훨훨 날고 싶어하신 어머니

지난토요일,벌초하러갔다가텅빈시골집을들렀다.
어머니생전에는그래도드문드문드나들었다.
몇년전어머니가세상을뜨신이후로통발길을하지않았다.

차마집이라할수가없다.
그렇다고집터라고하기에는선뜻내키지않는다.
집의형태는물론,곳곳에어머니의손때가남아있기때문이다.
사람이살지않고내버려둔집,다시말해폐가인셈이다.

바깥마당엔누군가내다버린트럭한대가을씨년스럽게녹물을흘리고있다.
추녀끝양철빗물받이가내려앉아트럭위짐칸에걸쳐져있다.
트럭은무성히자란잡초들에포위된채영영그자리에서헤어나지못할것만같다.

마당한켠에는전에는없던호두나무두그루가튼실히자라
제법그늘을만들고있다.
이웃한친척어르신께서어머니말동무하러드나들며심어놓은것이라했다.

초가을이긴하나여전히햇살은따갑다.
나무그늘에는동네할머니몇분이둘러앉아있다.
너무나반갑게맞아준다.
“하이고야가누고?그래모도잘잇제.집이라고와보이누가반기주기럴하나,
잡초만무성한기고마영맘이안조을끼다”

어머니는지병인당뇨로인한합병증으로십수년을실명한채고생하시다가셨다.
자식들에게짐되기싫다시며한사코홀로시골생활을고집하셨다.
한번은억지로납치?하듯차에태워서울로모셨던적이있다.
자식의얼굴도구분못하는눈으로잘올라가라며손짓하고선돌아서서
벽을더듬거리며집안으로들어가시는어머니의모습을보았기때문이다.
막무가내로차를돌리라고한참동안고집을부리시다가이내조용해졌다.
차만타면멀미를하기때문에억지로잠을청했을것이다.
하도오랜동안차를타보지못해어쩌다차를타면매우어지럽다하셨다.

실명이후그흔한관광버스타고나들이한번못다니셨다.
그게원이되어돌아가시기전자식들에게신신당부한게있다.
"나죽으면화장을해다오.그런다음뼈가루는산에올라훨훨뿌려다오.
행여컴컴한항아리속에가둬납골당에놓을생각일랑아예말거라.
이승에서는캄캄하게살았으니저세상에서나마

밝은세상을훨훨날아다니고싶구나"하셨다.
유언대로얕으막한동네산에올라그렇게날개를달아드렸다.

서울로모셔왔으나예상한대로사태?가벌어졌다.
하룻밤묵으신뒤다음날,’당장시골집으로데려다달라’고하신다.
더이상신경전을벌여보았자어머니고집을꺾을수없다는걸잘알기에
출근을미루고청을따랐다.

집안구석구석을둘러보고싶었다.
먼지가뽀얗게내려앉은마루바닥을밟고지나안방으로통하는
미닫이문을열었다.
아랫목엔낡은침대가,방한켠에붙은싱크대위엔그릇들이가지런하다.
금방저만치에서어머니가달려나오며팔을벌려반길것만같다.

비구름이낮게깔려주위가침침한데눈자위마저뜨거워져사방이흐릿해져온다.
안마당한가운데에사람손길못받아볼품없게성큼커버린
목련나무를올려다본다.
무성한잎사귀사이로보이는하늘은자꾸만번져간다.

쓰러져삐걱거리는대문을나서며많은생각들이머리속을헤집는다.
홀로계시며자식들과의소통에목말라하셨을생전의어머니모습을생각하니
가슴이저민다.

문밖바깥마당호두나무그늘에할머니들은여전히같은자세로앉아계신다.
무심한세월은어르신들의얼굴에골깊은주름과외로움만잔뜩안긴것같다.
영기력이쇠하여진것같아가슴이시리다.

검은콩으로만들었다는두유를한박스사서자리에올려드렸다.
‘뭘이런걸다사오노’하시며고갤들어앞집담벼락너머감나무를
올려다보신다.

눈물샘이메말랐을것만같은한많은세월을사셨을텐데도
골깊은주름을타고흐르는눈물을거북등짝같은손등으로쓰윽문지른다.
나는그눈물의의미를조금은알것도같다.

고작열두집뿐인동네는그나마도온통과수원으로둘러싸여있어
마치무인도와도같다.
적막강산같은동네에남은노인들은모두외지로나간자식들과의소통에
목말라한다.
명절이나되어야겨우만날수있는게자식,손주들이다.
호두나무를연신오르내리는청솔모는여름내내노인들의말벗이되고있었다.

15 Comments

  1. 김익겸

    2005년 9월 7일 at 12:03 오전

    희생을희생으로생각지않고오늘을일구신부모님들,
    설치는찌질이놈들에게는부모님의주름도안보이나…   

  2. 박원

    2005년 9월 7일 at 1:14 오전

    고향을다녀오셨군요.
    맘만먹으면다녀올수있는곳이지만
    맘에만두고가보지못하고그리워만합니다.
    고향생각나는글에가슴이철렁내려앉고갑니다.   

