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종된 봄을 찾아 광주 앵자봉으로

4월첫주말,여전히봄은멀기만했다.
흙을뒤집고씨를뿌려야할절기인춘분지난지도열사흘이나됐다.
누가春來不似春이라했던가.
분명봄은왔는데봄의내음은어디에도없다.

어느해보다유별났던서설에지레주눅이들어버린탓일까,
모두를침통하게만든침몰비보에봄조차넋을잃은것일까,
봄은제역할을깡그리잊어버린듯感에서멀어졌다.

실종된봄은어디에서무얼하고있을까?
산객발길이뜸한’앵자봉’으로봄을찾아나섰다.

용마산,검단산,예봉산이하늘금을…


앵자봉(鶯子峰,666.8m)
꾀꼬리가알을품고있는산세라하여’꾀꼬리鶯’을써서앵자봉이다.
작년5월,비를맞으며광주무갑산에올라앵자봉을조망하며
다음을기약했는데오늘비로소찾게됐다.

중부고속도로광주IC를빠져나와퇴촌도마치삼거리에서
천주교성지가조성중인천진암을향해내달린다.

들머리까지의교통편을고심하다가능선을둥글게돌아
제자리로내려오는코스여서오랜만에자가운전을택했다.

도로옆언덕배기가노랗게물들기시작했다.
개나리가발빠르게봄의전령임을만방에고하고있다.
황사로뿌연들녘이지만여기저기서봄나물캐는풍경은향긋하다.
앙상하던나뭇가지에도새순이수줍게돋아오른다.


실종된봄은그렇게도로가에,들녘에,산자락에서움을틔우고있었다.

천진암에이르자,탁트인너른터가펼쳐진다.
산자락은너른터를감싸안고있다.
바로천진암천주교성지이다.

"이곳천진암에오르는바윗돌사이사이로난실같은오솔길은
내어릴적오르내리며놀던길인데(昔我童時遊),
여기서우리는중용,대학,서전,주역,즉상서를다외운후
불에태워물에타서마시는소련을하였었지(尙書此燒鍊)!
더우기저명한호걸들과선비들이모여강학을하고,
독서를하던곳이바로여기였지(豪士昔講讀)"

1827년에65세된정약용선생이옛동료들과함께
천진암을찾아추억을회고하며현장에서지은시다.

이곳천진암은정약용이열일곱나이되던1779년에약종,약전형제와이승훈등이모여
당시로선생소하기이를데없는천주교관련책을읽고토론했던곳이다.


서당이나온전한사찰에서토론할내용이아니었던지라
폐허가된天眞菴이야말로아무런방해를받지않고
천주교진리를탐구하고실천할수있는더없는장소였을것이다.

이러한연유로天眞菴은한국천주교의발상지로부상했고
지금100년大役事의천주교성지로조성중이다.

천진암주차장에차량은달랑10여대정도로썰렁했다.

시계역방향으로돌아…


산행코스는천진암주차장을기점으로시계역방향으로올라
소리봉을찍고박석고개를지나정상인앵자봉에이른다.
다시앵자봉에서양자산방향으로걷다가삼거리에서왼쪽으로틀어
잣나무조림지를지나계곡으로내려와원점인
천진암주차장에닿게된다.
거리로볼때넉넉잡아4시간걸음이다.

주차장한켠에차를세우고주차안내문을보니
주간에만개방하며주차비는자율이란다.

천진암성지오른쪽계곡엔청소년야영장이들어서있다.
야영장출입문은굳게닫혀있다.출입문을비껴오른쪽소로를따라걷다보면
철제울타리가쳐진농장이길을가로막는다.
열어놓은문을들어서면비로소산길이시작된다.


한적한황갈색산길을따라걸으며나홀로산행의묘미에푹빠져든다.
이따금씩잔가지사이로봄내음이실린바람이지난다.

들머리에서20분을걸어산구릉에이르면잘손질된묘터가나온다.
이정표는앵자봉까지1시간40분을가리킨다.
방향을왼쪽으로틀어소리봉을향해걸음을내딛는다.

떡갈나무,박달나무,쪽동백나무,굴참나무가지천인산이다.
의당있어야할소나무는가뭄에콩나듯띄엄띄엄박혀있다.
다른나무들틈에서살아남으려고머릿대처럼키를키운소나무를보며
무한경쟁의사바세계에서살아남으려안간힘을다하는외톨박이를떠올린다.

눅눅한흙길이라발바닥에전해지는감촉이좋다.
흙냄새또한향긋하게코끝에와닿는다.
잔가지사이로드러난하늘은시리도록푸르다.
촉각과후각그리고시각마저호강스러운나홀로산행이다.

푯말은앵자봉1시간,소리봉5분을가리킨다.
이산저산에서별별푯말을다봤지만도로표지판처럼생겨먹은푯말은처음이다.
혼자생각일지는모르겠으나표지판색깔역시주변경관과따로논다.
이곳삼거리에서왼쪽으로꺾으면등로는관산,무갑산으로이어지고
소리봉(615m)에는산봉표시석은없고삼각점만박혀있다.

