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맹유감(數盲有感)
인터폰화면속엔검침원도,택배원도아닌아내얼굴이들어차있다.뜬금없이문을열어달랜다.
"별일이네.스스로열고들어오질않구서"(궁시렁궁시렁)
의아해하며문열림버튼을누른다.
황당한얼굴빛으로집안으로들어선아내는연신고갤갸우뚱거린다.
늘드나들던출입문인지라무의식적으로숫자버튼을눌렀는데어찌된영문인지번호가틀렸다며
돌연눈앞이까매지더니머릿속에선온갖숫자들이뒤엉켜맴맴돌기만할뿐
“숫자기억만큼은자신있어하더니…”라는말에영스타일구긴표정을짓는다.
아내는20여년전의집전화번호는물론,특별히기억될만한일이있었던날짜도지금껏줄줄왼다.
더하여가까운지인들전화번호도주저없이기억해낼정도다.
이처럼스스로도숫자기억만큼은자신해오던터였다.
그런데어이없게도출입문앞에서전설이무참하게무너져내렸으니눈앞이캄캄해올수밖에…
"여러개비밀번호가머릿속에서뒤엉킨탓이니염려말라"며애써안심시킨다.
이로인해지금까지도카드로현금인출서비스를받지못한다.
그만큼숫자에대한거부감은거의두드러기수준에이른다.
그러다보니자연숫맹(數盲)수준에가까와져있다.
주판알을튕겨가감승제할때단위가세자리만넘어서면여지없이뒤죽박죽될정도였으니더말해무엇하랴.
숫자라는것이어디더하고빼고곱하고나누는데만쓰이는물건이던가.
눈만뜨면기억해내야할숫자와새로입력되는숫자가얼키고설켜돌아가는세상이다.
감춰야할것들,지켜야할것들이많아진탓일까.
대부분사람들이비밀번호너댓개씩은기본으로움켜쥐고산다.
그림자처럼따라다니는번호는죄다끌어들이기도했다.
아무리울타리가튼튼해도전문사기꾼들은늘한수위에서노는지라개인신상과관련된비밀번호는
쉽게노출되어크고작은사건들이우리들주위에서빈번하게일어난다.
현금인출기앞에서허둥대는경우까지,급기야는집출입문비밀번호조차헷갈리는해프닝까지….
이제두세자리숫자만으로조합된비밀번호는온라인상에서도문전박대다..
숫자에알파벳까지조합해야하는ID에,PW는기본네자리가넘어야한다.
비밀번호는늘그림자처럼따라붙는다.번호몰랐다간낭패보기십상인게요즘세상이다.
뇌용량은일정한데밀려드는새로운숫자들은점점불어난다.만탱크다.
말끔하게삭제할수만있다면더할나위없겠으나뇌구조상불가능하다.
우선출근을위해아파트주차장으로통하는문의비밀번호를머릿속에서끄집어낸다.
회사에도착,출입문비밀번호를눌러입실한뒤컴퓨터를켠다.
업무점검을위해비밀번호를입력,사내그룹웨어에접속한다.
이메일과웹하드창을열어역시비밀번호를입력한후메일과자료를체크한다.
그런다음각종정보수집을위해여러사이트를방문한다.
물론ID,PW를넣고들어가야만제대로된자료를볼수있다.
음성메세지신호가울려휴대폰을연다.이것역시비밀번호네자리를눌러달랜다.
이번엔수화기를든다.무미건조한음성안내에따라비밀번호를입력한뒤필요한숫자를한참더누른다.
모임회비송금을위한폰뱅킹이다.
손가락은현관문비밀번호를누르고있다.
와암(臥岩)
2006년 12월 24일 at 10:32 오후
‘숫맹유감’,
읽으면서빙그레웃었습니다.
저역시임의그수준에가까우니깐요.
특히술한잔걸치면,
집전화번호가기억나지않을때가있을정도랍니다.
그래서전컴퓨터에접속하기위한비빌번호나ID를다이얼리에꼭꼭적어둡니다.
은행공인인증서는물론이고,
그외비빌번호도적어둔다이얼리를찾아접속한답니다.
몇몇전화번호와휴대폰번호만머리에남아있지요.
사모님의얘길곁들여쓰신글,
언제나처럼명문입니다.
추천올립니다.
양송이
2006년 12월 25일 at 3:56 오전
하하하…
세상에는닮은사람이너무도많아…하는노래가갑자기생각납니다.
저의경우도카스톱님수준입니다.
그래서인터넷상에서웬만하면회원가입하지않구요,
언젠가카드로넷에서결제하다세번실패해서똑같은처지로
그카드사용못하고있구요…ㅎㅎㅎ
그런데저의경우숫자이외에대한기억력은귀신이탄복할정도로정확하지요.
세살때영화본장면이생생하게기억날정도랍니다.ㅎㅎ..
그런데비밀을유지하기위한숫자도있지만
그비밀을해체하기위한숫자도있는것이니
카스톱님이나저나지금부터라도숫자공부좀더해야하지않을까요?
오늘크리스마스입니다.
즐겁고행복한시간보내시기바랍니다.
우리집에는진진이가장군이의새끼를출산했답니다.
저녀석은꼭명절날새끼를낳는버릇이있어서크리스마스에만벌써두번째입니다.
아니면음력설,또아니면추석날…ㅎㅎㅎ
은하수
2006년 12월 25일 at 8:00 오전
저도가끔비밀번호가생각이나지않아서주저할때가많습니다.
그래서아예모든비밀번호를통일해버렸는데
이게아주위험한짓이라고하더군요.ㅎㅎㅎ
전화번호를외우는거는젊을때부터잘못했고요.
아별
2006년 12월 25일 at 1:38 오후
저도일년전에전머리가하얘(?)지면서현관앞에서비밀번호를잃어버린적이있답니다
그때충격이굉장했어요왜냐면전우리두아이생일의조합인번호를설정했거든요
거의울것처럼가족에게전화했던생각이나서사모님께위로를보내고싶군요동병상련의마음두요…ㅎㅎㅎ
카스톱님전시골엘엘다녀왔습니다어제밤엔충장로를헤집고다녔어요
그리고학생회관뒷골목의상추튀김집을찾기위해이잡듯뒤졌지만없더군요
모두꼼장어집으로바뀌었어요하나쯤명맥을유지할것이라는기대는씁쓸함으로바뀌었구요….그러나여전히우다방앞의건불들….ㅎㅎ
즐거운성탄이었습니다^^
山 처럼.도연
2006년 12월 26일 at 12:46 오전
될수있으면버릴것버리고
단순하게산처럼살고싶은데…
그게쉽지않더군요.
오히려점점복잡해지는세상…
카스톱님생각처럼머리가따라주질않네요^^*
2006년알찬마무리되소서~
曉靜
2006년 12월 26일 at 3:51 오전
숫자의바다에빠져사는현대인들의신종바이러스가생겼나보네요^^
하긴뭐저도집전화번호가생각나지않아당황한적도있었고
내휴대폰번호를까먹어애를쓴적도있었지요!
그러니아이디나비밀번호는솔찍히컴옆에적어두고있답니다.
요즘엔전화번호나이상하게네자리국번이면한번보고는도저히외우지못하는걸요!
이것이아마도직업과연관되어나타나는현상이라스스로위로해버립니다.
계산기를다섯번이나두드려합산을했는데다섯번모두답이들리게나오니
미치고환장하겠습디다^^*ㅋㅋㅋ
이몸의한계입지요!
연휴잘보내셨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