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눈으로 우리 현대사를 바라보세요. (이인호교수의 인터뷰)
교수·大使지내고KBS이사장으로…역사학자이인호’삶과역사관’

이인호KBS이사장이지난12월23일서울여의도에있는KBS이사장실에서한국현대사를어떻게볼것인가에대해이야기하고있다.이이사장은요즘우리나라정치를보면“서로포용하기보다는싸울필요가없는일에서까지싸움을벌이고있다”면서,“사실을사실대로인정하지않고싸움만붙이는역사논쟁이그예”라고했다.

역사를따뜻한눈으로좋은점은평가하고잘못한것은지적하되…

어떤시대,어떤사람을악마화하지는말아야

영화’국제시장’반갑더라.우파도좌파도아닌역사적사실을그대로…

사람답게사는세상위해고달팠던분들삶보여줘

"역사에대한악마적편집,이젠그만하자"

이승만의功過민주주의파괴자?발췌개헌·사사오입개헌등

국민들빈축산것있지만’건국공로자’평가도해야

국감때왜공격받았냐고?

‘백년전쟁’·교과서등역사왜곡하려는이들에맞서기시작했기때문일것

학자양심상묵과못해…

새해,젊은세대에게…세상에서성공한사람들대부분인품도훌륭하더라

어린시절의고생은큰인물되는데큰몫

역사학자이자러시아대사를지낸이인호(79)서울대명예교수가지난9월KBS이사장에취임했다.인터뷰요청을한건지난10월.당시KBS국정감사에서그의역사관을둘러싼야당의공세에이이사장이시종당당하게대응하면서화제가됐을때였다.하지만이이사장은그가KBS이사장이된것과관련,일부야당의원과언론의공격이계속돼업무수행에지장을받을정도로주변이시끄러운데여기가세하고싶지않다며거절했다.

여러차례설득끝에이이사장은어렵게인터뷰에응하기로했다."새해가다가오니나이먹은사람으로서하고싶은이야기가있다"고했다.그는KBS이사장을맡기전에도사회문제전반에대해소신있는발언을해온역사학자이자지성계,여성계의원로이기도하다.

조선일보강인선기자가지난12월23일KBS이사장실에서그를인터뷰했다..

-역사학자이면서대사를비롯한다양한공직을거쳤다.하지만KBS이사장취임때는’편협한역사관’의소유자로거친공격을받았다.

"좁은의미의정치에는항상거리를두고사는역사학자이자사회활동을하는여성계사람으로서언론의호의적조명을받았다.그런평가에늘감사하게생각해왔다.김영삼·김대중정부에서대사와국제교류재단이사장을지냈고,정계진출권유를여야양쪽에서다받은일도있다.그런데갑자기내역사관과가치관이잘못됐다는질타가나오니처음에는기가막혔다.나의80년인생전부가잘못됐거나,아니면대한민국이이상해졌다는징후가아닌가하는생각이들정도였다.그래서처음부터나에대한공격이특수한정치적의도를품은어떤세력이한일이지,국민또는KBS구성원전반의반대는아니라고믿었다."

―왜그렇게거친공격의대상이됐다고생각하나.

"우리역사를왜곡하려는사람들이있다는것을알고그들과맞서기시작했기때문일것이다.(이승만·박정희전대통령에관한사실을왜곡해서다룬)’백년전쟁’이라는이른바’다큐멘터리’에대한비판,그리고고등학교교과서선정관련싸움이대표적사례였다.나는우리가족이북한이아니라남한에살게된걸감사하게생각한다.1945년해방이후,특히1948년대한민국탄생이후의역사는아픔으로가득차있다.하지만그걸자랑스러운기록으로받아들인다.그점에서나의역사의식은국민전반의역사인식과다를것이없다.다만역사학을공부한것,그것도역사적으로파산선고를받은세계공산주의체제의본산이던러시아역사를전공했다는점,그리고일제시대부터지금까지우리현대사를직접살아온사람으로서세부적사실에관한지식이그이후태어난세대에비해좀더풍부하다는차이가있을뿐이다."

―역사학자의길에들어서게된계기가있었나.

