雪山의 진수, 평창 계방산

小寒을전후해한반도는말그대로雪國이었다.
특히나서울도심과수도권일원은눈폭탄의집중세례로생채기가심했다.
잘나고못난경계도덮어버렸고,높고낮음의경계또한잠시나마지워버렸다.

테라(Terra)위성에포착된눈덮힌한반도는포효하는白虎의기상처럼기운차다.
100년만의폭설이60년만에돌아온白虎를극진하게마중하는형국이다.

백호맞이눈폭탄뒷풀이에한파까지합세해도심은꽁꽁얼어붙었다.
官이제설에나서자,軍도삽을들었고民도힘을보탰다.
덕분에쌓였던눈은이내치워졌고얼었던길은녹고막혔던길은뚫렸다.

그런데유독세종市로가는길목은도통녹을기미가보이질않는다.
워낙두텁게얼어붙어삽질로는어림없어보이니이를어쩌나?

각설하고,
눈폭탄에놀란도심도어느정도평정을되찾았다.
잠시눌러뒀던역마살이다시꿈틀거린다.

일단인터넷서핑을통해주말겨울산탐색에나섰다.
설경이백미인평창계방산(桂芳山)이확당긴다.
한파가기승을부리던요며칠,강원산간지역중에서수은주가
가장곤두박질친곳이평창지역이다.
살을에는혹독한맹추위역시겨울산만의묘미인지라
잴것없이평창계방산으로낙점했다.

집문을나서는데뒷통수에걱정섞인화두를매단다.
"산이대체뭐길래,뜨끈한아랫목마다하고이엄동설한에
삭풍몰아치는설산으로납시옵니까?"

해발1,577m의계방산은한라산,지리산,설악산,덕유산에이어
남한에서다섯번째로높다.
산높이에지레겁먹을필요까지는없다.
운두령(해발1,089m)에서정상까지의표고차는488m에불과해
들머리를운두령으로하면쉽게오를수있기때문이다.

산객실은버스는굽이굽이산길을돌아운두령을오른다.
대한민국에서차다니는도로중두번째로높다는운두령,
버스도숨가쁜지배기음을거칠게토해낸다.

운두령중턱에서부터버스는가다서다를반복했다.
산객을가득실은버스들이가파른길위에서코를박고꼬리를물었다.
설산의유혹에이끌려새벽단잠을뿌리치고길나선산객들,
이런정도의정체는예상했다는듯표정들이느긋하다.

운두령고갯마루는차량과산객들로분주했다.
앞사람뒷꿈치에코를박은채절개지사면으로꾸역꾸역올라붙는다.

나무계단이나있으나쌓인눈이얼어붙어미끄럽다.
아이젠을걸지않아엄지발가락에힘을싣는다.
나무계단을올라서자이내완만하며푹신한눈길이이어진다.

나뭇가지에얹힌눈이삭풍에맥없이흩날린다.
눈덮힌겨울산은차갑지만여백미가돋보이는한폭의墨畵이며,
단순하지만절제미가돋보이는한편의詩畵이다.

운두령을출발한지27분,첫이정표를만났다.
1.2km를걸었고2.9km를더가면정상이다.
아이젠없이예까지용케버텼으나더이상은무리였다.
연신나자빠지는통에걸음멈춰아이젠을걸었다.
눈(雪)에노출된눈(眼)도먹먹하다.
자외선반사율이높은눈산행시,선글라스는필수다.
겨울산행시챙겨야할게참으로많다.

하늘빛은온통희뿌옇다.가시거리가짧다.
장중한백두대간줄기와장쾌한태산준령조망을기대했는데
덕이부족했나보다.욕심을버리라는메시지다.

계방산의겨울은해풍과대륙의편서풍이부딪쳐폭설이되고,
내린눈은겨우내녹지않아설산의참맛을제대로느낄수있다.

러셀된곳따라길게줄지어걷다보니걸음이무척더디다.
푹푹빠지는눈길걷기란여간맥빠지는게아니다.
욕심껏보폭을넓혀보지만생각대로나아가질못한다.
이대로라면날머리까지예상시간안에도착이힘들지도모르겠다.
가다서다를반복하다보니따로휴식을취할필요는없다.

성질급한몇몇은등로를비껴나러셀을해가며대오를앞지른다.
얌체족으로보아야할지,호기부리는걸로이해해야할지…

1,492봉을오르기직전,눈발이흩날리기시작했다.
추위에민감한손끝,발끝,코끝,귓볼등말초신경이얼얼하다.
땀찬니트소재방한모는머리위에서얼어붙어버석버석거리고
턱밑재킷으로흘러내린콧물은그대로얼어고드름이되고만다.
등로는잘뭉쳐지지않는가루눈이무릎아래까지쌓여
모래더미위를걷는것처럼힘겹다.

