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신·세종대왕 동상 뒤에 이승만·박정희 동상도 세워야
"이순신·세종대왕동상뒤에이승만·박정희동상도세워야”

15일은광복70주년을맞는날이다.올해1인당국민소득이3만달러에육박할것이라고한다.요즘사람들은70년전이땅이얼마나빈곤하고비참했는지상상하기어려울것이다.일제식민과6·25전쟁이물려준한국사회는황폐함자체였다.광복15년이지나5·16혁명이일어난1961년에도1인당국민소득은82달러에불과했다.아프리카의가나보다못했다.이렇다할기술도자원도없는세계최빈국이었다.

능력과자본도문제였지만우리에게더절실했던건의지와자신감이었다.제대로된나라,잘사는나라한번만들어보자는의욕과정신이필요했다.나라재건의지는그때의시대정신이었다.1966년‘애국선열조상(彫像)건립위원회’가발족했다.민주공화당의장이었던내가초대위원장을맡았다.조상건립위는민족적자부심과국민적재건의지를불러일으키기위한일대정신운동으로기획됐다.박정희대통령은내게“세종로네거리에일본이가장무서워하고외경의대상이될인물의동상을세우라”고주문했다.그위인은바로민족의영웅이순신이었다.이순신은러시아의발틱함대를무찔러러일전쟁을승리로이끈일본의도고헤이하치로(東鄕平八郞)해군제독이‘전쟁의신(神),바다의신’으로숭앙했다.

충무공동상의제작은김세중서울대미대교수가맡았다.김교수는문교부국사편찬위원회와국내의권위있는사학자들로부터고증을받았다.또충무공유적지들을꼼꼼히답사하면서수많은스케치를모아형상을확정지었다.이렇게해서68년4월27일서울세종로광화문네거리에높이18m에달하는충무공이순신장군의동상을제막했다.조상건립위의첫번째작품이었다.제막식에는박대통령과육영수여사,3부요인이참석했고내가경과보고를했다.

나는박대통령이헌납한비용으로충무공동상을세운것이라고밝히면서“백의종군의높은뜻으로왜적을물리쳤던충무공정신을이어받아조국을보위하며국토통일을성취하자”고말했다.그런데그뒤에여기저기서이순신장군이오른손에장검을쥐고있어항복하는모습처럼보인다며시비를걸었다.군사훈련을지휘할때는얼마든지오른쪽에칼을들수있다.스스로창의적인발상을하지못하는사람들이누가먼저창조해놓으면꼭이런시비들을걸어온다.

충무공동상제막식일주일뒤에는덕수궁중화전앞에세종대왕동상을세웠다.이동상은내가동상만드는재원(財源)을대고,김경승이화여대교수가제작했다.이세종대왕상은2012년덕수궁원형복원공사때청량리에있는세종대왕기념관으로옮겼다.

애국선열동상을세우는공공미술프로젝트는유럽과미국을다니면서내마음에씨가심어졌다.63년‘자의반타의반’으로1차외유를떠나유럽각국을돌아보면서느낀바가컸다.영국런던트라팔가광장의넬슨제독,프랑스파리앵발리드의나폴레옹동상등주요도시마다그나라영웅들의모습이자랑스럽게세워져있었다.국민은영웅을가까이대하면서그들과정서적일체감을느끼고조국의역사에자랑스러움을갖게된다.나라의위기앞에내부의분열을극복하는국민정신은이런공공예술이자극하는역사적상상력에서잉태되는것이다.

국무총리시절인73년12월엔이순신장군과세종대왕의대리석입상을만들어중앙청중앙홀에세웠다.내가그리스산대리석을구해와김경승교수에게제작을맡긴것이다.이순신장군은무(武)의상징,세종대왕은문(文)의상징으로한국역사를대표하는인물이다.국가지도자들이문과무가균형잡힌국정을이끌어야한다는생각이었다.두대리석입상은96년중앙청건물이철거되면서여의도국회의사당중앙현관으로옮겨져드나드는국회의원들의출입을지금도지켜보고있다.

두번째총리때인98년에는내고향충남부여의백마강(白馬江)강변부산(浮山)절벽바위에계백장군과세종대왕,이순신장군,신사임당네분의얼굴을새기려고했다.미국사우스다코다주(州)러시모어산에워싱턴,제퍼슨,링컨,시어도어루스벨트등4명대통령의얼굴을새긴조각상에서아이디어를얻었다.예산20억원을확보하고기초작업까지해놓았는데문화재위원들이산의원형을훼손한다고반대해그만뒀다.반대에는이유가다있겠지만그때그것을완성했다면우리나라의대표적인위인명승지가됐을것이다.

