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의 첫사랑
BY btyang ON 8. 20, 2013
아내의첫사랑
그의이름은칼라자니.인도뭄바이의다국적컴퓨터기업에서소프트웨어엔지니어로일한다.그에게는아리따운아내타나와일곱살짜리딸길리아가있다.아내는늘우아한미소를띠고세심하게기족을돌보는여인이다.아내는매주한차례사원에가서기도를올리지만그는거의따라가지않았다.
이런평범한일상에뜻밖의사건이일어났다.그가점심을먹고사무실에들어와오후일과를시작하려는데전화벨이울렸다.
“안녕하세요.칼라자니씨를부탁합니다."
“네.제가칼라자니입니다만………..
“반갑습니다.저는당신아내인타나의옛친구살라비앙이라고합니다.당신과만나서이야기를나누고싶은데요.‘이따가퇴근후에시간을내주실수있겠습니까?"
그는약간망설였으나이내흔쾌히대답했다.
“그렇게하시죠"
대답은그렇게해놓고도머릿속에는궁금증이가득일었다.
‘이사람은누구지?’
그는오후내내‘살라비앙’이라는이름을수없이되뇌어보았다.그러다가일과가거의끝날즈음에기억을해냈다.언젠가아내에게서그이름을들은적이있었다.대학시절아내의연인이틀림없었다.그런데그는대학4학년때졸업을앞두고오지여행을하겠다면서떠났다고하지않았는가.
아내는그에게숨기는것이없었다.어린시절부터그를만나결혼하기까지의모든기억을그와공유하기를원했다.그녀가어렸을때무엇을하고놀았는지,친구들과는어떻게지냈는지,가끼웠던친구들의별명이무엇이었는지시시콜콜한이야기까지모두함께나눴다.
그래서아내에대해서는속속들이알고있었다.그런데돌연나타난살리비앙이라는남자가왜자신을찾는지도무지짐작을할수없었다.
아내의옛연인이왜이제와서남편을찾는단말인가.그는잠시망설였다.약속장소에나가야하는것인지,아니면모른다고나가지말것인지.
그가이런저런고민을하고있는데이번에는휴대폰이울렸다.
“여보,엄마가오셨어요.당신이퇴근하면서학교에들러길리아좀데리고올수있나요?"
“장모님이?갑자기왜?무슨특별한일이라도있어?"
“아뇨.그냥우리가족보러오셨대요"
퇴근시간이되자그는서둘러딸아이의학교로향했다.매번길리아를데리러갈때마다그는근처의케이크가게에들르곤했다.길리아가조각케이크를무척좋아하기때문이다.
“아빠,오늘은아이스크림을먹고싶어요"
“그래.잠시만여기서아이스크림을먹고있으렴.아빠는옆의카페에잠깐볼일이있어."
아내의연인이었던남지는카페에서그를기다리고있었다.맑은눈돋보이는빼빼마른남자였다.
“안녕하세요?제가살라비앙입니다.갑자기연락을드려서미안합니다."
“아닙니다.그런데어떤일로저를……….?"
남자가잠깐뜸을들이다가입을열었다.
‘칼라자니씨는분명제이름을알고계실것이라고생각합니다.그렇죠?타나가저에대해서숨김없이이야기했을테니까요.그녀는원래도솔직하지만사랑하는사람에게는아무것도숨기지않죠."
그는남자의말에이무런대꾸도하지않았다.
남자는그의침묵을동의로·간주한듯이야기를이어갔다.
“제가왜만나법자고했는지궁금하시겠죠.그런데사실,이건저의마지막소원이랍니다."
“마지막소원이라니요?"
그의질문에남자는처연한미소를지었다.
“타나는제가대학4학년때왜말도없이떠났는지모를겁니다.사람들에게는먼곳으로여행을떠난다고했지만사실저는그때,말기암진단을받았습니다.의사도속수무책이었죠.그런데의료기술이좋아지다보니지금까지이렇게살아있네요."
그는속으로는깜짝놀랐지만짐짓아무렇지않은척했다.남자가말을이어갔다.
“만일암투병사실을타나에게알렸더라면그녀는더욱저를포기하려들지않았을겁니다.그녀는그런여자니까요."
