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친듯 포근한 산, 제천 금수산 봄마중


충북 제천과 단양을 경계짓는 금수산((1,016m), 가을이면 비단에 수를 놓은 듯 울긋불긋하다 하여 ‘錦繡山’이다. 가을 산이름을 가진 금수산을 제철이 아닌 이른 봄에 찾았다. 비록 가을이 아니어도 100대 명산에 걸맞게 풍광이 빼어나 사시사철 산꾼들이 북적일만큼 이름 값 하는 산이다.

반면 이름 값 못하는 ‘錦繡山’도 있다. 북쪽 대동강 기슭에 있는 금수산이다. 한자 표기도 똑같다. 그곳엔 김일성 父子의 시신이 안치된 ‘금수산태양궁전’이 있다. 그 산의 생김새가 모란꽃을 닮았다하여 지금은 모란봉으로 부른다. 모르긴해도 그들이 말하는 최고 존엄(?)이 있는 곳이라 함부로 드나들 수 없는, 허울뿐인 산일게다.

 


금수산은 단양 적성면 상학주차장에서 오르는 코스와 제천 상천리 주차장에서 오르는 코스가 일반적이다. 길지만 완만하다는 상학주차장 코스로 올라, 짧지만 거칠다는 상천리 코스로 내려 서기로 했다.
입소문 자자한 금수산인데, 들머리 상학주차장이 썰렁하다. 우리 일행이 타고 온 버스 한 대가 전부다. 하얀 겨울도, 떡잎 움트는 완연한 봄도 아닌 계절의 경계라 사람들 발걸음이 뜸한 걸까? 어쨌거나 명산에 들어 산길을 호젓하게 걸을 수 있다는 건 ‘덤’이다.

 


날씨가 푹해 걷기도 전에 재킷을 벗어 배낭에 구겨 넣었다. 한꺼풀을 벗으니 바야흐로 봄이다. 햇살을 등지고 산자락으로 향했다. 밭 사이로 난 아스팔트길을 따라 500m 진행하면 갈림길이 나온다. 방향과 거리가 표시된 낯익은 국립공원 이정표다. 금수산도 월악산국립공원 권역이란 걸 알게 됐다. 그런데 이 요상한 이정표는 오른쪽 왼쪽 공히 금수산 2.3km를 가리킨다. 마치 이정표가 산꾼들에게 어디로 갈거냐고 되묻는 꼴이다.

다들 어디로 갈까 망설이는데 일행 중 여성 한 명이 오른쪽으로 가자며 친절하게 설명을 덧붙인다. “오른쪽으로 가다보면 남근석공원이 나와요. 거기서 눈요기도 하고 인증샷도 쫌 날리고~”
이때 왼쪽으로 방향을 틀던 산대장이 “아니될 소리요, 왼쪽으로 가야 하오”라며 점잖게 막고 나섰다. “금수산은 여인이 누워 있는 모습으로, 예로부터 음기가 강한 곳이어서 이곳 남자들이 단명한다 전해져 오고 있소. 특히 오른쪽 산자락이 그러하다오. 그런 연유로 남근석을 세워 그 기운을 누른다 하니 왼쪽 길로 가는게 개운하지 않겠소?”
단명에 겁먹은(?) 男들이 하나 둘 왼쪽 길로 들어서니 한바탕 파안대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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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으로 휘어돌아 인디안리조트로 들어섰다. 원뿔 형태의 인디언식 천막인 티피(Tee Pee)가 자못 이색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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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조트 뒤로 난 임도를 가로질러 산비탈로 들어서면 입산제한시간이 표시된 통제문이 나온다. 여길 통과하면 본격 산길이 시작된다. 얼어붙었던 산길이 녹아 질척거려 걷기가 거북스럽다. 등산화와 바짓단은 그새 흙범벅이다. 요맘때 산길은 대체로 그러하다. 봄 산에서 또하나 성가신 것은 풀풀 날리는 흙먼지다.

 


바싹 말라 발길만 닫아도 흙먼지가 이는 산길에 흙먼지를 잔뜩 뒤집어 쓴 이정표가 황량함을 더한다. 어쩌면 촉촉한 봄비를 기다리는지도 모르겠다.

