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심 속, 백련산-안산-인왕산을 걷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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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은 또 어느 산으로 튈까? 서울 근교산 몇몇 곳을 떠올리며 버릇처럼 스마트폰을 열어 산 검색에 나섰다. 딱히 확 와닿는 곳이 없어 무심히 화면을 밀어올리는데 ‘백련산-안산-인왕산’ 코스에 시선이 꽂혔다. 인왕산은 여러번 걸음했지만 백련산과 안산은 낯선 곳이다. 개략적인 코스와 거리, 접근성을 체크한 후 냉큼 낙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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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7/10) 느지막이 집문을 나서 백련산과 인접한 지하철 3호선 녹번역 3번 출구로 나왔다. 주위를 두리번 거렸다. 어디에도 산 방향을 가리키는 이정표는 없다. 어느 방향으로 가야 백련산 자락으로 올라붙을 수 있을까, 도무지 막막하다. 길을 물어보려해도 폭염주의보가 내려진 서울은 거대 찜통이나 다름없어 오가는 사람 조차 드물다. 한참을 서성거리다가 멀찌감치 통일로를 높게 가로지른 생태연결다리를 발견했다. “옳다구나, 산과 산을 이은 다리이니 아마도 다리 아래에 산 들머리가 있을게다” 득달같이 걸음해 보니 생각한대로 백련산 입구를 가리키는 이정표가 “더운데 내 찾느라 욕봤소”라며 반겨 맞았다.

통일로 도로변에서 곧장 산 절개면에 설치된 목계단을 딛고 올라서면 생태연결로와 만난다.
이 연결로를 건너 계속 진행하면 북한산 둘레길(진관사 입구)에 이르게 된다. 백련산과 북한산을 이어 놓은 것이다. 백련산은 서울 서대문구와 은평구 사이에 있는 높이 215m의 야트막한 산이다.
말쑥하게 단장된 완만한 초록숲길엔 편의시설이 잘 갖춰져 있다. 영역표시에 여념없는 반려견의 목줄을 당겨 잡는 어르신 모습, 자외선이 무서워 복면을 한 아주머니가 양팔을 어깨높이까지 흔들며 엇갈려 지나는 모습, 벤치에 앉거나 드러누워 독서 삼매경에 빠진 청춘들의 모습, 전형적 동네 뒷산 풍경이다.
사부작 사부작 그늘진 숲길을 걷다보니 불현듯 제주도 사려니 숲길이 떠올랐다. 숲길을 벗어나기가 싫어 마냥 숲속을 맴맴 돌았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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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자리가 있으면 마른자리가,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그늘진 숲길을 벗어나면 필시 땡볕길이 나오기 마련이다. 세상의 이치다. 숲길을 빠져나오자, 길은 다시 너른 암반 위로 난 목계단으로 이어진다. 바짝 달궈진 너른 암반이 뿜어내는 열기가 장난 아니다. 숨이 턱턱 막힌다. 목계단을 딛고 올라 북한산이 한 눈에 조망되는 전망데크에 섰다. 얼마 전 서울둘레길을 걸으며 지나쳤던 봉산과 앵봉산도 뚜렷하게 시야에 들어왔다.

