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신당동가옥이3월17일일반인에게공개되고처음으로내가전시해설을하기위해3월18일오전그곳을갔을때그곳에서루포형식으로취재하고있었던한계레신문기자가왜나에게이곳지원배경을물었다.나는그전에이근처에살았고옛향수도있고이곳에서해설하는것이의미가있다고했다.특히박정희전대통령은우리가어려웠을그당시경제적문제를잘해결해주신훌륭하신대통령이기에존경한다고했다.
그기사를이곳에옮깁니다.
[토요판]르포
복원된신당동박정희가옥
▶서울시가지난16일박정희전대통령이살던중구신당동가옥을복원해시민에게공개했습니다.알랭드보통은<뉴스의시대>에어떤나라나공동체를이해하려면건축물을살피라고썼습니다.공간과건축에역사가새겨져있습니다.신당동을둘러싼서로다른세개의기억을더듬었습니다.
집,길,마을에역사가새겨져있다.신당동이그렇다.17일오후4시2호선신당역3번출구앞에평범한풍경이있다.편의점세븐일레븐을지나치면,아메리카노한잔이3000원인커피숍간판이보인다.담배를피우며휴대폰을귀에댄사람옆으로철가방을실은스쿠터가인도를지나다닌다.여기무슨역사가새겨져있는지티나지않는다.지하철출구표지바로앞가로등약2m높이에달린‘박정희대통령가옥350m’표지를보면비로소이곳의다른공기를알게된다.신당동에떡볶이만있는게아니다.서울시가17일복원해일반에공개한,박정희전대통령이살던서울시중구신당동62-4번지가옥앞에미리인터넷으로예약한관람객들이줄서있었다.
실제유품대신당대물건구해전시
서울시문화체육관광본부역사문화재과는이가옥의복원및재현을마치고17일부터일반시민에게공개를시작했다.박전대통령과부인육영수씨부부는1958년5월16일부터1961년8월15일까지이신당동가옥에서살았다.
5·16쿠데타뒤인1961년8월16일국가재건최고회의의장공관으로이사갔다.신당동가옥은등록문화재412호로2008년문화재청에등록됐다.일제때건립된‘문화주택’이다.서울시는16일낸보도자료에서“1930년대신당동에대단위로조성된‘문화주택’중오늘날유일하게남은가옥으로우리주거사의흐름을그대로간직하고있어건축사적으로보존가치가있다”고설명했다.
‘문화촌’이라는단어는1920년대초처음사용됐다.“서양식·일식·한식이절충된양식을보이며,응접실과서재,식당,화장실을실내에갖추어전통가옥인한옥에서의생활과는다른새로운근대생활문화”라고서울시는설명했다.조선총독부는1925년부터서울곳곳에대규모문화주택단지를건립하기시작했다.1925년신당리(현재신당동)9만9000㎡(약3만평)땅에‘경성문화촌’이라는이름으로문화주택촌이지어졌다.1941년까지무학정(현재선학동),혜화동,금화장(현재북아현동근처)등서울10여곳에지어졌다.
박전대통령과육씨는1950년대구에서결혼했다.부부는대구,광주등남편근무지를따라이사다녔다.첫딸박근혜는1952년태어났다.시인박목월이쓴<육영수여사>(삼중당·1976)를보면,육씨는서울에온뒤1956년4월신당동401-7번지에최초로자기명의의집을샀다.어둡고습했다.마당도좁았다.육씨는밝고마당이넓은집에서살고싶어했다.친척을통해대출을받아1958년5월16일450만환에지금신당동가옥을구입해이사했다.<경향신문>을보면,1958년대령월급이3만1561환이었다.
18일오전9시50분께신당동가옥을두번째로보니,대문구조가눈에들어왔다.검은색판세쪽으로만들어져있다.“(육영수)여사님의놀라운창의력이오늘날주택가에서흔히볼수있는대문으로발전하게된것이아닌가생각해요.요즘대문들은대부분세쪽아니에요.그전에는그런대문이없었어요”라고박시인은썼다.두쪽대문으로만들어한쪽에작게문을뚫는보통두쪽대문은,드나드는사람이머리를숙여야하므로세쪽대문을만들었다는것이다.“마룻바닥을뜯어내어시멘트로바닥을깔고손수고안한입식조리대를설치하였다”고박시인은썼다.“그모든것은육영수식이라고할수있는것이었다.”
서울시가17일복원해공개한박정희부부의신당동가옥일제때지은문화주택으로
사진등바탕해공간구성했다공개첫날부터사람들이줄섰다
운명의5·16,그쿠데타의기억과이를막으려다날개가꺾인뒤
신당동요정초대받은친구의기억,아버지죽은뒤신당동에돌아와
여권발급부탁하던딸의기억이…
집내부는응접실,안방등방3개,서재,부엌,창고,화장실로구성돼있었다.응접실이부엌과자녀방등다른공간과벽으로구분된점이특이했다.한옥의마루와달리‘독립된공간’이라는점이시선을차단하는벽에의해자연스레느껴졌다.높이는약175㎝로낮았다.응접실에탁자와7개의의자,찬장,선풍기등이있다.찬장위에바비인형,시계,석고상이있다.시계옆에‘神怡心靜’(신이심정)이라고쓰인편액이걸려있다.‘정신이온화하면마음이고요해진다’는뜻이다.
1961년7월10일방한한미육군차관스티븐아일스의부인과외국사절단부인들이이곳을방문했을때촬영한사진을바탕으로응접실공간을재현했다.서울시는2010년12월~2011년12월복원공사를했고2010년12월~지난해2월내부전시공간조성공사를각각시행했다.내부재현에육영수씨의조카홍정자씨등유족과친척의증언을많이참조했다.가옥재현의경우,문화재청문화재위원3명등이주로자문했다.
