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행복했던 추억
1958년2월말경17살인나는처음으로서울로가는버스를탔다.하루에2번밖에다니지않는버스를타는자체가기쁘기도했지만불안은가시지않았다.그날은서울로고등학교시험을보기위해가는날이었다.시골에서서울로유학간다는자체가지금의외국으로유학가는것만큼희귀했던시절이었다.

그당시를회고해보면나는서울의유학은커녕인근도시의학교에도간다는것조차도꿈을꾸지못했다.우리동내는약60여호가있었지만정미소가있고제일부자인갑부의아들은수원에있는학교를다녔고또다른몇몇아들만이겨우도시로유학을왔을뿐이었다.그럼에도평범한우리집아버지는형만은서울에학교를보냈다.

고등학교에갈나이가되자형님이나를서울로유학을보내겠다고했다.형님은서울에서학교를다녔기때문에관비로운영되는우리고등학교를알고있었다.‘그학교만들어가면고등학교를다닐수있어.’하며서울에가서시험을보게하겠다고버스를타고가고있었다.

서울에가는데버스안에서버스좌석에있었던동아일보신문을펴들었다.그신문에전기중학교입학원서가마감되었는데60명모집에한명도지원자가한명도없다는기사가떴다.형님은그학교에찾아가중학교졸업장을만들었다.그리고한번도가본적이없는그졸업장으로우리학교에지원서에서울에서중학교를마친것처럼당당하게써냈다.

그리고남영동에있는어느초등학교에서입학시험을봤다.시험장에는많은학생들이모였으며모두당당해보였으며모두들합격할것처럼보였고나만떨어질것같아불안하기만했다.정신없이열심히했다는것외에는기억이없다.발표가끝날때까지형님의친구집에머물기로했다.서울거리도처음이라집을잃을까멀리나가보지도못했다.졸업장을만들어준학교에나가봤다.가는날이장날이라고졸업사진을찍는다고했다.그옆에섰다.내옆의학생이누구인지모른다.앞줄에앉아있는선생님의이름도모르고어느분이교장선생님인지그리고이름도몰랐다.

발표날이왔다.많은사람들이합격자명단이있는붙어있는쪽으로갔다.와!합격이다.외치며즐거워하며서로껴안고감격스러워하는사람도있고,이름이없어풀이죽어슬그머니고개를숙이고자리를뜨는사람이대부분이었다.

그사람들뒤에서가만이합격자명단에서내이름을찾기시작했다.한참을찾다보니내이름이보였다.숨을죽이고다시한번확인해봤다.“양병택”이란내이름이크게눈에들어왔다.와!합격이다.온세상이내세상같았다.

빨리집에가서알리고싶었다.다음날우리집으로가는첫뻐스를탔다.집에가는시간이지루했다.드디어양지에서조금더달려산고개길을넘어가니저멀리평평한들한복판에큰느티나무를둘러싸고있는우리마을이보였다.동내로들어가는진입로에도착하자차장에게차를세워달라고해서집으로뛰어가기시작했다.집으로뛰어오는나를보셨는지어머니도집밖에나와계셨다.어머니를만나며엄마.나!합격했어!50년도더넘어간그순간의기억이지금도생생하게기억하고있는것을보면그순간이가장행복했던순간이었다.

2015년6월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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