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는지금,구제역과의사투로지칠대로지쳐있다.
그분들이감내하고있는살처분의아픔과고통의깊이가크고도깊기에
연말연시계획했던지방산행을잠시접었었다.
그러나생체리듬은여전히주말산행모드에맞춰져있는지라
한강변걷기로는성에차지않았고자꾸만좀이쑤셔왔다.
연일치솟던수은주가잠시멈칫거리자,기다렸다는듯
심설산행의몽환적기억이전두엽을들쑤셨고
순식간에머릿속은온통설산으로채워졌다.
조심스레길을나섰다.
수은주는잠시멈춰섰으나체감온도는매양매섭다.
산꾼들은추위아랑곳않고새벽어스름을헤치며꾸역꾸역모여든다.
주말이른아침,사당역1번출구를빠져나오면
전국산으로향하는버스들이줄지어서있다.
산꾼들에겐익숙한풍경이다.
대전통영고속도로무주나들목을빠져나온버스는
나제통문앞휴게소에서잠시멈춰섰다.
저만치입벌린’나제통문’으로차량들이오고간다.
신라와백제를경계짓는문으로잘알려져있다.
그러나실제이굴은일제가수탈을위해1910년경뚫은인공굴이다.
그러다가1963년경,이굴은뜻밖에도’나제통문’이란그럴싸한이름을얻어
무주구천동의명승지33곳중제1경의자리에올랐는데,
수탈의용도로뚫어놓은굴이무주구천동제1경이라니…씁쓸하다.
전북무주와경북김천을경계하는고갯마루,덕산재(644m)를넘어
지그재그로난고갯길을둔중하게내려서던버스가멈춰섰다.
바로구제역방역초소앞이다.
선탑자가내려전후사정을파악한뒤차에올랐다.
"방역작업에적극협조키위해들머리를덕산재로급수정하겠습니다"
나눠받은등산안내도에는덕산마을을들머리로하여삼도봉(초점산)을먼저찍고
대덕산정상을밟은다음,덕산재를거쳐덕산마을로내려서는원점회귀산행이었다.
평소대로라면’왜계획대로진행하지않느냐’는이견이나올법한데
때가때인지라한결같이’백번지당한선택’이란다.
버스는다시고갯길을힘겹게되올라덕산재에일행들을쏟아냈다.
덕산재는전북무주무풍면과경북김천덕산면을가른다.
덕산재는백두대간상에있어서대간꾼들이즐겨들고나는목이다.
겨울산행은챙겨야할게많다.
아이젠을걸고,스패츠를찼다.
배낭허리띠를졸라매고어깨끈을조였다.
방한모를눌러쓰고방한장갑을꼈다.
눈길중심을잡아줄스틱도오름길에맞게조정했다.
들머리에세워진등산안내판을바라보며심호흡을가다듬은후,
안내판뒤로열린눈길을따라오른다.
설질은푸석푸석해마치모래더미위를걷는것같다.
폭설후연일강추위가이어진탓에쌓인눈은
잘뭉쳐지지않고모래알처럼부스러져내렸다.
뽀드득소리가나면걷기가수월한데이처럼부스러지는
눈을걷기란경험상체력소모가장난아니다.
빡센산행이예고되는대목이다.
비교적완만한오름길인데도벌써기진맥진이다.
욕심내어보폭을늘려디뎌보지만맥빠지게자꾸만뒤로미끄러진다.
설피가아니고선그어떤아이젠도무용지물이다.
설질을익히느라버벅대는동안등짝은이내땀으로척척하다.
러셀되어진눈길은남쪽으로이어지면서오르내림을
반복하다가두갈래로나뉘어진다.
왼쪽덕산마을로내려서는길은발자국이드문드문나있으나
주등로는깊게패인밭고랑처럼뚜렷하게이어진다.
바람그리고구름과햇살은잎진잡목들과어우러져
겨우내눈밭을매개로자기들만의대화를즐길것이다.
이처럼눈밭에펼쳐진빛과그림자의향연은겨울산의또다른매력이다.
매력에푹빠져한참을멍때리다보니눈(雪)에노출된눈(眼)이시려온다.
‘설산좋다고남용말고설산모르고오용말자’
겨울산의매력뒤엔함정도있는법,바로설맹(雪盲)의위험성을
간과해선안되기에선글라스나고글착용은필수다.
들머리에서1시간가량올라선지점이다.
샘물은얼어붙어눈속에묻혔는지보이질않아
휴대한수통을꺼내목젖을적셨다.ㅣ
약수터안내판엔이런글이…
그대넋두리가한가닥그리움으로솟아나고…
약수터를벗어나자,등로주위로군락을이룬산죽들이강한생명력을
뽐내기라도하듯심설을뚫고나와꿋꿋하게푸르름을발산하며
과객을마중한다.
그렇다면정상이가까워졌다는시그널이다.
아니나다를까,저만치거대고분을닮은대덕산정상이바짝다가섰다.
잡목사이로난희끗한등로에산꾼대여섯이곰실거린다.
산정에서행동식을해결해야겠단생각에절로걸음이빨라진다.
계단도아니다.그렇다고개울을건너는다리도아니다.
이리보고저리봐도왜있어야하는지도무지아리송하다.
참새가어찌봉황의깊은뜻을알까마는…
조선명종때의예언가남사고는대덕산아래무풍땅을일러
‘국난이닥칠경우이주하는땅’이라고했다.