"울분때문이었다.초등학교3학년때해방이됐는데어린시절’약소민족의설움’이란얘기를지겹게듣고자랐다.그래서우리는왜약소민족으로이렇게서럽고구차스럽게살아야하나하는생각을많이했다.그러면서나중에선진국에가서공부해우리역사를바로이해하고이끌어가는데도움이돼야겠다는생각을하게됐다."

"역사학자의양심으로그냥지나칠수없었다"

―역사인식이란세대마다다를수있는것아닌가.

"역사에대한관심의초점은세대마다다를수있고해석상의차이도있을수있다.내가지적하고배격하는것은그런해석상의차이가아니다.사진자료까지조작하고거짓을사실처럼꾸며대한민국의역사,특히이나라지도층에대한인식을부정적으로유도하고여론을분열시키려는역사왜곡과날조를말하는것이다."

―구체적으로어떤사례를말하나.

"이승만대통령과김구선생이100년전부터반민족과민족,두진영으로갈라져서전쟁을해왔다는식의주장이있다.이승만대통령을애국심이나도덕이결여된하와이깡패라고주장하기도한다.박정희대통령때본격화된경제발전도미국인들이시켜서한것임을증명하는’사료’가있다는식의왜곡도한다.그건역사해석의차이가아니다.1948년출범한대한민국체제에대한의도적폄훼와부정이라고볼수밖에없다.역사학자의양심을갖고는그대로지나칠수없는일을지적한것뿐이다."

―2013년청와대에서박근혜대통령과원로급인사들이오찬을하는자리에서이이사장이’백년전쟁’동영상문제를제기했다.어떤반응이나올것이라고봤나.

"여야할것없이나라를사랑하는모든국민이분개할것이라고생각했다.그런데내가’백년전쟁’동영상의폐해를박근혜대통령앞에서지적했다는보도가나가면서,마치친여(親與)적정치행위를했다는식으로오해하는사람들이있었다.그후나에대한역사왜곡세력의공격에일부야당의원들까지가세하는상황이벌어졌다."

―평생역사를공부한역사학자였다.역사관이이전과달라진부분이있나.

"가치관이나역사의식은20년전이나지금이나근본적으로달라진것이없다.그런데도내가’변절’을시도했다는이상한표현까지야권에서나오는것을보고쓴웃음을지을수밖에없었다."

―어떻게하면이런소모적인역사투쟁에서벗어날수있을까.

"역사적사실을그시대에살던사람들의눈높이에서보고이해하려는노력을해야한다.그점에서는역사교육을제대로시키지못한우리세대,특히나처럼역사교육에종사했던지식인들의책임이크다.지도자든일반서민이든사람은누구나자기나름대로최선을다하고산다.태생적으로악인이나의인은없다는것을인정해야한다."

◇지혜와관용이필요한시대

―한국현대사를어떻게봐야하나.

"역사를볼때따뜻한눈으로봐야한다.좋은점은평가하고,잘못한건지적해야한다.어떤시대,어떤사람을악마화하지는말아야한다.그런의미에서요즘화제인영화’국제시장’의성공이참반갑다.그건우파도좌파도아닌,역사적사실을그대로약간의유머를섞어표현한고증이잘된훌륭한역사물이다.세대간정서의차이가얼마나큰지도잘묘사돼있고,6·25이전에태어난세대의삶이얼마나고달팠는지도잘보여준다.또사람답게사는세상을만들기위해얼마나많은사람들이얼마나뼈아픈노력을해야했던가를잘보여준다.민주주의라는것도결국은사람이사람답게기를펴고사는세상을만들자는것이다."

―하지만역사를있는그대로본다는것이말처럼쉬운일은아닌것같다.

"우리가경험해온역사의질곡이최근까지도심각했기때문일것이다.그럴수록이성적으로역사를바라봐야하는데지금우리사회에는그것을방해하는요인들,불신과편견,오만과독선이강하게작용하기때문이다."

―우리현대사에서명백한사실로인정해야하는부분은무엇이라고보나.

"1948년대한민국이독립국으로다시서기까지3·1운동과상해임시정부로상징되는우리민족의끈질긴독립정신과투쟁,일본식민통치의굴욕을겪으면서도어떻게든살아남아속으로힘을키운2000만겨레의인내와노력,일본에대한연합군의승리,스탈린의세계공산주의·전체주의체제속으로흡수당하지않고세계자유민주주의진영의도움을받아자주와독립을성취하고자했던우익독립운동세력의치열한반공투쟁이있었다.어느한가지가빠져도독립은성취될수없었다."

