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올레길에서 놀멍 쉬멍 걸으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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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공항 5번 게이트로 나와 600번 공항버스에 올랐습니다.
빗방울이 후드득 차창에 부딪치더니 금새 세찬 빗줄기로 바뀝니다.
윈도우브러쉬가 오두방정을 떨며 부산스럽게 움직이네요.
숨이 턱턱 막힐 것만 같은 날씨에 빗줄기는 오아시스와도 같습니다.

 


빗줄기에 바람이 더해져 대로변 꽃나무가 맥없이 꽃잎을 떨굽니다.
연붉은 꽃잎이 축축한 포도 위에 나뒹굽니다. 느낌이 멜랑꼴리하네요.
바로 ‘위험’이란 꽃말의 ‘협죽도’입니다. 독을 품은 꽃이죠.
독버섯일수록 아름답듯 독이 든 꽃 역시 아름다운 걸까요?

한무리 젊은 유커(游客)들이 우르르 버스에 오릅니다.
이들은 중국어로 버스기사와 열씸 토킹어바웃 중입니다.
짐작컨데 “합이 몇 명인데 중문까지 요금이 얼마?”인 것 같습니다.
기사분은 서툰 중국어로도 소통에 막힘이 없어 보입니다.
중국인이 많이 찾는 제주에 살려면 요 정도 내공은 필요할 것 같네요.
아무튼 제주스러운 생존 방식이란 생각이 듭니다.

1시간 10분 남짓 달려 서귀포월드컵경기장 앞에서 잠시 내렸습니다.
빗줄기는 가늘어졌지만 우산을 펼쳐 들었습니다.
경기장 인근 某 리조트에 근무하는 지인을 만나기 위해서죠.
내일 함께 한라산에 오르기로 약속했기에 잠깐 만나 점심 먹으며
스캐줄 조율한 뒤 헤어져 홀로 ‘외돌개’로 이동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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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새벽 본격 한라산 산행에 앞서 몸풀기도 할 겸 제주올레길 7코스를
걷기 위해서입니다.
제주 올레길 중에서도 명불허전으로 통하는 7코스는 외돌개에서 시작,
법환포구, 강정마을, 월평 송이슈퍼까지 15.1km입니다.
외돌개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 홀로 바다를 뚫고 20m나 불쑥 솟아오른
특이한 모양의 바위입니다.

빗줄기 오락가락하는 올레길을 홀로 사부작사부작 걷는 기분, 글쎄요?
뭐라 딱 꼬집어 설명할 순 없지만, 옹골차고 넉넉한 기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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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강파랑의 길잡이 리본을 따라 걷다보면 몽돌 깔린 해변길도 만납니다.
남국의 느낌이 물씬한 야자수 숲도 지납니다.
저 건너 범섬(虎島)은 외돌개에서부터 일정 거리를 유지하며 나그네를 따라붙어
강정포구를 벗어날 때까지 그림자처럼 동행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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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의 형상이 마치 호랑이가 웅크리고 있는 것과 같아 虎島라고 합니다.
한때 고려를 지배했던 원나라의 마지막 세력인 목호(牧胡:몽골에서 온 목부)들이
난을 일으키자 최영 장군이 군사를 이끌고 제주로 와서 이 섬에 숨어 있던
목호들을 모조리 섬멸했다는 기록이 전해집니다. 지금은 무인도지요.

법환포구 한 켠에 자그마한 표석이 놓여져 있습니다.
최영 장군이 범섬을 치기 위해 주둔했다는 ‘막숙’과 배를 이어 묶어 놓았다는
‘배염줄이’에 대한 설명이 새겨져 있지요.
올레길은 꽁지 빠지게 걷는 게 아니라 느리게~ 걸으라 했습니다.
그래야만이 풍광도 문화도 역사도 보이지요.
놀멍 쉬멍 걸으멍~ 바로 제주 올레길의 캐치프레이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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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환포구 잠녀 광장에는 해녀상 등 여러 조각상들이 설치되어 있습니다.
편히 앉아 건너 범섬을 조망하라고 예쁜 의자도 여럿 놓여져 있고요.

 


토박이들의 피서지로 알려진 속골유원지에 이르자, 닭백숙 냄새가 진동합니다.
한라산 자락에서 흘러온 시원한 계곡물이 바다로 흘러드는 곳입니다.
물 위에 평상과 의자가 놓여져 있어 뭍의 계곡유원지와 흡사합니다.
혼자라 다행입니다. 둘이었다면 계곡물에 발 담그고 앉아
바다 바라보며 권커니 자커니 하다가,,, 아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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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가우체국 쉼터에 서면 길다란 방파시설이 눈에 들어 옵니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강정 해군기지 시설물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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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레길 7코스는 강정마을을 관통합니다.
해군기지는 얼추 완공되었지만 아직도 주변은 어수선합니다.
하루빨리 앙금은 가라앉고 반목은 해소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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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정마을을 벗어나면 길은 다시 해변으로 이어집니다.
거뭇한 현무암이 펼쳐진 해변을 따라 월평포구로 향합니다.
구름은 쨍쨍한 햇볕을 가려주는 착한 차광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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띠를 이루며 밀려온 파도는 현무암에 부딪쳐 하얗게 부서집니다.
거뭇한 바위벽이 막아 선 이곳에 조그만 어선 너댓 척이 묶여져 있습니다.
동화 속 옹달샘이 연상되는 월평포구의 모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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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올레길의 상징인 간세가 다시 벼랑 위 숲길로 안내합니다.
언덕 위에 서서 아름드리 소나무 사이로 드러난 바다를 가슴에 담습니다.
이제 이 숲을 벗어나면 환상의 7코스가 끝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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