백련산의 옛 이름은 응봉(鷹峰)이다. 조선시대 왕족들이 백련산 바위에서 매사냥을 즐겼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응봉의 유래가 된 당시의 매바위는 도시개발 과정에서 사라졌다. 하지만 산아래 동네, 응암동 주민들이 모여 백련산의 쉼터인 ‘은평정’ 옆 조그만 바위를 점찍어 ‘매바위’로 명명한뒤 매년 매바위축제를 하며 아쉬움을 달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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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평정 아래 풀숲에 초라한 바위 하나가 있다. 바로 주민들이 명명한 그 매바위다. 내 눈엔 그저 ‘억지춘향 매바위’로 비치나 주민들에겐 의미있는 바위임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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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나무와 참나무가 어우러진 초록숲길(백련산 구간)을 걸어 팔각정으로 내려섰다. 백련산근린공원 입구다. 여기서부터 서대문구청 뒤 안산 들머리까지는 아스팔트길이다. 보도에 일정 간격으로 붙여놓은 초록숲길(안산 구간) 방향 표시를 따라 도심을 통과한다. 표시가 자그마해 놓치기 십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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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제천 위로 내부순환로가 지난다. 내부순환로 아래에서 이리저리 헤매다가 횡단보도를 건너 서대문구청 앞에 이르니 안산자락길을 가리키는 이정표가 눈에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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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대문구청 뒤로 난 비탈진 아스팔트길을 걸어 안산 자락에 올라붙었다. 갈림길이 무지 많다. 메타세콰이어 갈림길에 이르러 또다시 기로에 섰다, 이정표는 정상방향 표시는 없이 ‘안산자락길’ 위주로 안내하고 있다. 이때문에 백련산-안산-인왕산을 이어 걷는 이들이 한결같이 헷갈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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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전히 통밥 굴려 방향을 잡을 수밖에. 깊은 산에선 어림없는 일이다. 찜통 날씨 탓에 연신 얼음물을 들이켰다. 수통에서 얼음덩이만 달그락 거리지만 걱정 없다. 안산은 수맥이 풍부해 샘터가 많다. 샘터에서 다시 물을 채웠다. 드디어 숲이 열리며 봉수대가 눈에 들어왔다.
무악산으로도 불리는 안산 역시 높이 295.9m의 야트막한 도심 속 산이다. 조선 인조 때 이괄(李适)이 반란을 일으켜 전투를 벌였던 곳이며 한국전쟁 때 서울 수복을 위한 최후의 격전지로도 유명하다. 통일로를 사이에 두고 인왕산(340m)과 마주보고 있다.
안산 정상에는 봉수대가 있다. 평안도에서 올라온 봉화가 이곳을 거쳐 최종 남산으로 연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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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수대에 섰다. 근래 새롭게 보수된 모습이다. 봉수대가 있다는 건 그만큼 사방이 툭 터졌단 뜻이다. 남산 그리고 북악산성길, 그너머 북한산 주능선이 뚜렷하게 눈에 들었다.
건너 인왕산을 바라보며 하산길 방향을 잡았다. 홍제동 삼성래미안 아파트와 안산초등학교방향으로 내려섰다. 좌로 무악재역, 우로 독립문역 중간지점이다. 통일로를 가로지른 육교를 건너자, 길은 무악 청구아파트 302동 뒤로 이어진다. 이제부터 인왕산 자락이다. 승용차가 올라가기 버거운 까칠한 급경사 시멘트길이다. 달동네 모습이다. 산자락 군데군데 폐가 도 보인다. 막다른 길이다. 폐가 뒷뜰 울타리를 넘었다. 덤불을 헤치며 거미줄을 걷어내 가며 나아갔으나 급비탈 벼랑을 만나 돌아섰다. 정상방향과는 멀어지나 우회길을 찾기 위해 산허리를 감아 돌았다. 희미한 길을 만났다. 그 길은 목계단으로 이어져 ‘제대로 길을 찾았구나’ 생각에 용을 쓰며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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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웬걸! 건너편 안산을 조망하는 쉼터 팔각정까지만 조성된 목계단이었다. 길은 거기서 끝이었다. 맥빠지게 한 팔각정에 털썩 주저앉아 맥없이 안산을 건너다 보며, 혼잣말을 내뱉았으니…”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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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을 내려와 다시 산을 끼고 돌았다. 그제서야 인왕산 정상을 가리키는 분명한 이정표가 눈에 들어왔다. 그러나 몇번의 헛발질에 기운이 쇠했다. 사과 한 알을 꺼내 베어 물었다.
허기가 가시질 않는다. 먹을거리라곤 이 뿐이니 도리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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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왕산 절규바위(내맘대로…)를 지나 비로소 한양도성길로 접어들었다. 정상까진 그늘이라곤 없는 바윗길이다. 온몸으로 땡볕을 받아내야만 한다. 더위의 최절정 시간대인 오후 2시를 조금 넘은 시각, 올려다 보이는 성곽길이 길고도 아득하게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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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올라선 인왕산 정상, 초병 조차 초소 안으로 몸을 피했는지, 텅 빈 모습이다. 절절 끓는 찜통 서울을 내려다보고선 지체없이 창의문 방향으로 내려섰다. 파김치가 된 삭신을 이끌고 자하문로를 걸어 경복궁역 인근에 이르러 콩국수 한그릇으로 허기를 채웠다. 그제야 앞이 보인다.독하게 더웠던 지난주 일요일(7/10)의 땡볕산행을 그렇게 마무리했다.

 

 

21백안인지도

 

1 Comment

  1. journeyman

    2016년 11월 14일 at 5:04 오후

    찬바람이 불어오는 계절에 다시 읽으니 지난 여름의 열기가 다시금 후끈 느껴지는 듯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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