 


상학주차장을 출발, 1.7km를 걸어 해발 800m 능선에 닿았다. 앙상한 나뭇가지 사이로 드러난 원경에 가슴이 탁 트이는가 싶더니, 진행방향으로 깔때기를 뒤집어 놓은 듯 뾰족한 봉우리가 도리어 숨을 탁 멎게 한다.
뾰족봉 아래 다다랐다. 철계단이 하얀 암벽을 휘어감듯 봉우리로 이어져 있다. 철계단을 이탈해 암벽에 매달려 석이버섯 채취에 열중인 산꾼의 모습이 아찔해 보인다. 금수산의 원래 이름은 백암산(白岩山)이었다. 암봉들이 서리 맞은 듯 흰 빛을 띠고 있어서다. 그러다 퇴계 이황이 단양 군수로 부임해 청풍호를 돌아보다가 백암산의 수려한 자태에 반해 ‘금수산’으로 바꿔 불러 오늘에 이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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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번의 팍팍한 계단길, 거친 너덜길을 지나 드디어 정상에 섰다. 사위는 잿빛 일색이다. 그러나 월악 영봉과 소백주능선은 가늠될 정도다. 정상 아래 응달진 골짜기엔 아직도 잔설이 수북하다. 산꾼들 발길이 뜸하기에 정상 데크에 배낭을 내려 먹을거리를 펼쳤다. 사방이 탁 트인 정상부인데도 바람 한 점 없다. 가시거리만 좋았더라면 첩첩이 이어진 산 봉우리를 탐하기에 더없을 터인데, 욕심일뿐이다.

 


배낭을 챙겨, 가야할 망덕봉을 잠시 눈에 담고서 철계단을 내려섰다. 살바위고개에 이르러 뒤돌아 본 금수산 북벽은 계절을 잊은 듯 하얗다. 살바위고개와 짧은 암릉구간을 지나자, 대체로 완만한 능선길이 망덕봉까지 이어졌다.

 


망덕봉(926m) 정상은 참나무 수림으로 가려져 있어 조망은 별로다. 대개 정상부는 암봉이거나 바싹 말라 건조한데 이곳은 진창이다. 일필휘지로 음각된 정상표시석에도 흙물이 튀어 너절하다. 이정표는 날머리로 잡은 제천 상천리주차장까지 2.8km를 가리킨다. 망덕봉을 뒤로하고 토사가 씻겨나가 삐뚤빼뚤해진 목계단을 따라 1km 정도 진행하면 금수산의 백미 구간이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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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른쪽으로 기개 넘치는 자태의 독수리바위와 용의 이빨을 감춘 소용아릉, 그리고 장판처럼 잔잔한 충주호가 그림처럼 펼쳐지고 첩첩산군의 실루엣이 파도처럼 일렁인다. 그윽하고 신비롭다. 말 그대로 선경(仙境)이다.
마냥 선경에 취해 있기엔 이제부터 전개될 암릉구간이 결코 녹록치 않다. 거칠고 험하나 아기자기해 산행의 묘미를 더하는 게 암릉길이다. 암릉구간은 500여 미터 정도이나 팔다리를 다 써가며 바위와 씨름하다 보니 30분은 걸린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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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릉구간을 벗어나자, 이번엔 왼쪽 바위벼랑 아래로 바위소(沼)가 살포시 속살을 드러낸다. 바로 30미터 높이의 용담폭포 상류의 선녀탕이다. 골짜기에서 흘러내린 계류가 소를 채운 뒤 암반을 타고 미끄러지듯 30미터 아래로 떨어지면서 포말 일으키는 모습이 승천하는 용을 연상시킨다 하여 용담폭포라 이름 붙였다고 한다. 철계단을 내려와 폭포 전경이 한 눈에 들어오는 전망데크에 섰다. 폭포는 주변 암벽에 뿌리박은 노송과 어우러져 절경을 선사한다. 바위와 씨름하느라 뻑적지근해진 삭신이 폭포의 비경에 녹아 말랑말랑해진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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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설이 수북한 산정의 골짜기와 달리 산아래 계곡은 완연한 봄이다. 신발을 벗어 계곡물에 발을 담갔다. 그러나 채 1분을 못 버틸 정도로 차디차다. 겨울과 봄의 밀당(?)도 이렇듯 끝나 간다. 종이꽃(?)이 주렁주렁 핀 과수밭을 지나 상천리 마을 어귀에서 밥도 사먹고 잘 말린 꽃나물과 취나물도 샀다. 공정여행 실천을 위하여…
[상학주차장->금수산 삼거리->금수산 정상->망덕봉->용담폭포전망데크->상천리](8km)

2 Comments

  1. 데레사

    2017년 3월 21일 at 8:46 오후

    금수산 다녀 온지가 십년이 훨씬 지나버린것
    같아요.
    세상은 넓고 가보고 싶은 곳은 많은데…ㅎ
    이하생략입니다.

    나물 사가시면 좋아하시겠어요.

    • 카스톱

      2017년 3월 29일 at 8:59 오전

      나물 사가면 다음 산행이 편합니다 ㅎ
      아무리 부지런히 발품 판다 해도 저는 국내외로 많이 걸음 하신
      데레사님 절대루 못 따라 갑니다~
      쾌차하셨고 또 날 풀렸으니 운신하세요.
      미세먼지 심한 날 빼구요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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