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박 2일 유유자적, 설악(雪嶽)을 품다(下)

도톰한삼겹살을굽기무섭게게눈감추듯폭풍흡입했다.
걸신이라도들린듯말이다.
1리터짜리’이슬’이금새동이났다.

아쉬운듯서로멀뚱거리다가돌연C가벌떡일어섰다.

"어딜가려구?"

"궁즉통(窮卽通)이라했어~"

이슬?을찾아헤매는하이에나를자처하며취사실밖으로나간
C가20분이지나도돌아오질않는다.
바깥데크로나와두리번거려보았으나C는보이질않는다.
아마도어디다른팀에섞여임무?를망각한채
권커니잣커니하고있을것이다.

야심한시간,중청대피소데크난간에기대어서니
설악의밤기운이오롯이가슴팍을파고든다.
삭신노곤함을잊고서별빛쏟아져내리는설악의밤풍경에
포로가되고말았으니…

취한듯깬듯(半醉半醒)아쉽지만내일을위해침상으로들었다.
아니,그런데이슬찾아나선C가침상에드러누워있다.
주변머리좋은C가임무수행을못했으니아마도대피소내에
‘이슬’은깡그리말라버린모양이다.ㅋ

1인당침상공간은60cm,모포2장을지급받았다.
군대시절,내무반침상이생각났다.
밤9시소등에맞춰목조2층침상에누운채내일코스를상의했다.
C는공룡능선을고집했고나는몸을사려천불동계곡을주장했다.
결론은무늬만산마니아인P선배의체력을감안해
천불동계곡으로낙점했다.

쿰쿰한땀냄새와코고는소리에한참을뒤척여야했다.
하지만이내땀냄새는고소하게(?)바뀌었고,코고는소리는리드미컬하게(?)들렸다.
환경변화에대한적응이빠른건지,미련곰탱이인지…글쎄다.

부스럭거리는소리에선잠에서깨어났다.
03시다.04시에공룡능선으로향하는팀들이기상해
취사도구를챙기느라여기저기서달그락거려더이상잠을잘수가없다.
천불동계곡으로빠지는우리셋은시간적으로여유가있다.
오늘(6월1일)해뜨는시간은05시04분,배낭은침상에놔둔채
너덜길을20분정도올라설악의주봉,대청봉(1,708m)에섰다.

어스름이채걷히지않은시간,정상표시석주위로산객들이속속모여든다.
6월첫날일출을보기위해대부분봉정암과중청에서1박한사람들이다.
05시가넘어서자동녘하늘에조금씩붉은기운이번지기시작했다.
6월첫날의태양은수평선위두터운구름층을뚫고나오느라
05시15분이되어서야화채능선위로비로소모습을드러냈다.

해뜰녘의산은정말이지아름답다.
파노라마처럼펼쳐진강원산군의산그리메는그대로한폭의수묵화다.
사방으로새벽의푸른기운이가득내려앉아괴괴하기그지없다.
산능선의너울거림은승무의춤사위를보는듯하고
운무에휘감긴산봉우리들은망망대해의孤島와도같다.

03시에오색탐방센터를출발한무박산객이땀범벅이되어선착했다.
몇해전,죽을힘을다해2시간50분걸려오른적있는데,
이사람은2시간20분만에주파했단다.대단한준족이다.

중청대피소로회귀해끓인라면에데운햇반을말아끼니를해결했다.
먹을거리준비가대체로부실했던점,셋모두공감했다.

산악회다른팀들과는오후2시설악동C지구식당가에서합류키로했다.
공룡능선을버리고천불동계곡을택했으니오늘도어제처럼
시간적으로여유로운산행이될것같다.

바쁠거없는터라늑장부려가며길나설채비를끝냈다.
쓰레기를되가져가다보니배낭부피는어제보다오히려더빵빵하다.

설악의골짜기마다깊숙이아침햇살이파고드는시간,중청을나섰다.
소청봉갈림길에이르자,건너공룡능선암봉들이햇살에번뜩인다.
잠시걸음멈춰아침햇살가득머금은설악의속살을흠씬탐한다.
가슴을활짝열어설악의기운도흠뻑들이마시고…

소청봉갈림길에서부터희운각대피소까지거리는고작1.3km인데
고도는무려500m나낮춰야한다.가파름이장난아니다.

쉼터데크엔이런섬뜩한안내문도적혀있다.

"이코스는’심장돌연사’가빈번한구간입니다.잠시여기서쉬어가는센스…"

호된너덜길과곧추선철계단을힘겹게내려섰다.
셋山友는누가먼저랄것도없이희운각대피소바닥에털썩주저앉았다.
너나없이지쳐축늘어진모습이파김치와흡사하다.

가뭄탓에대피소앞계곡은바짝말라붙었다.
빈물통은계곡샘물로채울속셈이었는데글렀다.
대피소매점에서2리터생수를구입해각각의물통에나눠담았다.

공룡능선분기점인무너미고개에서천불동계곡으로방향을틀었다.
동행중인산우C는못내아쉬운모양이다.
공룡능선을가리키는팻말에서시선을거두지못한다.
"6월이다가기전반드시공룡의등뼈를밟을것"이라고했다.

