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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이 약이라더니,

solitary

세월이 약이라더니,

미국은 현충일(Memorial Day)에서 여름이 시작되고, 노동절(Labor Day)에서는 가을이 시작 된다. 금년에는 9월 5일이 노동절이다. 자기 생일은 모르고 지나칠 수도 있지만 연휴가 되는 탓에 모두가 기억한다.

예로부터 시월 상달에는 시제(時祭)나 고사를 지냈으니 연중 최상의 달이라는 의미를 두고 있는 것 같다. 이승만 박사가 귀국하여 높고 푸른 가을 하늘과 광릉의 소나무는 한국의 국보라고 말할 정도로 가을 하늘은 쪽빛 같았었다.

그럼에도 가을은 생각이 많아지는 계절이다. 가을이 사색(思索)의 계절이라는 말에 동의(同意)하는 이는 가을을 타는 사람일 게다. 사람은 체험에서 얻은 정보를 근거로 사물을 인지하며 세상을 이해하기 때문에 그렇다.

가을에 어떤 음악을 들으면 눈물이 난다는 사람도 있고, 단풍처럼 아름답게 늙기를 소망하는 이들도 있다. 더 외롭고 쓸쓸해지는 사람도 있고, 원인 모를 비애감이나 뚜렷한 대상이 없는 그리움에 잠을 못 이루는 사람도 있다. 그런 걸 가을을 탄다고 한다.

사색(思索)의 사전적 의미는 ‘깊이 생각함’이라 한다. 생각이 깊어지면 왜 외롭고 쓸쓸해 지는지는 알 수 없으나 그렇다면 노년에는 네 계절 모두 사색의 계절이 되는 셈이다.

세월이 약이라더니 까맣게 잊었던 초등학교 때 동무들까지 생각난다. 그럼에도 요즘은 전화기를 눌러 봐야 오늘이 몇 일인지를 알 수 있다. 노년에는 좋아도 아주 좋은 게 없고, 싫어도 아주 싫은 것도 없다. 좋게 말하면 관조(觀照)의 미덕(美德)이 몸에 밴 것 같다.

그래도 얼마나 다행한 일이냐, 늙어서 인생 종쳤다고 주저 앉지 말고 옛 추억을 recall하여 위로 받으라는 조물주의 배려일 수도 있으니 말이다. 만일 망각의 삶이라면 눈 앞에 보이는 것이 세상의 전부일 테니 그런 절망도 없을 것이다.

이젠 여름의 더위도 한풀 꺾이고 조석(朝夕)에는 제법 선선하다. 덧없는 세월을 말하면서도 이럴 땐 계절을 미리 가불하여 가을의 정취를 미리 느끼려고 한다. 세월은 이렇게 말없이 가고 있는데 거기에 ‘야속한 세월’ 이라고 푸념을 해 본들 늙어가는 것 외에는 달라지는 게 없다.

가끔 산 아래의 양계장에서 대낮에 닭 우는 소리가 들린다. 어떤 날에는 처량하게 들리고 또 어떤 날에는 정겹게 들린다. 내 기분에 따라 닭도 그렇게 울어 주니 그것도 묘하다. 미국에서는 닭도 영어로 운다. “cock-a-doodle-doo…”

봄이나 여름과 달리 가을로 들어 설 때는 설레임 같은 게 별로 없다. 붉은 단풍에 환호를 하면서도 쓸쓸한 기분이 드는 탓일 게다. 그러나 금년에는 여름이 혹독했던 연유에서인지 가을이 더 없이 반갑다.  이 가을을 일생 최고의 가을로 단장을 하고 싶은데 무엇으로 채워야 할지 그게 문제이다. 9/2/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