21세기광화문광장에는국방의이순신장군,과학문화의세종대왕과함께대한민국의거인들동상을모셨으면한다.이나라경제를일으켜세운재계의두거물,삼성의이병철회장과현대의정주영회장이그주인공이돼야한다.한민족의긴역사흐름으로볼때이들이남긴업적은반드시기억해야한다.언젠가국민이존경과고마움을가지고두분의동상을올려다볼날이올것이다.

그리고세종대왕좌상뒤에건국대통령인이승만박사와조국근대화를이룩한박정희대통령의동상이세워지기를소망한다.그렇게되면광화문광장에는우리의자랑스러운역사가모두모이게되는셈이다.앞으로세울동상은동(銅)을잘골라천년이가도변함없을상징을만들어야한다.이들여섯분모두천년은가야할분이다.

내가추진한동상(銅像)이우리시대정신의상징이라면휘호(揮毫)는시대정신의언어(言語)라할수있다.

광복70년세월이흐르면서점점강렬해지는시대정신이라면나라가강해야하고힘이있어야한다는거다.일본에유린당한우리역사는나라가약해서였고힘이없었기때문이다.다른데로이유를돌릴필요가없다.광복의그날과비교할수없을정도로나라가커지긴했지만국민적단합으로힘을더길러야한다.

북한을지척에두고있는서해강화도에는나의이런생각이붓글씨로남아있다.강화도최북단철산리는한강을사이에두고북한과거리가1.8㎞에불과한곳이다.66년공화당의장때이곳평화전망대를찾았다.이일대를제적봉(制赤峰)이라이름짓는행사에참석하기위해서였다.제적봉이란붉은오랑캐를제압한다는뜻이다.나는그자리에서붓을들고제적봉휘호를남겼다.이곳엔지금도내가쓴글이비석과액자로남아있다.

 강화대교인근갑곶돈대아래쪽더리미마을의가리산중턱에는까만오석에‘위국충렬(爲國忠烈)’이라는글을새겨놨다.나라를위한매운충성을강조했다.이곳일대는1871년미국의아시아함대사령관J로저스가군함5척을이끌고와개항을요구하며조선군대와일전을벌인신미양요(辛未洋擾)의현장이다.

 골프장도내글씨가많이남아있는곳이다.골프는내가가장즐기는취미이며건강을지켜온운동이다.무엇이든깊이파고들면그안에서세계가보이지만골프도광대무변한인생의축소판이다.일본오이타퍼시픽블루골프장의클럽하우스현판에는‘백구백상(白球百想)’이라는붓글씨가새겨져있다.작고흰골프공을치면서사람들은수많은상념을갖는다는뜻이다.경기도고양의뉴코리아컨트리클럽15번홀그늘집에는‘대통령이노닐던곳’이란뜻으로‘신유정(宸遊亭)’이란글을나무판에새겨놨다.박대통령과나는종종뉴코리아컨트리클럽을찾아골프를치며막걸리와사이다를섞어‘막사이다’로만들어마시곤했다.

 고양한양컨트리클럽의9번과10번홀사이에문이하나있는데그곳에‘소복문(笑福門)’이란글을써줬다.전반9개홀에서공이잘안맞았다고화내지말고,후반홀을웃으면서즐기라는뜻이다.인생이란것도매한가지가아닌가.태릉군인골프장에도‘쌍휴정(雙休亭)’이라는휘호를달아놨다.동반자와쌍쌍이골프를즐기며쉬다가라는뜻이다.세계문화유산으로지정된수원화성에는장안문이있는데화성을복원할당시이병희의원이권유해‘장안문(長安門)’현판을내가써서걸었다.

 나는다섯살때부터고향부여의서당에서선친의친구이며한학자인윤응구선생으로부터한학을배우고붓글씨의기초를익혔다.그때서당으로경성일보가배달돼왔는데묵은신문지가새까맣게되도록친구학동들과함께지겹게글씨를썼다.그러다윤선생이화장실에가느라일어서기라도하면모두물방개흩어지듯일제히도망을갔다.어린시절의정겨운추억이다.붓글씨는자기를연마하고정신을집중하는예술이다.세상에강렬한메시지를전하는매력적인수단이기도하다.

소이무답(광복70주년김종필의특별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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