그부분은충분히예상할수있었다.그는자기도모르게고개를끄덕였다.
“하지만저는시한부인생을선고받은몸이니,곧죽을테고그녀는상실감에시달리겠죠.그래서저는그녀가오랫동안행복할수있도록조용히사라져주는방법을택했던겁니다.모든친구와연락을끊고고통속에서지금까지버렸죠.그런데이제와서왜나타났냐고요?"
남자는시원한물을한모금마시고는고통스러운표정을지었다.
“이제정말끝이니까요.며칠안남았습니다.칼라자니씨,저좀마지막으로도외주십시오.제가편하게눈을감을수있도록말입니다"
그는흔쾌히말했다.아내를진심으로사랑했던남자,아내의행복을위해자신을희생했던남자의마지막소원을들어주지못할이유가없었다.
“좋습니다.말씀하십시오."
남자가간절한눈으로애원하듯말했다.
“죽기전에마지막으로한번만이라도타나를보고싶습니다.그녀가저를알아보지못하게먼발치에서나마그녀를잠깐동안살펴보겠습니다.그렇게해주실수있는지요?"
그는고개를끄덕였다.
“무슨말로위로를드려야할지모르겠습니다.진심으로유감입니다.그러면내일이마침휴일이니오후에아내를데리고집근처의사원으로가죠."
남자가고개를깊숙하게숙이며말했다.
“감사합니다.칼라자니씨의호의는죽는순간까지잊지않겠습니다"
남자는안도의한숨을내쉬고자리에서일어났다.그는딸을데리고집으로돌아왔다.딸이저녁을먹다가갑자기생각난듯그에게물었다.
“아빠,아까그비쩍마른아저씨는누구야?"
그는당황해서아내의눈치를보며대답했다.
"응,아빠친구야.우연히만났어"
“아……그렇구나"
아내가이상한낌새를알아챈것같지는안았다.
다음날,그는아침을먹다가아내에게제안을했다.
“타나,오늘우리가족끼리사원에가보는건어때?장모님도오셨으니내가모시고갈게"
그녀는남편의갑작스런요청에놀란듯말했다.
“어쩐일이에요?휴일에는피곤하다면서낮잠만자더니………….."
"됐어요.오늘은엄마도오셨으니까쇼핑이나함께가요.길리아옷도좀사고오랜만에외식도하고요"
그는아내가이렇게말할줄은몰랐다.당황스러운표정을짓지않으려고웃으면서말했다.
“아냐.난괜찮아.그럼사원에먼저들렀다가쇼핑을가도록하지.
오늘은낮잠없이하루종일가족을위해봉사할테니맡겨보라고”
가족이함께사원에도착했다.그는아내가먼저들어가도록한뒤장모와딸을데리고사원의이곳저곳을구경하고다녔다.다니면서힐끔살펴보니까그남자가사제복을입은채계단위쪽에서내려다보고있었다.그의눈길은아내에게고정되어있었다.
그는잠깐질투를느꼈지만,생명의마지막불꽃을태우고있는사람에대한예의가아닌것같아서마음을고쳐먹었다.잠시후에돌아보니남자의모습이보이지않았다.
가족은쇼핑을마치고저녁을먹고집으로돌아왔다.그는뿌듯한마음으로잠자리에들었다.사원과쇼핑,저녁식사까지마친노곤함에좋은일을했다는보람까지합쳐져금방끓아떨어져버렸다.그런데잠결에어디선가나지막이흐느끼는소리가들리는것같았다.울음소리는발코니쪽에서들려왔다.
그가고개를살짝내밀고보니까아내가난간에엎드려울고있었다.그는아내를어떻게위로해줘야할지알수없었다.아내는옛연인의모습을알아보았던것이었다.이번에는질투심을접을수있었다.
지금아내의사랑을받고있다고해서아내의옛추억까지소유할수있는것은아니니까.아내의추억은온전히아내의것일뿐,그녀가슬퍼하도록내버려둘수밖에없었다.
그는아내가울음을그칠때까지조용히지켜보기로했다.아내의옛연인이그렇게했던것처럼담담하게응시하면서지켜봐주는것,지금으로선그게최선의사랑일것같았다.
<오늘,뺄셈>책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