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인초보’에게서 어머님 모습을…

퇴근시간전철환승역은한마디로북새통이다.

"이번역은당산,당산역입니다.내리실문은오른쪽입니다.
계속해서○○방면으로가실손님은이번역에서○호선열차로
갈아타시기바랍니다."


사람들은출구쪽을향해반사적으로조금씩몸뚱어리를틀기시작한다.
전동차문이열렸다.
차내에잔뜩구겨져있던사람들이문밖으로튕겨지듯쏟아졌다.
칸칸에서토해내는광경은흡사옆구리터진김밥을연상케한다.
헝클어진머리,흐트러진옷매무새따윈아랑곳하지않는다.
튕겨져나온사람들은부리나케환승구또는출구를향해뛴다.

늘반복되는일상인데도난여전히저급한행렬에잘섞이질못한다.
계단이어느정도빌때까지한켠에비켜나있었다.

그런데어쩐일인지계단을가득메운사람들이냉큼줄어들질않는다.
시각장애인한분이인파에섞여더듬더듬계단을내려딛고있었다.
사람들은그를피해걷느라지체되고있었던것이다.
힐끗한번씩쳐다만볼뿐대부분무심히스치듯지나쳤다.

많던사람들이총총히사라진계단.

그는여전히흰지팡이로계단턱을더듬고있었다.
노련한(?)시각장애인들은신기하리만치익숙하게길을찾아걷는데
유독이분은지팡이다루는솜씨나걸음동작이어설퍼보였다.
조심스레그의곁으로다가섰다.

"괜찮으시다면제가잡아드려도될까요?"

말이떨어지기가무섭게내팔을덥석잡았다.

"고맙습니다.제가아직초보라서요"

"초보라니요?그리고참어디까지가시나요?"

"1번출구앞보도에있는간이매점까지만데려다주세요.
양쪽시력을잃은지5년밖에안되어아직은맹인초보랍니다.하하"

"여깁니다.매점이…"

고맙다는인사를뒷통수에매달고서버스정류장으로향했다.

순간어머니의생전모습이눈앞에어른거렸다.
당뇨로인한합병증으로실명한어머니는
십수년을홀로암흑속을헤매이시다하늘나라로가셨다.
별안간울컥,콧등이시큰해졌다.

발걸음을되돌렸다.


그는매점에서담배한갑을산모양이다.
거스름돈을받아쥐고선막걸음을옮기고있었다.
당산역1번출구앞은매우복잡하다.
두눈멀쩡한사람들도노점상들이펼쳐놓은물건들을피해
요리조리빠져나가기가신경쓰이는곳이다.
하물며시각장애인은어떨까?

또한번그에게다가섰다.

"버스타는데까지같이갑시다.몇번버스를타시나요?"

"여태가지않았습니까?저는6632번을타야합니다만…"

그의팔을낚아채팔짱을꼈다.
스스럼없이내게바짝밀착해왔다.
그가말했다.

"흰지팡이로더듬거리면사람들은제게서멀리떨어집니다.
나아갈공간을열어주는것이라여겼지요.
그런데언제부턴가조금다른생각을갖게되었습니다.
길을터주는게아니라모두가제게서멀어져가고있다는느낌을받았지요.
즉,제스스로사람들과벽을쌓고있는거라생각했습니다.
이를테면자괴감이지요.
이처럼,보이지않는것보다외로움이더견디기힘들지요"

어머니의외로움은어떤색깔이었을까?
어머니는동만트면언제나시골집들마루에우두커니나앉으셨다.
10여가구가전부인조그만시골마을이라사람이귀했다.
특히나농번기때는모두들들에나가마을은텅빈다.
개짖는소리에도반가움에귀를쫑긋세우셨다.
그래도조석으로말동무를해주는이웃이있다며시골집을고집하셨다.
홀로계시며소통에목말라하셨을생전의어머니생각에
가슴이저민다.

어머니는실명후그흔한관광버스타고나들이한번못다니셨다.
그게원이되어돌아가시기전자식들에게신신당부한게있다.

"나죽거덜랑화장을하그래이.뼛가루는산에올라훨훨뿌려다고.
행여깜깜한항아리속에가둬놓을생각일랑아예말그래이.
이승에서는캄캄하게살았으니저세상에서나마대명천지를
훨훨날아다니고싶구나"

유언대로얕으막한동네산에올라그렇게날개를달아드렸다.

지팡이로안내블록을더듬거리며어렵게세상밖으로나온
자칭’맹인초보’의모습에서시골집벽을더듬으며
방과들마루를오가시던어머니의모습을보았다.


"저기,6632번버스가오고있네요"

"고맙습니다.다시뵐수있었으면좋겠는데…"

"아마도다시만날수있을겁니다.내가선생님을뵙게되면
오늘처럼팔짱을낚아챌겁니다하하"

2 Comments

  1. 데레사

    2011년 7월 23일 at 7:54 오전

    가슴이뭉클하면서눈시울이뜨거워옵니다.
    맹인을향한마음도어머님을향한마음도다헤아릴수있을것
    같습니다.

    나이들어가면서조금씩몸이불편해지니까세상의여러인심들을알게
    되기도하고더러는서운한감정에빠지기도하고그러거든요.

    그분이얼른초보딱지를떼고노련해졌으면좋겠습니다.
    고맙습니다.   

  2. 와암(臥岩)

    2011년 8월 2일 at 1:16 오전

    ‘맹인초보’,
    그표현에웃음이인건잠시일뿐,
    내내눈물닦으며읽을수밖에없었습니다.

    "흰지팡이로더듬거리면사람들은제게서멀리떨어집니다./
    나아갈공간을열어주는것이라여겼지요./
    그런데언제부턴가조금다른생각을갖게되었습니다./
    길을터주는게아니라모두가제게서멀어져가고있다는느낌을받았지요./
    즉,제스스로사람들과벽을쌓고있는거라생각했습니다./
    이를테면자괴감이지요./
    이처럼,보이지않는것보다외로움이더견디기힘들지요"//,

    이대목몇번읽었습니다.
    뿐이겠습니까?

    "나죽거덜랑화장을하그래이.뼛가루는산에올라훨훨뿌려다고./
    행여깜깜한항아리속에가둬놓을생각일랑아예말그래이./
    이승에서는캄캄하게살았으니저세상에서나마대명천지를/
    훨훨날아다니고싶구나"//,

    맺힌한풀어지지않겠군요.

    늙기도서러운데,
    외로움!
    그게죽음보다더괴롭겠지요.

    "고맙습니다.다시뵐수있었으면좋겠는데…"/
    그’초보’님다시뵙고팔잡아주실수있길바래봅니다.

    추천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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