그러나가옥내부소품가운데실제로박전대통령부부가사용한유품은없다.남아있지않기때문이다.당대물건을구해전시한것이다.박시인의전기를보면,육영수씨는전축을사서‘황성옛터’나모차르트의세레나데‘아이네클라이네나흐트무지크’등을듣곤했다.지금전시물중에전축은없었다.서울시역사문화재과직원조영훈씨등은이날오전에도공개준비에분주했다.해설사양병택(74)씨는“근처청구동에서1958~61년살았기때문에개인적으로관심과향수가있어해설사자원봉사를신청했다”며“우리때는다어렵게살았다.박전대통령은경제성장의공이상당히크다고생각한다”고말했다.
18일오전11시반께대문옆에세워진문화재알림판옆에벌써줄이길다.알림판에‘박정희대통령은1961년이곳에서우리나라현대사의큰전환점이된5·16을계획하였다’고적혀있다.‘쿠데타’란단어가없다.역사문화재과는19일<한겨레>와한통화에서“5·16에대한정의는이미(쿠데타라고)다끝나약칭해서쓰다보니불필요한오해를불렀다”며“다른정치적고려는전혀없다”고밝혔다.역사문화재과는“목적이있어쿠데타라는단어를일부러빼려했다면,가옥내부전시실에‘쿠데타’라는제목이달린신문도전시하지않았을것”이라고덧붙였다.실제로가옥내부영상실에는‘쿠데타’라는단어가제목에들어간1961년5월17일치조간신문4개가붙어있다.쿠데타직후나온월간지<사상계>도전시돼있다.알림판의영어와일어안내문에는각각‘theMay16coup’(5월16일쿠데타)및‘5·16軍事ク-デタ-(군사쿠데타)’라고적혀있었다.
박정희전대통령부부가살았던서울신당동가옥은1930년대말~1940년대초세워진것으로추정되는신당동‘문화주택촌’의일부다.중요한건축사자료로평가된다.
신당동한공간에서로다른기억이다얽혀있다.쿠데타의기억과,쿠데타를막으려했던박전대통령친구의기억과,쿠데타로집권했던아버지의죽음에관한현직대통령의기억이다여기머문다.이한림전1군사령관은1921년생으로만주군관학교와일본육사를나왔다.박전대통령과동기였고가까운술친구였다.그러나의회민주주의자였다.공교롭게1961년‘육군소장박정희’가쿠데타를일으켰을때1군사령관이었다.진압을주장했으나장면총리의도망등여러가지이유로결국진압을포기했다.동기이자친구에의해체포돼마포교도소에갇혔다.그의회고록<세기의격랑>을보면,1961년8월풀려나미국소도시샌타바버라로강제로출국해유학생노릇을했다.1961년11월쿠데타뒤처음으로이전사령관이샌프란시스코에서당시박정희국가재건최고회의의장을만났다.“나를이꼴로만들어놓고속이시원하지?”라고말했다.친구였으므로이렇게말할수있을것이다.1962년귀국했다.최고권력자는기관원을시켜친구의집을감시했다.그리고1963년어느날저녁에불렀다.“신당동에있는요정이었다”고이전사령관은기록했다.“향주에진미로대접을받았다.이자들은천하를잡은폭군들이고나는날개꺾인독수리이니힘없는자다.”당시박정희의장은자신을도와달라고말했다.친구는거절했다.박정희의장의요청으로한번더신당동요정에서만났다.친구는“너혼자실컷해처먹어라,나쁜자식”이라고말하고다시거절했다.
그러나훗날대통령이된박정희를도왔다.건설부장관등비정무적공직들을역임했다.“어떠한구실로도군사쿠데타는있어서는안된다”고회고록에썼다.2012년숨졌다.
두번째신당동시절,박근혜의아픔
박근혜대통령에게신당동은아픈곳이다.아버지가살아있던시절가족이청와대로이사한뒤신당동가옥에는외할머니이경령씨가1975년까지살았다.그뒤비어있었다.<경향신문>보도를보면,1979년10·26뒤인11월21일박근혜씨는청와대에서신당동집으로동생근령씨,지만씨와돌아왔다.1980년대초엔혼자성북구로이사해버렸다.이후근령씨가가끔오가며관리했다고서울시는설명했다.
그의‘두번째신당동시절’아픔은전두환전대통령과연관돼있다.쿠데타로집권한전두환대통령이1980년9월노신영당시외무부장관에게임명장을주기위해불렀다.노신영장관은3공화국때부터외무부에서오래일했다.임명장을받은뒤신당동에머물던박근혜대통령을찾아갔다.“박(정희)대통령영전에분향한후근혜양과이야기를나누었다.자리에서일어서려할때에근혜양은‘수행원한명을데리고일본에다녀오려고하는데아직여권이발급되지않고있다’고하였다.”(<노신영회고록>)당시노신영장관은전두환대통령에게따로여권문제를부탁했다.전두환대통령통치아래서전직대통령의딸은수행원의여권조차발급받지못하고있었던것이다.
이날오후2시께잠깐비가내렸다.오토바이가경적을울리고‘소문난순대국’사장이김이오르는돼지머리를길가좌판도마위에서써는시장길을내려오자다시전철역이나왔다.쿠데타의기억과,쿠데타를막으려했던박정희전대통령친구의기억과,쿠데타로집권했던아버지의죽음에관한현직대통령의기억이다머무는,2호선신당역3번출구가다시나왔다.개장뒤3일째인19일까지약900명이신당동가옥을관람했다고서울시는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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