  3. 山 처럼.到衍

    2005년 9월 7일 at 1:28 오전

    어머니께서당뇨로인한합병증으로
    실명까지하시고살아가셨군요.
    참으로안타깝습니다.
    카스톱님의마음고생알고도남음이있습니다.

    이번추석엔가족분들친지분들모이셔서
    돌아가신어머니에대한그리움으로
    온갖추억속대화가오가겠지요.

    오늘도힘찬하루열어가시고건강하세요~   

  4. 거 당

    2005년 9월 7일 at 2:08 오전

    태풍나비가지나가더니…
    카스톱님사연이가슴을저밀어옵니다.
    부모님의사랑과희생은뭐라표현할수없을정도로영원합니다.
    받는거없이주기만해도좋아하시는부모님의사랑이.
    이제나이가들어자식을키워보니만분의일이나느끼고있는지
    항상부끄러워집니다.
    저하늘위에서도항상지켜보고계실겁니다.
    풍성한가을을맞이하시기바랍니다.   

  5. 카스톱

    2005년 9월 7일 at 4:01 오전

    김익겸님,
    보톡스로다림질한분눈에는부모님주름살이안보이나봅니다.

    박원님,
    추석때고향다녀오시겠네요.
    저는추석연휴때하루틈을내연인산을갈까합니다.

    산처럼.도연님,
    네,마음고생만했지,
    뭐하나제대로신경써해드린게없어늘후회스럽습니다.

    거당님,
    따뜻한말씀,가슴깊이새기겠습니다.

       

  6. 양송이

    2005년 9월 7일 at 7:25 오전

    시골사시지도않으시면서어떻게시골에살고있는사람들보다더절절한사연으로
    시골사는사람의마음을이토록적셔주시는지요.

    어머니,그소리만들어도가슴이저미도록시린마음이되는것은…

    좋은글잘읽고갑니다.

       

  7. 수홍박찬석

    2005년 9월 7일 at 1:25 오후

    노인들만이있는시골의풍경을어머님을그리워하는마음으로표현하셨네요.
    도시의아파트가아무리좋아도텃마당있는시골을그리워하신어머니…
    캄캄한항아리에가두지말고훨훨뿌려달라는말씀…
    머물다갑니다.   

  8. 나무

    2005년 9월 7일 at 2:20 오후

    고향!어머니!네,눈물나는단어지요.
    좋은글읽고상념에젖다갑니다.   

  9. 불침번

    2005년 9월 7일 at 4:38 오후

    오늘날우리가겪는마음을그대로표현하셨습니다.
    님의얘기가아니라우리들의얘기군요.

    어머니가밭에서일하시던모습땀냄새가나는걸느깔때도뭉클하죠.

    세월이흘러우리자식들은우리를어떻게생각할런지요.

    덩달아어머니생각납니다.   

  10. 종이등불

    2005년 9월 7일 at 8:51 오후

    이렇게정갈한글을만난저의아침이
    참행복해집니다.
    .
    .
    .
    어머님의모든것이남겨있는고향집.
    비록집터만남아있다고말하기에도뭐하고
    집이라고표현하기에도적당하지않는……
    폐가의모습이지만
    그집에깃든선생님의사랑을느낍니다.   

  11. 카스톱

    2005년 9월 8일 at 2:13 오전

    양송이님,깊은관심너무고맙습니다.

    수홍박찬석님,발걸음에감사드립니다.
    좋은사진작품들,쉽게접할수있어늘감사한마음갖고있습니다.

    나무님,처음뵙겠습니다.찾아주셔서감사합니다.

    불침번님,얼마전아!어머니展을보았습니다.
    세상모든어머님들의힘은과연어디서나오는지모를정도로
    그세기를가늠할수가없었습니다.
    방문,감사드립니다.

    종이등불님,정갈한글이란표현에많이부끄럽습니다.
    농촌곳곳에폐가가너무많습니다.가슴이아프답니다.   

  12. 無用

    2005년 9월 8일 at 12:33 오후

    어머님이야기는..언제들어도..
    미어지는가슴을쓸어담습니다..
    카스톱님은그래도옛집이남아있군요..
    저도그런흔적의집이라도있었으면…합니다..   

  13. 종이등불

    2005년 9월 8일 at 8:41 오후

    호두나무를연신오르내리는청솔모는여름내내노인들의말벗이되고있었다.
    .
    .
    .
    따뜻한시한편.
    가슴에젖어듭니다.   

  14. 馬화가.류정실

    2005년 9월 9일 at 4:32 오후

    어머니에대한회상…잘읽었습니다.
    낼시부모,친정부모님께전화라도드려야겠어요.^^   

  15. 느티나무

    2005년 9월 11일 at 9:34 오후

    훨훨날고싶다시던어머니의청을들어주셨군요…..

    저도제아이들에게그렇게부탁하였답니다.
    난화장해서성당뒷숲에다뿌려다오~~

    어머니를회상하시면서잔잔하게마음쓰신구석구석에함께있다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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