실제조선말위기에내몰린명성황후를모시기위한행궁이들어서기도했다.
막힘없이탁트인산정에선채,한기를오롯이버텨내며불린라면을
게눈감추듯뚝딱해치우고서일망무제의첩첩산릉을가슴가득품었다.
사바의온갖잡념들이일순씻겨나가는느낌이다.
서쪽덕유산산봉위엔구름이걸려있고북으로민주지산,동으로가야산이아른거린다.
건너초점산(삼도봉)이너른등짝을내밀며어서오르라재촉한다.
그러나안부에내려서면서알았다.착시현상이었단사실을.
잡목과산죽을헤쳐가며허벅지까지빠지는눈비탈을올라붙어야했다.
이것숫제두발로걷는정상적인걸음이아니다.
선답자가남긴발자국구멍에왼발오른발을번갈아가며
넣고빼고를반복하는동작인지라극기훈련에가깝다.
전북,경남,경북이경계되는봉우리로서쪽은무주,남쪽은거창,동쪽은김천이다.
이로써남한에있는삼도봉세곳모두발도장을찍은셈이다.
지리산반야봉에인접한삼도봉(1,550m경남,전남,전북)은2009년8월에,
민주지산에인접한삼도봉(1,177m충북,경북,전북)은2007년8월에올랐다.
세군데삼도봉은공히백두대간상에있다.
흰고깔을뒤집어쓴산정들은저마다의존재감을알리듯
속살을드러낸채우람한근육을불끈거리며겨울과맞서고있다.
그런데대간꾼들의발자국이이곳삼도봉에서멈춰섰다.
소사방향대간길은전혀러셀이안되어있는걸로보아
탈출로를따라덕산마을로내려선듯싶다.
잠시등산지도를펼쳐하산길을살폈다.
동쪽으로꺾어가파른너덜지대를내려서야한다.
심설보행이라몸의중심을잡기가도통쉽지않다.
스틱을좀더길게조절해보았으나손잡이부위까지푹푹꽂힌다.
그래도포갠바위까지는양반이었다.이후길은발자국조차희미했다.
선답자들조차우왕좌왕한흔적이역력하다.
리본표식도잘눈에들어오질않는다.
여기서부터급사면의너덜구간이길게이어졌다.
엉덩방아는기본이고잡목과산죽이눈속에뒤엉켜덫이되어발목을거는통에
눈밭에코를박고꼬꾸라지기는건옵션이었다.
어디한곳잡을데가없는급사면을만나쩔쩔매다가
5미터씩이나데굴데굴구르기도두어번,
집에두고온비상용10m짜리로프가눈에삼삼했다.
즉설사면을미끄러져내려가는하산법이다.
빠르고스릴있으나그만큼위험도가높다.
숙련된산꾼들도주변상황을잘판단해신중하게이용하는데
초짜가어설프게대책없이흉내냈으니…
천신만고끝에날머리인덕산마을로내려섰지만
이미온삭신은파김치가되어욱신거려왔다.
4시간이면걸어내려올거리를5시간을훌쩍넘겼다.
하지만산행기록을정리하는이시간,
詩作을즐기는모신문사에근무하는후배,
휴대전화문자로지인들에게이따금자작시를배달합니다.
엊그제배달받은그의따뜻한詩한편을소개합니다.
계절의수고로움에침묵으로화답하며
아무런댓가도바라지않고
청량한산이슬고이고이지켜주며
새봄꽃잔치를꿈꾸며
늘소년으로사는청춘의표상…
작은욕망도놓치지않고
여명의속살에묻어나는
환희의몸살도흘러보내지않으며
지나는바람과구름과소통하여
시간의마디마디희노애락채우는놀라운중재자..
함박눈소르르내리면
홀로이떠나오롯이겨울나무를안으라.
………………………………..
데레사
2011년 1월 14일 at 11:59 오후
우와!사진으로나마눈을보니그리운감정이확솟습니다.
여긴북경이거든요.제가온지가보름이다되어가는데여긴눈이고비고
아무것도내리지않은건조한날씨의연속이거든요.
바람때문에춥긴하지만미끄럽지도않고설경도볼수없고….
이제17일에돌아갑니다.
돌아가면가까운모락산에라도눈을밟으며올라보고싶습니다.
건강하십시요.
후배분의시,정말좋은시네요.
소리울
2011년 1월 15일 at 8:03 오전
구제역오행시가애국자선생님임을확인해줍니다.
눈경치…겨울산행겨울나무,홀로이떠나오롯이겨울나무를안으라.
감동으로다가옵니다.
신문사후배,제게소개시켜주셔요.
명문
2011년 1월 22일 at 6:59 오전
저두산행기잘보구갑니다..^^**
와암(臥岩)
2011년 1월 27일 at 8:12 오전
"눈에지쳐한동안눈산행을하지않으리라다짐했었다./
하지만산행기록을정리하는이시간,/
또다시마음은설산에가있으니이를어쩌나…//",
무주대덕산눈산행,
그렇게눈이많이쌓였군요.
러셀도안된하산길,
너덜지대통과땐그고통이여만했겠습니까?
구제역,
민족의대이동도멈추게하는그아픔,
‘카스톱’님고향도편치않겠지요?
오랜만에멋진산행기읽었습니다.
추천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