급비탈길로내려서자,左공룡右화채능선사이로계곡이시작된다.
천길단애사이로깊게패인협곡인’천불동계곡’이다.
천개의불상형상을한기묘한바위들이늘어서있어千佛洞이란다.

천당폭포,오련폭포,귀면암,비선대로이어지는천혜비경은말그대로
천봉만암(千峰萬岩)이요,청수옥담(淸水玉潭)의세계다.

가끔은수마와화마로인해仙境은쑥대밭이되기도한다.
자연을훼손하는인간들에대한일침이자경고다.

2012년1월화재로전소됐던양폭대피소는새단장을마쳤다.
여러해전,수해로엿가락처럼뒤엉켰던철재계단들도보수를끝냈다.
그러나아직도상흔은곳곳에남아있다.

양폭대피소를조금지나쉬어갈겸그늘진계곡으로들었다.
너른바위에걸터앉아비취빛소(沼)에발을담그니차가움이얼음장같다.
뽀얀자갈이훤히비치는맑은물속을물고기들이무리지어유영한다.
가만히물속으로카메라를밀어넣었다.
화들짝놀라흩어지더니이내대열을갖추고다시유영을즐긴다.
물속엔물고기만있는게아니다.
파란하늘이일렁이고숲이나부낀다.
또있다.설악시인故이성선이두고간山詩가…


산에모자를두고돌아왔네.
어느산이내모자를쓰고
구름얹은듯앉아있을까.

산에다시를써두고돌아왔네.
어느풀포기가그걸밑거름으로
바람에흔들리다가꽃을피울까.

산물을들여다보다가그속에또
얼굴마저빠뜨리고돌아왔네.
달처럼돌에부딪히고일그러져서
어디쯤흘러갈까.

-이성선의시,’산에시를두고’

깎아지른협곡사이로세찬물줄기가쏟아져내린다.’오련폭포’다.
다섯개의폭포가길게연이어있으나한눈에들진않는다.
천혜비경인천불동계곡이지만실은위험요소도적지않다.
산객들은아찔한협곡사이에놓인철제탐방로를걷는동안늘낙석위험에
노출되어있다.철제탐방로위엔실제로암벽에서부서져내린
주먹크기의돌멩이들이자주눈에띄었다.

올초에도오련폭포구간에1.5톤규모의암석이떨어져철제탐방로
20여미터가부서져한동안통제되기도했다.
‘안전’이화두인요즘,이곳에도뭔가아이디어가필요하다.
이를테면천불동계곡을오가는산객들의안전을위해들고나는곳에
안전헬멧을비치해대여와반납이되게하면어떨까?
(그냥걱정되어툭던져본것이니,공원관리소나으리분들이해바라오)

계곡건너에괴이쩍은바위가모습을드러냈다.
우뚝선바위높이가얼추50미터는되어보인다.
바위형상이귀신의얼굴과비슷하다하여’鬼面岩’이다.
철다리를건너귀면암에이르니하단부에’추모동판’이박혀있다.
그내용은이러하다.

이곳을지나는길손이시여!
‘84.8.21흘리颱風의怒雨속에서
登山客의安全下山을誘導하다52才의
나이를急流에흘려보낸
故柳萬錫의義로운넋이
머무른곳이오니뜻있는者,
발걸음멈춰冥福을빌자
1984.9.7

비선대가1km남았다는팻말이무지반갑다.
6월첫날인데도삼복찜통더위가울고갈날씨다.
상대적으로그늘이없고바짝달궈진암릉을걷고있는
공룡능선팀은아마도천불동계곡길이눈에삼삼할것이다.

비선대쉼터에이른셋산우는약속이나한듯한목소리로외쳤다.
"여기억수로션한캔맥주좀퍼뜩갖다주이소!"
배낭을내려놓기무섭게맥주캔을땄다.
손바닥에전해지는차가운느낌이황홀했다.
반사적으로캔을부딪친셋은한숨에들이켰다.

그제서야주위사물이눈에들면서예의궁금증도발동했다.
쉼터건너적벽에대롱대롱매달린클라이머들의간크기가궁금했고
판판한반석위로미끄러지는계류를내려다보며와선대와비선대가궁금했다.
와선대(臥仙臺)는선녀의일광욕장인지,비선대(飛仙臺)는임무를마친
선녀가하늘로날아오르는승강장인지…

횡설수설하는걸로보아더위를먹은데다취기마저오른모양이다.
그도저도아니면仙境을노닐다보니4차원세계로빠져들었던가…

비선대에서소공원까지3km는평탄한숲길을걸어서…
소공원에서설악동C구역까지는셔틀버스를이용해…


중청대피소(1박)-대청봉-소청-희운각대피소-천불동계곡-비선대쉼터-설악동

2 Comments

  1. 데레사

    2014년 6월 17일 at 11:01 오전

    우와!
    부럽습니다.

    제동창중한명이10여년전설악에서바위타다가줄이끊어져서
    데리고간운전기사는즉사하고본인은살아는있지만죽은거나
    마찬가지몸이되어버렸습니다.

    설악에서바위타는사람들을보니갑자기그친구가생각나네요.
    늘편안한산행되시길바랍니다.   

  2. 정종호

    2014년 6월 18일 at 9:46 오전

    비선대쉼터에서의하산주한잔….캬~~~!!세상에부러운게뭐가있겟습니까..수고많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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