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어머니,할머니,변치않는당신(김채히부산시사상구괘법동)
어머니!편지서두에‘어머니’라는세글자를써놓고한참동안이나바라봅니다.제가어느순간부터엄마라고부르던이름을어머니라고바꾸어부르게된후‘아,나도이제어른이되었구나.나도정말나이가들었구나’라는생각만하였지숱많고새까만머리에주름도거의없던얼굴고우시던젊은엄마가칡넝쿨같이얽히고,설킨그물처럼거친세월을견뎌내시며이제는힘없고늙은어머니가되어버리셨다는것을갚이알지못하였습니다.
바다로나가물고기몇마리잡아다가흙먼지이는마당에톡던져놓고생하니술마시러동네로나가는아버지의차갑고야속한등뒤에서한숨조차숨죽이고지느러미에찔려가며비린내나는물고기를손질하던어머니는끼룩거리며훨훨나는한마리의자유로운갈매기도되지못하였고모래언덕에빨갛게피어석양보다더고운해당화한송이도되지못하였습니다.제가학교에들어가기도전에아버지의무자비한폭력을견디다못하여쥐약을마시고자살기도를하셨던처참한모습의어머니가지금도생생하게뇌리에통곡이되어박혀있습니다.
어느날은술에만취하여온아버지에게이유도까닭도없이흠씬두들겨맞아시퍼렇게멍이들고피가철철흐르는그런고통스런경황속에서도오로지우리사남매배곯지않게하느라보리밥을찌고물고기를끓이며아궁이장작처럼까맣게탄속으로매운눈물을누렇게그을린머릿수건으로훔치곤하셨습니다.그렇게생선가시보다더아픈모습으로부엌에어머니가가없게있었어도누나들과형과나는그렇게맞고사는엄마가그저바보같은엄마,미련한엄마,답답한엄마라는생각만할뿐우리가해드릴것이라곤그아무것도없었습니다.며칠뒤에맞아서멍든왼쪽눈을영원히설명했다는것을알았을때어머니가아버지곁을떠나지않는다면차라리내가이집구석을나가고말겠다고아버지에대한원망과어머니에대한애처로움이한데뒤섞여분노가치밀어올라얼마나고통스러웠는지모릅니다.
하루는학교를파하고친구들과함께가다가얼굴이퍼렇게멍든어머니를보고는그런어머니가부끄러워냅다골목길로도망을친적도있었습니다.어쩌면그런어머니가부끄러워도망을쳤던것이아니라가난하고불행하기만한가정에서멀리멀리도망치고싶었던까닭이었을겁니다.
온갖고생다하시며여태껏살아오신내어머니저는어머니가늘불쌍하고가여웠지만왜어머니밥이우리들밥보다늘양이적었는지는몰랐고왜어머니는아프다하면서도약한번안지어드셨는지도몰랐고또왜어머니는그토록싫다는음식이많으셨는지,그역시몰랐습니다.
가진것없이가난한집안이었으나그래도배는끓지않았고열이나거나깨지고찢어져도금세나아서아무렇지않았고,어머니가싫어하신다는음식은내가다좋아하는거였는데제가결혼을하고아이둘을낳고어느덧십여년을아버지가되어살아온지금에야어머니의정성스런손길과갸륵한헌신이아니었다면내가누리고차지할수있는것이그어느것도없었음을이제는그나마조금은알것같다고스스로건방을떨어봅니다.하지만모든것이풍족하게넘쳐나는이시대에한아버지로사는제가그렇게모질고험한세월속에서도오직자식을위해몸바치신어머니의내리사랑을어찌감히짐작이나하겠으며또한알수있겠습니까?
특히나남자인제가어머니의그진한모성을흉내라도낼수있겠습니까?군대를제대하고대학을졸업하고동시에번듯한회사에취직을하여나이에비해남들보다이른승진으로한기업의임원자리에올라사는지금도내가잘해왔으니까내가잘났으니까,내가노력한결과니까라고우졸대면서그뒤에서늘아플까다칠까,노심초사하시며살펴주시고어루만져주신어머니가없었다면결코이루어내지못했을제삶의성과라는것을늘잊고사는나쁜아들입니다.
초로에접어들었지만아직도어머니에게는철이덜든그런아들입니다.
어머니는이미오래전부터우리사남매를제외하고는어딜가도할머니라불리실태지요.칠순이넘어팔순으로향하는연세시니까당연한이치임에도문득문득제가슴에차가운바람한줄기가되어시리도록아프게합니다.
제가제자식들에게이런저런말을할때도내어머니를내자식들에게그냥쉽게할머니로떠넘기듯이‘내어머니가그러셨잖아’가아닌‘할머니가그러셨잖아’라고하면서말입니다.
이제는좀힘든일들은손에서놓고편히쉬며놀러나다니면좋으련만자식들이모두결혼하여아이낳고사십이넘어오십이되었는데도된장에고추장에김치며밑반찬까지한보따리씩을부쳐주시고실어주시니세상에서가장맛있는어머니의음식을먹는즐거움과호사에앞서이제는힘이달리고기운이쇠락한어머니의말라비틀어진살점을삼키는듯해서울걱기슴이미어질때가많습니다.
평생을아버지의호통에숨죽이고,아버지의폭력에만신창이가되면서도그래도자식들먹이고뒷바라지하느라오기와인내로이악물고버텨오시며엄마에서어머니가되고어머니에서할머니가되신당신.늘그자리에서오직자식들걱정과기도로하루를살아내는어머니는변하지않는하나의푸른섬이고,마르지않는하나의갚은바다입니다.하지만,머지않아언젠가는섬도사라지고바다도잠기겠지요!달려가면아무때나볼수있고이야기나눌수있는어머니가없어지겠지요.그때는엄마로도어머니로도할머니로도더이상부를수없게되겠지요.
어머니차를몰면두시간도채되지않는곳에어머니가계시지만오늘도이핑계내일도저핑계를대면서찾아뵙지를아니하는제가어머니제발조금만더건강하게오래사시라고염치없이빌고법니다.
어머니가이세상에그리고제곁에영원히부재중임을알게되기까지그렇게마음의덤덤한대비를하게되기까지만고향집앞마당에서훤히내다보이는푸른섬과깊은바다로그자리에그대로있으십시오.제가지금까지살아오면서어머니에게서받아온넘치게많은것들의다만백분의일이라도갚아드릴때까지만살아있으십시오
아직도어머니가어떤음식을좋아하시는지어떤색깔을좋아하시고,어떤노래를좋아하시는지또어딜가고싶어하시고,무엇을하고싶어하시는지정확히알지도못하고알려고하지도않았던이못난막내아들이,그래도한번은어머니가좋아하시는음식을손수떠서드리고,어머니가좋아하시는색깔로옷을사서입혀드리고,어머니가좋아하시는노래를틀어놓고같이들으며어머니가가고싶으신곳에같이손을잡고가서행복한한때를보낸다음에야그나마어머니가가신후에조금이라도덜후회하고덜기슴아파할수있을거라하면평생을그래왔듯이마지막에도자식을위해살아주셔야합니다.
지금이시간에도바다일과밭일로허리구부려종종걸음치고계실어머니따스한기을볕에나와앉아고마우신어머니를그립니다.코끝으로시큼한바다냄새가납니다.어머니냄새가쩡하게납니다.
어머니사랑에감사합니다.그리고어머니를존경하고어머니를사랑합니다.
어머니의막내아들채희올림
<국민은행편지공모수상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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