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않는조선의마음
(-언더우드선교사의기도문-)
주여!지금은아무것도보이지않습니다
주님!메마르고가난한이곳조선땅
나무한그루시원하게자라오르지못하고있는
이땅에저희들을옮겨와심으셨습니다
그넓고넓은태평양을어떻게건너왔는지
그사실자체가기적입니다
지금은아무것도보이지않습니다.
보이는것은그저고집스럽게얼룩진어둠뿐……
어둠과가난과인습에묶여있는조선사람뿐입니다
그들은왜묶여있는지도
고통이라는것도모르고있습니다
고통을고통인줄모르는자에게
고통을벗겨주겠다고하면의심부터하고화를냅니다
조선남자들의속셈이보이지않습니다
이나라조정의내심도보이질않습니다
가마를타고다니는여자들을
영영볼기회가없으면어쩌나합니다
조선의마음이전혀보이지않습니다
그리고저희가해야할일이전혀보이지않습니다
그러나주님!순종하겠습니다
겸손하게순종할때주께서일을시작하시고
그하시는일을
우리들의영적인눈으로볼수있는날이있을줄믿나이다
믿음은바라는것들의실상이요
보지못하는것들의증거니라고하신말씀을따라
조선의믿음의앞날을볼수있게될것을분명믿습니다
지금은우리가황무지위에
맨손으로서있는것같사오나
지금은우리가서양귀신양귀신이라고
손가락질받고있사오나
자녀들이우리영혼과하나인것을깨닫고
하늘나라의한백성한자녀임을알고
눈물로기뻐할날이있음을믿나이다
지금은예배드릴예배당도없고학교도없고
그저이곳모든사람들로부터
경계의의심과멸시와천대함이가득한곳이지만
이곳이머지않아은총의땅이되리라는것을믿습니다
주여!오직제믿음을붙잡아주소서!-아멘
언더우드는
1859년7월1일에영국런던에서태어나서13세가되던해에미국으로이주하였다.1881년뉴욕대학교를졸업하였으며,같은해부터1884년까지뉴브런스위크개혁교회신학교에서공부하였다.1884년7월28일조선최초의장로교선교사로선정되었어준비기간을거쳐1885년4월5일에감리교선교사아펜젤러와함께인천에입국한그는아직조선정부에서선교활동을허락하지않았기때문에제중원에서물리와화학을가르치는교사가되었다.그는조선어문법책을영어로집필하였다.그후성서번역위원회초대위원장,대한기독교서회회장,한국기독교교육회회장등을역임하였다.그는우리를위해서울경신중학교,연희전문학교(현재연세대학교)를설립하였다.
언더우드기도문을생각하며감사하며마음속으로라도지금우리나라어려운일들을위해기도해야겠다는생각을했습니다.평상시에잘보이도않던서울시청의벽시계가오늘밤따라유난이선명하게들어옵니다.
2015년6월15일새벽에
Share the post "한국에 최초로 온 언더우드선교사의 기도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