던마음속을터트리고나니답답한가슴이좀뚫리는것같았다.
이번에는마커노가자신의이야기를하기시작했다.
"나는최근까지꽤충실하게살고있어.특별히무언가대단한일을하고있는건아냐.하지만항상멋진사람들에게둘러싸여있어서행복해"
"그렇군.지금다니는회사에일잘하는사람들이많은가보군?"
“응.회사사람들도물론뛰어나지만딱히회사사람들에게만한정된건아냐.쉬는날에는여러가지활동에참가하고있거든.거기서만난사람들도모두대단한사람들이야"
"대단하다니,뭐가?"
“뭐라고하면좋을까.뭐랄까다들반짝반짝빛나고있다고해야하나"
“흠.잘모르겠는데"
‘학생때부터이녀석은늘친구들에게둘러싸여왁자지껄하고즐거워보였었는데.어떻게계속그렇게살수있을까?’
이런생각을하면서기쿠치는눈앞에있는마커노의얼굴을바라보았다.그때갑자기무언가생각난듯마키노가빙그레웃었다.
“너,이번주일요일에시간있지?"
갑작스런질문에그는아무생각없이’응,시간이야있기는한데,무슨일인데?"라고물었다.
그러나마커노는"와보면알아.지금의너한테분명히도움이될거야.활동하기편한복장으로오면돼"라는말만하고또다시싱긋웃었다.
봉사활동을하다
일요일아침,기쿠치는마키노가말한장소로갔다.그곳은커다란공원이었다.
공원안으로들어가보니벌써마키노가와있었다.그리고중년으로보이는7~8명의사람들이그를둘러싸듯동그랗게모여즐겁게이야기를나누고있었다.
"뭐야이건?"
아주머니,아저씨들에게둘러싸여있는마키노를보고기쿠치는어리둥절해졌다.
"어왔어?"
기쿠치를발견한마키노가그에게달려왔다.그러고는느닷없이손에들고있던걸레와양동이를그에게내밀었다.
“뭐야,생뚱맞게"
무얼하는건지는분명했다.마키노는기쿠치를공원청소봉사활동에불러낸것이었다.
"이봐,이봐.도대체지금뭐하자는거야!내가왜공원청소따위를해야하는건데"
어떻게든그장소에서도망칠궁리만하고있던그에게한풍채좋은아주머니가재빨리다가왔다.
“잘왔어요.청년은처음왔으니까우선은저쪽에서부터시작해요"
아주머니가가리킨곳은다름아닌공중화장실이었다.
그는공원청소,그것도하필이면공중화장실청소를할처지가될줄은꿈에도몰랐다.“마키노한테속았군.오늘도최악의날이구나."라며그는씁쓸한마음을억눌렀다.
"왜내가이런청소를해야하는거야?"
이런생각들을하면서기쿠치는마지못해고무장갑을끼고아주머니에게서받은화장실용세제를더러워진변기에부었다.
"앗,튀었다"
기쿠치는자신에게오물이튀지않도록최대한엉덩이를뒤로뺀채솔로변기를닦기시작했다.
"이렇게한다고더러운화장실이깨끗해질거같아?"
처음에는그런생각을하며닦았지만쓱쓱닦는사이,화장실은점점깨끗해졌다.
"와이런화장실도닦으니까의외로깨끗해지네!"
변기주변의콘크리트부분도닦았다.마지막으로양동이로물을끼얹자화장실은더욱깨끗해졌다.
깨끗해진화장실을보고있자니왠지기분이상쾌해졌다.
"이상쾌함은도대체뭐지?"
이런느낌은지금까지한번도경험하지못한것이었다.
맨손으로화장실을청소하는아주머니께감동받다
기쿠치는그후로도공원청소봉사활동에계속해서참여했다.휴일에딱히할일이없기도했고,무엇보다그때의‘상쾌함’을다시맛보고싶었기때문이었다.
이봉사활동은매주지역내의공원을차례대로돌며하루에한곳씩청소하는것이었다.
몇번인가참가하는사이,대단해보이는한아주머니와도친해지게되었다.그분은처음말을걸어주었던분으로,이제는친해져서세상돌아가는이야기도하게되었다.
그날은햇볕도뜨겁고화장실안도찜통같이더운날이었다.그래기쿠치는묵묵히화장실청소를계속해나갔다.
땀방울이뚝뚝떨어졌다.
그는한변기와씨름을하게되었다.
늘하던대로변기속에세제를풀고솔로박박문질러보았지만아무리닦아도얼룩이지워지지않는곳이있었다.몇번을문질러도마찬가지였다.
그러자그모습을보고그대단해보이는아주머니가다가왔다.
"이얼룩은아무래도안지워질거같아요."