―이역사적사실에대한심각한오해가있다면무엇인가.

"분단이마치이승만의개인적야욕때문에빚어진일이고반공이잘못된선택이었던것처럼호도하는것이다.이것은남남갈등을부추기는일일뿐통일에도결코도움이안된다.지금절실히필요한것은과거의사실은사실로인정하되역사적역할에대한평가와개인의인간적면모에대한평가를구분할줄아는지혜와관용이다."

―이승만대통령에대한평가가역사논쟁의핵심에있지않나.

"그렇다.언제부터인가이승만대통령을독재자라부르고친일파로까지규정해,이승만을건국공로자로높이평가하는것은’독재미화’이자’친일미화’라는궤변이나오고있다.역사학자라는사람들의글에서까지이런주장이나오는상황이다.이승만에대한’악마화’가민주주의에대한찬미인듯착각하는풍토가해방70년을맞는오늘날대한민국학계일익까지오염시키고있다.부끄럽고죄스러운일이다.

이승만은부정선거와부정부패에대한거센항의에밀려불명예스럽게대통령직에서사퇴했고정치적술수가심했다는지적을받기도했다.하지만이승만은오랜독립운동과스탈린과의정치적결투를통해한반도의남쪽만이라도독립국가로다시세우고민주주의의법적토대를마련한인물이다.결코민주주의의파괴자가아니다.이승만은정파정치에서발췌개헌이니사사오입개헌등의무리수를두어정적들의원한과국민의빈축을사기도했다.그는그러나정권의잘못에항거하는학생들의기백을칭찬하면서민주주의의식이뿌리가내리고있음을기뻐할줄도아는인물이었다."

2013년9월한국사교과서논란과관련해‘역사교육을걱정하는사람들’모임이연기자회견에서이인호(오른쪽)서울대명예교수가발언하고있다./이진한기자◇이승만의통찰력

―이승만대통령이당시시대상황을꿰뚫는남다른통찰력이있다고했는데.

"공산주의결함에대한통찰력이특출했다.러시아혁명후지식인들다수가새로탄생한공산주의체제에대해큰기대를걸고있던시기인1923년,이승만은’공산당의당(當),부당(不當)’이라는글을썼다.그는’공산당의강점은그이상(理想)이다.노동자와농민이고르게잘사는세상을만든다는것인데그것은바로내이상이다.그런데그들이제시하는방법은틀렸다.모두에게가진걸똑같이나누어주고기업인들을적대시하고지식인들을홀대하며종교를박해하면그런사회는창의력을발동할수없어발전할수가없기때문에그이상은절대성취못한다’고했다.이승만은미국프린스턴대에서박사학위를받기전에과거시험을준비하면서동양의철학과세계관을체득했기때문에인간의속성이나정치제도를연결해서생각할수있는능력을갖추고있었던것으로보인다."

―이승만이후다른대통령들에대해선어떻게평가하나.

"박정희대통령은민주적절차를무시했지만안보와민생문제를해결했고,김영삼·김대중대통령은각각민주화를실현하고남북대화의물꼬를틈으로써시대적사명을다했다.어느정부나업적과그에따른그늘이있게마련이다.지도자들은다개인적인장단점을갖고있었지만모두비범한노력가였다.대한민국은국민모두가똑같이잘살수있도록해주지는못했지만각자능력껏뛸수있는자유는보장해줬다.각세대는지도자와국민들이나름대로최선을다했기때문에대한민국은공산주의의이름으로자유를억압했던북한과는달리국민이자부심을느낄수있는나라로발전할수있었다.그걸인정하지않고는사회적화해도발전도불가능하다고본다."

―그같은역사에대한이해부족이우리사회의갈등원인이된다고보나.

"지금우리사회의가장큰문제는의도적으로갈등을증폭시키는세력이작용하고있다는점이다.특히역사에대한편견과왜곡을통해고질화되고있다는것이문제다.자기와입장이다른사람은무조건의도가나쁜사람으로악마화한다.또그런사람들을굴복시키기위해거짓과궤변을동원하는나쁜관행이성행하고있다.그결과지각있는많은사람들이주눅이들어자유롭게발언하지못하는풍토가조성되고있다.그런풍토때문에여야정치권의관계도서로를죽이는것이목적인전쟁처럼되어가고있다고본다."