1,492봉전망대난간에섰다.
하늘도산도모두가희뿌옇다.경계가없다.
쾌청조망이라면아스라히설악산이보이고오대산줄기도손짓할터인데…
차디찬칼바람은서둘러나그네의등을떠밀어내린다.
700m남은정상은거뭇한눈구름뒤로숨었다.

정상을향해걸음을서둘렀다.
잠시만몸을움직이지않아도오싹한냉기가
뼛속까지스며들어지체할수가없다.

운두령에서두시간남짓걸어닿은계방산정상(1,577m).
몰아치는눈보라가장난아니다.
설산의위용을뽐내기라도하는듯바람소리가거칠고날카롭다.
산정의눈은삭풍에쓸려나가군데군데맨바닥을드러냈다.
산객들은황급히정상인증샷을날리고선총총히내려선다.
똑딱이(카메라)를꺼내든검지는얼어셔터감각이없다.
손끝은시리다못해바늘로찌르는느낌이다.
사람도동태가될수있겠다는생각이번뜩들었다.

이럴땐몸을데워줘야한다.
정상에서조금만내려서면,눈을잔뜩뒤집어쓴주목이군락을이룬쉼터가나온다.
그냥지나칠수없는천혜의움막이다.
배낭을내려버너에불을당겼으나화력이신통찮다.
외기가낮은데다가고도가높아서일게다.
물끓기를기다리는사이,일행이비상용으로챙겨온35도짜리술병을꺼내
휴대용컵에가득채워돌린다.
겨울산에서저체온을지켜내는’우황청심환’이다.^^
목젖을타고흘러든35도는언몸을거짓말처럼녹였다.

주목군락을벗어나면서내리막길은매우가팔라진다.
무릎까지푹푹빠지는눈밭이라아이젠도제기능을못한다.

미끄러지지않으려고몸을뻗치면더힘든다.
눈밭에적당히몸을맡기는게덜힘든다.
심설산행에서발품팔아얻은노하우다.

정상에서산행이끝나는지점인제2야영장까지는5.4km나된다.
노동계곡을따라야영장까지원없이눈을밟았다.

적설량이많아여기까지차량진입이안되나보다.야영장은텅텅비어있다.
제2야영장에서10분정도내려오면연하장에서본듯한그림같은풍경이눈에들어온다.
하얀눈을잔뜩머리에인외딴초가집이다.
굴뚝에선금방이라도연기가모락모락피어오를것만같은데,빈집이다.
1968년,"나는공산당이싫어요"를외쳤던바로이승복의생가다.
반공교육의상징이었던이외침을가슴한켠에품고자란세대라
만감이교차했다.

42년이흐른지금,과연반공교육은실재할까?
기고만장인배추머리대를이어여전히실재하고있는데…

40분을더걸어내려오면아랫삼거리주차장,
산객들의쉼터인널찍한비닐하우스식당이있다.
산나물,두부조림,부침개와뜨끈한된장국이일품이다.

운두령~1429봉~계방산정상~주목군락지~노동계곡~이승복생가터~아랫삼거리(11.5km,5시간)

4 Comments

  1. 데레사

    2010년 1월 15일 at 11:15 오전

    우와!정말장관입니다.
    눈쌓인계방산경치,정말아름다워요.
    이렇게눈도쌓이고추운데도등산객들이대목장날장꾼만큼
    많군요.
    하기사저도젊은시절엔그랬습니다만….부럽습니다.

    늘安山하시길바랍니다.   

  2. 박원

    2010년 1월 16일 at 4:22 오전

    계방산을다녀오셨군요.
    한오년전에저도가봤습니다.
    거긴눈덮인때가제격인것같습니다.
    눈이오니앉아쉬데가없었습니다.말처럼서서쉬고또가곤했던기억이새롭습니다.
    새해건강하십시오.   

  3. 山 처럼.도연

    2010년 1월 25일 at 11:57 오전

    절정의겨울을노래하는계방산을다녀오신소감이의외로담담한듯합니다.

    고향소백산칼바람과호형호제할만큼계방산정에서의칼바람은장난이아니더라구요.

    차세호님.

    건강하십시요.   

  4. 와암(臥岩)

    2010년 2월 1일 at 11:33 오전

    ‘저체온지켜내는우황청심환…’
    35도짜리,
    목줄타고흘러내리는그찌릿함,
    어찌표현할수있을까요.

    임의산행기,
    정말멋있습니다.
    사진설명글만쓴지난몇회의글,
    영제맛이아니었거던요.

    힘드시더라도이렇게올려주셔요.아셨죠?^^*

    深雪山行,
    진정한그맛,
    느끼고갑니다.

    추천은물론이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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