앵자봉까지는완만한능선길이다.
19번송전탑을지나면서남쪽산아래로이스트밸리CC가,북서쪽으로
천진암성지가내려다보인다.
호젓한산길위로내려앉은햇살은눈물날정도로따사롭다.

박석고개에이르는동안간간이골짜기를훑고지나는바람소리와
모습을감춘채동행하고있는이름모를산새소리가하모니를이뤄
마치꿈길을걷는듯몽환적인기분에빠져들었다.

휴대한지도상에표시된’박석고개’가정작푯말에는표시되어있지않다.
청소년야영장으로내려가는길이왼쪽으로가파르게나있으나
‘등산로아님’표시가되어있고앵자봉까지1.6km남았음을가리키는푯말이
서있는이곳이,지도를펼쳐가늠해보건데박석고개가맞다.

박석고개를지나자나뭇가지사이로앵자봉이모습을드러냈다.
들머리,천진암주차장을벗어나1시간50분을걸어앵자봉(667m)정상에닿았다.
주말의북한산,관악산,청계산은넘쳐나는산객들로몸살을앓고있는데
이곳앵자봉은한적하기이를데없다.산길을걷는동안단한사람도만나지못했다.
나홀로호젓한산행이당긴다면이곳이야말로넘버원이다.

앵자봉에올라주변산군을두루조망하며山名을어림잡아본다.
북서쪽퇴촌너머로자주걸음하던검단산과예봉산이하늘금을긋고
서쪽으로는관산,무갑산이선연하다.
동남쪽으로태화산과곤지암리조트스키장이아스라히시야에들어온다.

연리지(連理枝)

앵자봉을내려와양자산으로향하는길목에서연리지(連理枝)를만났다.
산행중연리지를만나는건행운이다.
連理枝란,서로다른두나무의가지가맞닿아한몸으로자라는것으로
흔히금슬좋은부부와화목한가정을連理枝에비유하기도한다.

헬기장을지나양자산으로갈라지는삼거리에서왼편북서쪽능선으로접어든다.
삼거리에서천진암까지는1시간반,양자산까지는3시간거리다.
북서쪽으로이어진능선을따라걷다보면455봉이나오는데
여기서또한번왼쪽으로꺾어내려서면잘자란낙엽송이하늘을찌를듯
군락을이루고있다.
숲은비움과채움의순환이다.
겨울을나느라이파리를털어낸숲은지금,봄을도모하고있다.

낙엽송군락을벗어나자이번엔잣나무숲이펼쳐진다.
가파른산비탈에쭉쭉뻗은잣나무가일렬로질서정연하다.
마치열병대오를지어사열을준비하는듯하다.
밀림을연상케할정도로숲이빽빽하다.
끊임없이인공조림을실시한결과이다.

잣나무그림자가길게드러누운오솔길을지나
계곡으로내려서니나뭇가지사이로천진암주차장이보인다.
십자가에못박힌예수께서바위에기대어봄햇살을만끽한다.


미적미적거리던봄은비로소삼라만상을일깨우기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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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04월03일…경기도광주앵자봉산행

4 Comments

  1. 데레사

    2010년 4월 8일 at 9:06 오후

    일등했습니다.ㅎㅎ

    저도앵자봉은여러번올랐습니다.천진암을간길에오르기도
    했고앵자봉간김에천진암에들리기도하고….

    이제사겨우봄기운이여기저기보이기시작합니다.며칠전에
    안동을갔었는데병산서원에매화가피었습디다.
    우리동네도아마한며칠지나면벚꽃이필것도같고요.

    고맙습니다.
       

  2. 박산

    2010년 4월 9일 at 5:58 오전

    호젓한산행이라하시니

    저도한번올라보아야겠습니다

    그쪽동네친구도살고해서…

    오늘이곳노들나루벚꽃나무모습은

    절대과장안하고말씀드려서

    아침다르고점심다릅니다   

  3. 박원

    2010년 4월 13일 at 10:04 오전

    앵자봉
    한적한산길이눈길을끕니다.
    이렇게멋진산길혼자만즐기지마시고한번쯤동행하시지요.   

  4. 와암(臥岩)

    2010년 4월 24일 at 11:22 오전

    ‘春來不似春’,
    ‘실종된봄’,
    .
    .
    .

    외톨이산행,
    그산행에서의느낌,
    촉각과후각,그리고시각마저호강스러운홀로산행,
    실종된봄찾아나선홀로산행이정말호사스러운산길이되었군요.

    ‘천진암’,
    이가환과이승훈,
    그리고다산형제분들께서서학교리를공부하고토론했던곳이군요.

    홀로산행에서너무많은걸느끼고배웠으리라여깁니다.
    추천은물론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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