―역사를둘러싼갈등을푸는실마리는어떻게마련할수있을까.

"얼마전에서울대행복연구센터장이’악마적편집’과’천사적편집’이란주제로쓴칼럼을읽었다.그글은행복감을더많이느끼게하는방법에대한것이지만,역사적사건이나인물평가에도그대로적용될수있는이야기다.

해방이후건국,6·25전쟁과분단의후유증을겪으면서많은사람들이이념적갈등의대가를엄청나게치렀다.어떤사람들은나라를세우고지키기위해반공투쟁을하면서,어떤사람들은그반대편에서서,또많은사람들은영문도모른채그중간에서무고하게희생됐다.이제는우리국민,남북한동포모두가상황의희생자,어리석은열정의희생자였음을인정하고이념의굴레를벗어야할때가되지않았나싶다.

그러기위해선과거에일어났던일을사실대로인정해야한다.대한민국은좌익에대한우익의승리의결과로세워지고발전한나라이지만이제는서로그결실을함께즐기며지켜나가기위해힘과지혜를모아야할때임을깨달아야한다.세상에는악마도천사도없고자기다운보람된삶을살기위해몸부림치는보통사람들만이있다는평범한진리를인정해야한다."

―이사장이된후에알게된KBS는밖에서봤던것과는차이가있었을것이다.

"임명될때세상이떠들썩했지만,막상가보니이사장이실질적으로할수있는일이란매우제한돼있다.국민의방송인KBS의임무는국민의귀와눈과입이되어우리사회가지니고있는소통의문제를해결하는데선도적기능을발휘하는것이다.이사회는그기능이제대로발휘되도록하는데대한책임을지는최고의결기구이다.국민을대신해그기능이제대로수행되도록독려하는것이다.제일놀란것은재정상황이매우열악하다는점이었다.경제가어려워져광고수입은주는데수신료는2500원으로동결된지25년이넘었다.이사장으로서가장시급한과제중하나가수신료인상을국회에요청하는것이다."

◇교수도외교관도즐겁게했다

―교수,외교관,국제교류재단이사장등다양한분야에서일했다.어느분야가가장보람있었나.

"핀란드대사와러시아대사등외교관도,국제교류재단이사장도다즐거운마음으로했다.하지만내면적인성장이랄까그런것은교수로있을때가장컸다.미국에서러시아역사를전공했는데,귀국한이후엔좋은아이디어가있다해도미국이나러시아에가서자료를찾아보고증명할수가없으니학자로서좌절감이심했다."

―새해,젊은세대에게당부하고싶은이야기가있다면.

"지금은우리나라는물론이고세계적인면에서도역사가하강국면에접어들고있는시기라고본다.지속가능한발전이무엇인가에대해심각하게고민해야한다.정신적,정서적풍요속에서삶의의미를다시찾아야한다.그렇다고경쟁의원칙이다나쁘다는건아니다.세속적성공이나쾌락을죄악시하는것도위선이다.사회관계를모두갑을관계로보는것도큰함정에빠지는일이다.

나는한국에서태어나한국과미국양쪽에서교육을받았고공산주의소련의역사를전공하면서비교적많은문화를접하며살아왔다.가장큰위안은어느한사회에서훌륭한사람으로평가받는사람은다른사회에서도같은평가를받는다는사실이다.또세속적잣대로성공한사람들대다수는인품으로도훌륭한사람들이라는사실이다.그리고어린시절의고생은사람을큰인물로단련시키는데큰몫을한다는말이맞는다는이야기를꼭하고싶다."

이인호이사장은…

역사학계와여성계의원로.서울대문리대재학시절미국웰즐리대로유학을가역사를전공했다.하버드대학에서박사학위를받은후고려대와서울대교수로오랫동안학생들을가르치며후학을키워냈다.이후여성대사1호로핀란드와러시아에서활동했고,국제교류재단이사장,아산정책연구원이사장등을지냈다.러시아사등서양사를전공했지만세계사적인관점에서한국현대사를조명해왔다.역사문제를비롯해한국사회다양한분야에서소신있게견해를밝혀왔다.

<2015년1월3일조선일보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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