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야말로 진정한 산꾼입니다.

지난 추석연휴를 이용, 山友 J와 지리산 종주에 나섰습니다. 2박 3일 일정으로 벽소령대피소와 장터목대피소를 예약했기에 시간적으로는 여유있었으나 박배낭 무게가 부담스럽기도 했습니다.

9월 14일 04:30분 성삼재를 출발, 지리 주능선에 올라 붙었습니다. 주능선에서 살짝 비껴나 있는 반야봉도 들렀다가 연하천을 거쳐 벽소령대피소에서 1박을 했지요. 다음날, 선비샘을 지나 세석대피소 방향으로 걷던 중이었습니다. 영신봉 조금 못미처 가파른 목계단을 오르다가 숨이 턱끝까지 차올라 쉬어갈 요량으로 목계단 나무벤치에 배낭을 내렸습니다.

그런데 이게 어찌된 일입니까? 목계단 아래 가파른 산비탈에 쓰레기가 사방으로 흩어져 있었습니다. 그 양이 또한 장난 아닌지라 차마 주을 엄두를 내지 못하고서 혀만 끌끌 차고 있는데, 동행 중인 산우 J는 배낭에서 커다란 비닐봉투를 꺼내 들더니 한 점 망설임없이 계단 난간 사이로 몸을 들이밀며 산비탈로 내려섰습니다.
그리고선 검은 비닐봉지를 주워 장갑처럼 손을 감싸더니 온 사방으로 흩어져 있는 지저분한 쓰레기들을 말끔히 주워 담았습니다.

 

 

산우 J의 이런 모습은 사실 제겐 낯설지 않습니다. 지난 봄에도 그와 함께 지리산행에 나선 적이 있었지요. 그땐 백무동을 출발, 삼신봉 거쳐 청학리로 향할 때였습니다. 세석대피소가 내려다 보이는 곳에 이르자, 쓰레기로 가득찬 커다란 비닐봉투가 날짐승의 슴격을 받았는지 옆구리가 군데군데 터져 내용물이 온통 어지러이 흩어져 있는 것을 보고선 또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결국 배낭을 열어 새 비닐봉투를 꺼내 쓰레기를 수습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아마도 종주 산행을 해보신 분들은 짐작할 것입니다. 부피가 큰 쓰레기를 배낭에 매달고 긴긴 산길을 걷는다는 게 얼마나 불편한지를…
그렇게 배낭부피만한 봉투를 배낭에 매달고서 삼신봉을 거쳐 청학리까지 길고 긴 산길을 내려서는 ‘산우 J’의 모습에 감복했었지요.

이번에도 역시 목계단 아래 버려져 있던 쓰레기를 말끔하게 줏어 담아 배낭에 매단 산우 J는 불편한 내색없이 묵묵히 앞장 서 걸었습니다.

세석대피소에 이르러, 생각했습니다. 앞으로 걸어가야 할 길이 장터목, 천왕봉, 중산리까지, 멀고 먼데 저 쓰레기봉투를 매달고 가야만 하나? 물론 내 쓰레기 내가 가지고 가는 건 당연지사이나, 이런 경우엔 대피소 관리직원에게 전후사정을 얘기하면 받아주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다행히 이를 증명할 수 있는 사진도 찍어 놓은 터라 세석대피소에 이르러 관리직원에게 사정 이야기를 하고선 수거 장면 사진을 보여 주었습니다.

“신고가 들어오면 우리 직원들이 나가서 수거해야 할 일입니다.”라며 매우 고마워하며 반색을 하더군요.

다행이었습니다. 山友 J는 내게, 직원에게 얘기해 짐을 덜어주어 고맙다고 했지만, 그게 어디 山友 J의 실천적 행동에 비할 수가 있겠습니까?

1 Comment

  1. 데레사

    2016년 9월 21일 at 10:47 오전

    추억은 가슴에, 쓰레기는 배낭에…
    이런 구호도 있었지요.
    그분에게 저도 박수쳐 드립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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