그가이렇게말하고도중에그만두려하자,아주머니는이상하다는듯이그를쳐다보았다.
그리고마치당연하다는듯이"이런건이렇게하면깨끗해지지"라고말하고는맨손으로변기속을문지르기시작했다.
변기에단단히들러붙어있던때는아주머니가맨손으로쓱쓱문지르자속속들이지워졌다.때가잘보이지않는변기뒤쪽과배수구부근도손가락을깊숙이집어넣어문질렀다.
목덜미에서는땀방울이흘러내리고있었다.
그는어안이벙벙해서그저그광경을쳐다보고만있었다.그러다가머지않아가슴이뜨거워지기시작했다.
지금까지느껴보지못했던감동이가슴으로밀려왔다.
친구와의귀갓길,그의인생이변하는순간
집으로돌아가는길에기쿠치는마키노에게그날일을이야기했다.
"나,무언가크게착각하고있었던것같아"
"무슨애기야?“
"나,무언가크게착각하고있었던것같아""무슨얘기야!"
"나는솔직히지금까지내가하고싶은일만하면서살고싶다고생각했거든.그래서하기싫은일은다른사람들이하면된다고생각했어.그런데오늘아주머니가맨손으로변기를닦는모습을보고이사람대단하구나,멋있구나,라고생각했어."
“흠.그랬구나."
"봉사활동을하는사람들이다그렇겠지만,누군가에게고맙다는말을듣는것도아니고돈을받는것도아니잖아그런데사람들이싫어하는일을나서서웃으면서하고있어.
왠지이렇게순박하게다른사람들을위해활동한다는것이매우훌륭한일같다는생각이들어"
마커노는싱글거리며"기쿠치답지않은말인데"라고대답했다.
"그래.나도놀랍게생각하는일이지만이런기분이드는건처음이야.왠지그렇게생각하니까나도내가모르는사이여러사람들의도움을받F으며살고있었는지도모른다는생각을하게되었어.지금까지의내모습을돌아보니너무오만했던것같아.설마내가이런깨달음을얻게될줄이야"
"깨달아서다행이네.봉사활동은할만하지?"
“….마커노,불러줘서고맙다"
‘재삼스럽게그런말을하다니역시기쿠치답지가않군.
오늘더위때문에좀이상해진거아냐?"
두사람은팬지모를유쾌함때문에큰소리로웃었다.
프로젝트도적극적으로
다음날,기쿠치는새와이셔츠의소매를다리고,구두도윤이나도록닦은뒤조금서둘러서출근을했다.
"오늘도일찍출근했네."
부장이건넨한마디도기분좋게들렸다.
그때까지그는후배인기무라가리더가된것을마음에담아두고있었다.프로젝트에서맡은역할도마지못해처리할뿐,적극적으로관여하지않았었다.
하지만공원청소봉사활동을통해자신의사고방식이잘못되어있다는것을깨닫고부터는변하기시작했다.기무라의능력을인정하고현재의위치에서자신이할수있는일이무엇인지진지하게생각했다.그리고프로젝트의멤버중한사람이라는생각으로최선을다했다.
그렇게마음을먹자기획의기초가되는데이터작성등의잡일이더이상힘들게느껴지지않았다.당연히그가정성을쏟아서만든데이터는열정이반영되어있어설득력을갖게되었다.
어느날후배여사원과함께자료를작성하고있는데그녀가갑자기"선배님요즘왠지밝아보여요"라고말하는것이었다.
“뭐야,생뚱맞게"
쑥스러워서말은그렇게했지만마음은왠지모르게기뻤다.
프로젝트리더로임명되다
그는그뒤로도묵묵히일을처리해나갔다.물론휴일에는봉사활동도계속했다.
회사에서는지금까지한번도말을건네본적이없던청소부아주머니에게수고한다는말을하게되었고,커피를타준여사원에게도고맙다는말이저절로튀어나왔다.
주변의프로젝트멤버들로부터도"기쿠치,왠지요즘많이변한거같아"라는말을자주듣게되었다.그의주변에는많은사람들이모여들기시작했고밝은분위기가끊이지않았다.
그러던어느날부장이그를불렀다.
문을열자부장이즐거운듯싱글거리고있었다.
부장은기쿠치를손짓으로부르며말했다.
"이번에또새로운프로젝트를시작하려고하는데,이번에도자네가거기서일을해줬으면하네."
“아,감사합니다.제가할수있는일이라면뭐든지하겠습니다."
“그리고말이야.이번에는자네가리더를맡아줬으면하네."
그는이번주일요일에도공원에가서청소봉사활동에참가할예정이다.
그리고이번에야말로맨손으로변기를번쩍번쩍윤이나게닦아그아주머니를놀래게해줘야겠다고마음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